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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동원, 시간여행자의 미래 설계도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온 우주의 시간이 멈췄다. 내 시간만을 제외한 채. 정지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그것은 경이로운 체험일까. 찰나의 경험이라면 모르겠으나, 십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면 결국 고독이요 외로움이요 쓸쓸함일 것이다. 사방이 멈춘 세계 속에서 홀로 나이를 먹는 ‘시간의 감옥’에 덜컥 들어선 이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동원이다.

생경하지는 않다. 비현실적인 시간을 그럴싸하게 소화해내는데 강동원이라는 피사체는 더 없이 좋은 옷이므로. 시간을 뛰어넘는 악동 도사였고(‘전우치’), 신비로운 슬픈 눈의 자객이었고(‘형사 Duelist’), 사람들을 조정하는 초능력자였으며(‘초능력자’), 악령과 맞서는 사제였던(‘검은 사제들’) 강동원에게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가려진 시간’의 성민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신인감독들의 작품인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 ‘가려진 시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보들.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강동원의 장르 선택에 대한 다양한 감식안과 과감한 도전은 그가 한국영화계에서는 드문 태도의 소유자라는 걸 감지하게 한다. 그러니까 ‘가려진 시간’은 선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것과는 차별화된 토양을 만들고 싶어 하는 강동원의 배우로서의 욕망과 책임감이 공존해 탄생한 프로젝트일 것이다.

신인 때부터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고 달려왔다는 강동원이 살아나가고 있는 시간. 그 시간들이 모여 어떠한 세계를 만들어낼지, 그의 ‘가려진 시간’들이 궁금하다.

Q. (촉촉한 머리 휘날리며 급하게 들어서는 강동원) 샤워하자마자 바로 날아온 건가요?(웃음)
강동원:
(쑥스럽게 머리 만지는) 뭐를 발라서 그래요. 늦어서 죄송합니다.(웃음)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전우치’에서 미래로 시간을 뛰어 넘고, ‘M’에서 꿈과 현실을 오가더니, ‘가려진 시간’에서는 멈춰진 시간에 갇혔습니다. 강동원 씨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강동원:
제가 가장 아끼는 것 중 하나가 시간입니다. 시간을 전략적으로 쓰려고 해요. 그래서 최근에는 옷도 직접 안 골라요. 그럴 시간에 다른 고민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점점 더 시간을 아끼게 돼요. 최대한 시간을 활용해서 좋은 작품을 찍고 싶어요.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드려야,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실망을 안 하실 거 아니에요? 지금 열심히 해야 제가 꿈꿔왔던 것들을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Q.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한국영화’에 대한 책임감이 늘 읽혀요.
강동원:
책임감, 있어요. 배우로서 해야 할 일도 정확히 알고 있고요. 가령 저는 한국영화를 알리려면 배우가 먼저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흥행 드라마를 통해 해외에 이름을 알린 경우는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 다음 프로젝트로 뭔가가 일어난 건 별로 없더라고요. 결국 배우가 직접 나서야 하지 않나 싶어요. 유명 감독의 작품이 아니라면, 관객은 배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니까요.

Q. 이런 이야기를 나눌 동료들이 주위에 많나요?
강동원:
대부분 감독님들이세요. 친한 감독님들이 몇 분 계세요. 가령 윤종빈 감독님, 장준환 감독님… 제가 가는 방향에 대해 늘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죠.

Q. 윤종빈 감독이 연기자로 나선 ‘춘몽’은 보셨나요?
강동원:
영화는 못 보고, 촬영 현장에는 놀러갔었어요. 장률 감독님과도 친분이 있거든요. 저에게 “회식을 쏘라”고 하시길래 “식당 잡아 두세요. 가겠습니다” 했죠. 도착했더니 그날 촬영은 거의 끝나 있더라고요. 그날 윤 감독님 대사가 거의 없었어요. 이상한 머리를 하고 계셨던 게 기억에 남네요.(웃음)

Q. ‘춘몽’에서의 윤종빈 감독님 더벅머리, 인상적이죠.(웃음) 강동원 씨가 느끼는 책임감 중에는 다양한 장르로의 도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매작품마다 장르를 널뛰기 하고 있는데, 계획된 선택인가요?
강동원:
중복되는 시나리오는 최대한 피해요. 안 해 본 역할 위주로 선택하죠. 상업적인 영화를 찍으면 다음엔 비상업적인 영화를 더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도 하고요. 어떤 시류에 이끌려 나온 작품은 재밌어도 완전히 배제해요. 사극이 잘 되면, 사극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곤 하거든요. 그런 섭외는 거절하죠.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가려진 시간’으로 돌아가면, 영화 중반에야 성인이 된 성민(강동원)은 나옵니다. ‘괴물’처럼 늦게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궁금했던 건, ‘어떻게 등장하는가’였어요. 배우 입장에서도 영화의 첫 등장은 나름 중요한 요소일 텐데, 이번엔 고민이 조금 더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강동원:
고민, 했었죠! 중요한 씬이어서 카메라 라인도 어느 쪽으로 갈지 꼼꼼하게 미리 설정해 놓고 맞춰서 연기했어요.

