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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리뷰] 추석 황금연휴, 맨덜리 저택서 ‘레베카’와 함께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길고 긴 추석 황금연휴. 색다른 휴가지를 찾고 있다면 뮤지컬 ‘레베카’가 흐르는 맨덜리 저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레베카’는 사고로 죽은 전 부인 레베카의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사는 남자 막심 드 윈터와 죽은 레베카를 숭배하며 맨덜리 저택을 지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 사랑하는 막심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댄버스 부인과 맞서는 ‘나(I)’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영국 소설가 겸 극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했으며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졌다.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를 통해 많은 국내 팬을 보유한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와 극작가 미하엘 쿤체의 또 다른 합작품이다.

날카로운 서스펜스와 화려한 무대 연출, 금세 귀에 들어오는 대중적인 넘버, 무엇보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배우들의 호연이 러닝 타임 3시간을 훌쩍 지나가게 만든다.

작품은 주인공 ‘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나’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인물. 돈을 벌기 위해 귀족 부인 밴 호퍼의 말동무로 일하던 중 부유하고 미스터리한 남자 막심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나’와 막심이 만나는 몬테카를로는 사교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이에 걸맞게 연출된 앙상블의 세련된 의상이 관전 포인트다. ‘나’의 고용인이자 허영심 많은 밴 호퍼 부인 정영주의 코믹 연기 또한 일품. 대사의 맛을 차지게 소화하며 초반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앞서 뮤지컬 ‘스위니 토드’, ‘팬텀’ 등을 통해 대극장 무대 경험을 쌓은 이지혜는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으로 ‘나’의 내면을 그려낸다. 소심하고 위축돼 있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즉 진실한 사랑에 대한 열정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의 서정적인 연주가 실어나르는 발라드 넘버는 이지혜의 청아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나’의 순수함을 완성한다.

막심과 결혼한 ‘나’는 ‘미세스 드 윈터’의 자격으로 맨덜리 저택에 도착한다. “사교계의 중심”이라는 밴 호퍼 부인의 설명과 달리, 맨덜리 저택은 레베카의 죽음 이후 음산하고 어두운 곳으로 변해 있다. 레베카의 유령이 저택 전체를 집어삼킨 것 같은 분위기다.

연출자 로버트 요한슨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연출로 맨덜리 저택의 음습한 기운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하인들의 각 잡힌 군무는 그들을 관리하는 댄버스 부인의 카리스마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키고, 마이너한 코드의 넘버는 하인들의 이중적인 태도와 저택에 숨겨진 비밀을 예상하게 만든다.

레베카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실존하지 않음으로써 누구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가진다. 외부자들과 하인들에게 그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추앙받고 숭배되며, 막심에게는 죄의식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나’에게는 열등감과 패배감을 안긴다. 댄버스 부인과는 수상한 애정을 공유한다. 작품은 죽은 레베카를 끊임없이 안으로 불러들이되 정작 그녀의 실체에는 안개처럼 흐릿하게 비워두며 관객들을 저택 안으로 끌어들인다.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그리고 댄버스 부인이 있다. 남녀 주인공인 막심, ‘나’에 비교하면 적은 분량이지만 단언하건대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 중 열에 아홉은 댄버스 부인의 모습으로 ‘레베카’를 기억할 것이다. 그만큼 댄버스 부인의 아우라는 압도적이다. 작품 최고의 킬링 넘버 ‘레베카’ 역시 댄버스 부인의 몫이다.

옥주현은 초연과 재연에 이어 올해 공연에서도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아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만난다. 그녀의 가창력이나 넘버 소화력을 평가하자니, 새삼스럽다. 백문이 불여일견.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옥주현의 ‘레베카’ 영상을 보시라. 폭발적인 성량이나 시원한 고음, 그리고 결이 살아있는 그녀의 보컬은 전 세계 배우들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2막을 여는 ‘레베카 액트 투’는 작품을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순간임에 틀림없다. 아스라이 울리는 앙상블의 코러스와 선 굵은 옥주현의 보컬이 관객들의 심장을 죄어온다. 무대 연출 또한 탁월하다. 레베카의 방에서 발코니로 이어지는 무대 회전을 이용한 공간 창출. 여기에 ‘나’의 죽음을 종용하는 댄버스 부인의 음성과 처음으로 그녀에게 맞서기 시작한 ‘나’의 절규가 어우러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안긴다.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뮤지컬 '레베카'(사진=EMK컴퍼니)

다만 극 후반 드러나는 반전과 결말은 앞서 쌓아올린 서스펜스에 비하면 다소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레베카의 부정(不正)과 이어지는 또 한 번의 반전은 해피엔딩을 위한 장치처럼 사용된다. 충격의 파동은 크지 않다. 댄버스 부인의 처절한 몰락이 그나마 반전의 맛을 살린다.

작품은 ‘나’의 성장에 주목한다. 극 초반 연약하고 미숙한 모습에서 후반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살리기 위해 강하고 자기 확신에 찬 인물로 변한다. 과거의 죄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막심을 사랑으로 감싸고 따뜻함과 온화함으로 하인들을 감화시킨다. 많은 뮤지컬 작품에서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여성 캐릭터를 성장의 주체로 봤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지만, ‘나’의 자아가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닌 ‘미세스 드 윈터’, 그러니까 막심의 아내로서 완성된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초연부터 쌓아올린 내공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 ‘레베카’는 11월 12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되며, 추석 당일인 4일에는 공연하지 않는다.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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