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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맞짱①] 이효리의 서사로 완성되는 ‘블랙’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이효리(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이효리(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가수 이효리는 지난 4일 발매한 여섯 번째 정규음반 ‘블랙(Black)’을 작업하면서 자신 바깥의 주변을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자아가 강대”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 “평범한 생활을 하며 내가 평범한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최고가 아닌데 무슨 음악을 해야 하지” 고민하던 그는 “‘이런 얘기가 있는데 아세요?’라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효리가 바라본 ‘사회’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이효리의 ‘시선’이다. 지난해 말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뒤덮였을 즈음 만들었다는 ‘서울(SEOUL)’은 “높은 빌딩 숲 그 사이 어딘가 나지막이 울리는 노래 소리”를 묘사하며 “가엾어라”는 감상을 남긴다. 이효리는 “요동치는 서울의 모습이 안쓰럽고 아련했다”면서 “도시의 어두운 단면이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울한 마음을 담아내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수록곡 ‘다이아몬드’는 위안부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만든 노래다. 물기를 머금은 피아노 연주와 “그대여 잘 가시오. 그동안 많았다오”라는 가사가 한 편의 진혼곡을 연상시킨다. 이효리는 지난달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거대 권력 맞서 싸우다 포기하는 분들이 많지 않나. 그분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 외에도 변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방송가의 시스템과 자신의 욕망에 반(反)해 투쟁하는 ‘변하지 않는 건’, “세상이 메말랐다고 느낄 때 시원하게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는 ‘비야 내려’ 등 사회와 관계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이효리의 시선이 음반 곳곳에서 묻어난다.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는 이번 음반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생명령을 띄는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효리 ‘개인’의 서사를 들여다봤을 때다. ‘서울’이 그리는 도시의 모습은 이효리가 가창해 참여한 ‘길가에 버려지다’를 소환하고, 약자에 대한 동지 의식이 담긴 ‘다이아몬드’는 “쌍용에서 출시되는 신차가 많이 팔려서 해고됐던 분들이 다시 복직되면 차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던 과거 그의 발언을 다시 부른다.

음반은 ‘섹시 디바’에서 ‘소셜테이너’로, 그리고 제주도 ‘소길댁’으로 변모하는 동안 퇴적된 이효리의 생각과 의지를 보여준다. ‘변화’니 ‘변신’이라는 말로 이번 음반을 표현하는 것은 성의 없는 비평이다. 이효리는 무욕이나 해탈의 경지를 시늉하는 대신, 쉽게 버려지지 않는 욕망과 이로 인한 갈등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서울. 또 다시 나 너를 찾을까. 아니 잊을까. 아니 그리울까”라는 ‘서울’의 가사처럼 말이다. 그래서 ‘블랙’에 담긴 것은 이효리의 ‘현재’가 아닌 그의 ‘서사’라고 보는 편이 더욱 적합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공감을 이끌어내는 노래를 우리는 ‘좋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티스트 자신의 서사에서 탄생한 음악은 그의 사상과 이야기로써 완성되기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 된다. ‘블랙’은 발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주요 온라인 음원사이트의 실시간 차트에서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이것은 그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실패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직 이효리로써 완성될 수 있는 음반이기에 ‘블랙’과 같거나 비슷한 음반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꽤나 근사한 성과 아닌가.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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