Q. 판타지적인 등장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현실적인 등장이더군요.
강동원:
그건 예고편을 통해 제 등장을 미리 접해서 그러신 게 아닐까 싶어요. 아무 정보 없이 보셨다면 조금 더 임팩트가 있으셨을 거예요. 실제로 정보 없이 편집본으로 그 장면을 접한 분들은 상당히 강렬하게 보셨거든요. 예고편 공개로 반감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해봐요. 사실 예고편에 성인 성민의 등장 씬을 넣는 게 ‘맞나/안 맞나’로 의논을 했어요.

Q. 강동원이 연출자였다면…?
강동원:
저라면 안 썼을 것 같아요.(웃음) 말씀 드리기도 했어요. “예고편에 사용하셔도 크게 상관은 없는데, 본 영화에서 첫 등장의 감흥은 분명 반감”될 거라고요.

Q. 관련 질문을 하나 더 드리면,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가려진 시간’에서 연출이 강동원이 지닌 이미지를 많이 눌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령 ‘늑대의 유혹’ ‘군도’는 당신의 외모를 극대치로 활용한 영화입니다. ‘가려진 시간’ 역시 강동원의 이미지를 많이 의식한 느낌은 들지만 그렇다고 앞에 두 영화들처럼 대놓고 이용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강동원: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어요. 일단, 감독님의 선택과 취향이겠죠. 분장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분장을 너무 더럽게 해놔서.(웃음) 사실 분장문제로 중간에 분장팀과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내 생각에는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 감정 이입이 안 될 정도로 더러우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죠.(웃음) 제가 예뻐 보이고 안 예뻐 보이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 정도가 심하면 감정 전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화면 톤에도 영향을 조금 받으셨을 거예요. 자세히 보시면 멈춘 세계는 회색 톤이 강해요. 그로인해 창백해 보이는 느낌이 있죠. 지금은 그래도 어느 정도 톤 조정을 한 상태에요. 처음에는 “왜 이러지? 감정이 안 사는 이유가 뭐지?” 한참을 고민했어요. 알고 보니 화면 톤이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고요.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말하니까 감독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강동원:
“아, 그렇군요”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은 그것까지는 생각하지는 못하신 것 같았어요.

Q. 현장에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시네요.
강동원:
먼저들 물어 보세요. “이렇게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좋은 영화를 만들자고 모였으니 의견을 나누는 거죠.

Q. 최근 신인감독들과 연달아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영향도 있을까요?
강동원:
그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문제가 없으면 얘기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신인 감독님들은 경험치에서 놓치는 게 분명 있으세요. 베테랑 제작자가 옆에 붙어있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어요. 중간 중간 편집실에 들어가서 영상을 붙여본다는 개념조차 모를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촬영 때 그런 이야기도 했어요. “혹시 헷갈리시면 며칠 쉬고, 편집실에 들어가서 보고 오면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Q. 데뷔 13년차. 이제 현장이 한눈에 보이는 경력이군요.
강동원:
(웃음)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아무도 안 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게 제가 될 수도 있는 거죠. 베테랑 제작자나 PD가 붙어 있다면, 그들이 이야기 할 테지만요.

Q. 아직 30대 중반이지만 소년 감성이 남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강동원: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 또래들보다는 아직 철없는 면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마음 한켠에 접어두고 있는 느낌이 커요. 가지고는 있되 이전처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죠. 이전에는 뭐랄까.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 바로 화도 내고 그랬어요. 요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일은 “넘어갑시다!” 그래요.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까 화나는 생각을 일단 치워버리는 거죠 .

Q. 음…현실과의 타협인가요?
강동원:
아니요. 타협은 절대 아니에요. 바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서서히 바꿔나가겠다는 의미인 거죠. 그리고 화 낼 시간에 다른 의미있는 일을 하겠다가 된 거고요,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Q.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으로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어요. 충무로에서는 일명 ‘강동원 빨’ 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티켓 파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강동원:
제가 만든 영화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느낌은 조금 들어요. 너무 감사하죠. 이러려고 지금까지 열심히 일 한 거고요. 하지만 ‘강동원 빨’이라는 건 동의 못하겠어요. 주변 지인들에게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해요. “음식이 맛있어야 식당에 오지, 강동원이 식당을 한다고 해서 절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라”고요. 영화도 그래요. 배우 때문에 첫 날 이슈가 될 수는 있어도, 영화 자체의 힘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이런 생각은 데뷔 때부터 했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관객이라면 어떨까” 생각하면 답이 나오니까요.

