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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로건’, 이토록 애틋하고 장엄한 퇴장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휴 잭맨의 마지막 엑스맨 시리즈를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폭스의 거대한 오판이라 생각했다. 제임스 맨골드가 누구인가. 4년 전, ‘더 울버린’에서 엑스맨을 닌자물로 둔갑시키는 대참사를 빚은 장본인 아니었던가. 엑스맨 시리즈 중 최악으로 평가받는 결과물을 만들었던 감독에게 울버린의 마지막 운명을 맡기는 건 무모한 배팅처럼 보였다.

그러나 ‘로건’은 그러한 우려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명징하게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방심하다가 눈물마저 흘렸다. 히어로 무비를 보며 눈물을 쏟게 될 줄이야.

돌연변이들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가까운 미래. 천하를 호령했던 ‘로건/울버린(휴 잭맨)’은 기존의 기력을 잃고 많이 노쇠해져 있다. 멕시코 국경 근처의 한 은신처에서 찰스 자비에/프로페서 X(패트릭 스튜어트)를 돌보며 조용히 살아가던 로건 앞에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나타난다. 프로페서 X는 그런 로라가 돌연변이들의 새로운 미래라고 생각하지만 로건은 자신을 닮은 로라를 경계한다. 세 사람은 로라를 쫓는 정체불명의 집단을 피해 여정을 떠난다.

엑스맨 시리즈의 시작, 아니 조금 더 넓혀 히어로 무비의 시작에는 울버린, 그러니까 휴 잭맨이 있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슈퍼히어로 무비는 그리 인기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배우들은 쫄쫄이 유니폼을 입고 스크린을 누벼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고, 히어로는 일부의 취향으로 받아들여졌다. 슈퍼히어로를 얕잡아보던 인식은 2000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을 들고 등판하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후엔 잘 알려진 바다. 샘 레이미와 크리스토퍼 놀란 등 작가주의 감독들이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시리즈를 돌보며 히어로 물의 인식을 격상시켰고, ‘아이언맨’ 등을 차례로 내보낸 마블이 히어로물을 영화 산업의 주류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다시 하고 싶은 말은 그 시작에 휴 잭맨의 ‘엑스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브라이언 싱어가 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엑스맨2’ 이후 엑스맨 시리즈를 다소 들쑥날쑥한 만듦새를 보여줬다. 좋을 때도 있었지만 나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유독 울버린을 떼어내 만든 스핀오프만큼은 매번 힘을 쓰지 못했다. 고독한 남자 로건이 울버린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담은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이 엉망이었고, 두 번째 단독 영화 ‘더 울버린’ 역시 울버린의 명성만 깎아 먹는 혹평을 받았다. 울버린의 동료들인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 미스틱(제니퍼 로렌스), 비스트(니콜라스 홀트), 퀵 실버(에반 피터스) 등의 캐릭터가 주가를 올릴 때, 울버린은 과거의 영광인 것 마냥 자리를 지킬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로건’은 17년간 무려 아홉 번 울버린을 연기했던 휴 잭맨의 마지막 엑스맨 시리즈라는 점에서 일찍이 주목을 받은 작품. 다행히 ‘로건’은 떠나는 자에 대한 예우는 물론, 재미와 완성도까지 잡는다.

제목인 ‘로건’이 주지하듯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돌연변이 영웅 울버린이 아니라, 인간 로건이다. 돋보기안경 없이는 작은 글씨조차 읽지 못하는 노쇠한 로건에겐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서부극 ‘3:10 투 유마’(2008)를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다시 한 번 서부극에서 해답을 찾는다.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셰인’(1953)을 적극 인용한 영화는 서부극을 적극적으로 껴안아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서부극에 가까운 연출이 히어로 무비와 결합해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를 연신 자아낸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히어로 무비의 탄생이다. 아직도 히어로 무비가 보여주지 못한 영역이 있다는 점이 반갑다.

액션에 있어서도 기존 히어로 무비와 차별화된 면모를 보여준다. 아날로그 스타일을 입은 ‘로건’의 액션은 흡사 야수들의 물고 뜯는 혈투를 연상시킨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때문이 ‘로건’의 액션이 안기는 것은 짜릿한 쾌감이 아니라, 비장함이다. 높은 수위의 폭력이 등장하지만 잔혹함보다는 인물 내면을 보다 깊게 보여주는 절묘한 징검다리란 인상이 짙다.

그리고 휴 잭맨이다. 영화에는 17년 세월의 풍파를 겪은 울버린의 고단함과 쓸쓸함이 내내 진동한다. 그런 울버린을 온몸으로 체화한 휴 잭맨은 이제 그 차제로 울버린 같다. 휴 잭맨이 ‘로건’으로 시리즈와 작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잘 가요, 휴 잭맨.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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