Q. 단순하게 생각하지 못하니까 많은 배우들이 뜨면 ‘배우병’에 걸리곤 하죠.
강동원:
다행히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늑대의 유혹’ 때 무대인사에 관객이 엄청 모였어요. 그때 스스로도 조금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차가워지더라고요. 제가 먼저 푹 식어버리는 느낌이랄까. 보면서 생각했죠. “이건 얼마 가지 않는다! 이건, 거품이다!”

Q.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기보다는 본능적이다?
강동원:
그건 본능적인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그런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조금은 기뻐해도 됐을 법한데 말이죠. ‘늑대의 유혹’ 끝나고는 광고도 하나 안 찍었어요. 엄청나게 들어왔는데 원래 하던 것 빼고는 단 하나도 안 했어요. 싫더라고요. 그냥 다 싫었어요.

Q. 원치 않는 이미지를 남기는 걸 경계한 건가요요?
강동원:
이미지를 다시 우려먹어서 돈을 벌어낸다는 것 자체가 싫었던 거죠. 취향인 것 같아요.

Q. 강동원 씨는 지금 여러 장르를 오가고 있고, 고정된 이미지도 없어요. 초반의 그런 행보가 지금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강동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그리고 신인 때부터 장기적으로 생각을 했어요. 지금의 이미지를 그리면서 일을 했고, 지금은 또 그 다음 이미지를 그리면서 일을 하고 있죠. 그래서 그 당시에 조바심 같은 게 별로 없었어요.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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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읽혀요.
강동원:
아, 믿음은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늘 겸손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았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친구로부터 굉장히 놀라운 발언을 들었어요. 함께 축구하는 친구였는데 “저는 잘 해요, 이거!” 하더라고요. ‘아니!!! 잘 하는 걸 자기 입 밖으로 내뱉어도 되는 건가?’(일동웃음) 혼동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또 좋아보였어요. 평소 어머니가 저에게 말버릇처럼 하셨던 말씀이 “늘 겸손해라. 남 주눅 들게 하지 말라”였고, 그게 맞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데 “저, 잘 해요”하는 친구를 만나니까 되게 멋있어 보였던 거죠. 그때 ‘아, 얘기를 해도 되는 구나. 잘 하는 걸 굳이 못한다고 할 필요가 없는 거구나’를 느꼈어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더 채찍질 하게 됐어요. 잘 한다고 말하려면, 그에 맞게 더 열심히 해야 하니까요.

Q. 살면서 또 자극받은 기억은?
강동원:
포인트가 되는 지점마다, 저에게 큰 영감을 준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을 통해 성장 했다고 할까요. 가령 중학교 2-3학년 때 담임선생님. 굉장히 멋있는 분이었어요. 유치원 선생님도 존경하는데, 아마 지금도 우리 가족들과 연락하며 지내실 거예요. 이후, 모델일 할 때 많은 영감을 준 분이 계시고 영화의 즐거움을 가르쳐 준 분도 계시죠.

Q. 영화의 즐거움을 알려준 분은 누구인가요?
강동원:
이명세 감독님. 정말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형사’ 때였어요. 모두가 안 된다고 했는데 밀어붙이니까 정말 매직 같은 장면들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빛과 어둠을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었는데, 처음에 조명팀에서 안 된다고 했어요. 제가 어둠에 들어가면 조명반사 때문에 안 될 거라고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그럼 흑천으로 덮어버려”하시더라고요. 다들 ‘뜨악’했어요. 화면에 흑천을 덮은 게 보일 텐데, 걱정했죠. 그런데 찍어보니까 정말 천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냥 그림자가 돼 버리더라고요. 놀라운 순간이었어요. 이후 감독님과 ‘M’도 함께 하고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죠.

Q. 쉬지 않고 달리고 있어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나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강동원:
다행히 그런 건 없어요. ‘왜 나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지?’ 저도 궁금해서 패턴을 분석해 봤어요. 돌이켜 보니까, 저는 캐릭터를 만들 때 시간이 많이 안 들더라고요. ‘이 인물은 이런 인물인가?’ 하는 의심을 안 던지고 바로 들어가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면 흐름이 어느 정도 잡히는 거죠. 그 다음부터는 디테일로 들어가니까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Q. 패턴분석까지. 역시, 장기적인 플랜을 지닌 사람답군요.(웃음)
강동원:
아…하하하.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쇼박스 제공)
(사진=쇼박스 제공)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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