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도쿄(일본)=윤준필 기자]재일동포ㆍ일본 코미디팬 1200명 관람…한일 개그맨들의 유쾌한 컬래버
"브라보!"
한국 개그의 자존심 '개그콘서트'가 국경을 넘어 일본에서도 인정받았다.
KBS '개그콘서트'가 지난달 초 25년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개그콘서트 IN JAPAN'의 타이틀로 해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공연으로 '개그콘서트'는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일본 코미디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개그 한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첫 발걸음을 뗐다.
'개그콘서트 IN JAPAN'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콘'과 일본 최대 개그맨 전문 매니지먼트사 '요시모토 흥업'의 협업으로 성사됐다.
본 녹화 전 비즈엔터와 만난 김상미 CP는 "'개콘'은 부활 이후 항상 위기였다"라며 "위기감 속에서 '개콘' 외연 확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체 관람가를 시도했던 어린이날 특집도 그렇고, 이번 일본 특집 역시 '개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어 "개그맨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 한국 개그의 가능성 증명
공연 시작 수 시간 전부터 제프 하네다 앞은 '개콘'을 보러 남녀노소 관객들이 모였다. 예상과 달리 재일동포뿐 아니라 일본인 관객들도 상당수 자리해, '개그 한류'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했다.
공연은 박성광·송영길·송준근·이상준·정태호의 '발레리NO'가 문을 열었다. '발레리NO'는 발레 타이즈를 입은 남성들이 중요한 부위를 가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2011년 방영된 코너다.
김상미 CP는 '발레리NO'를 13년 만에 다시 선보인 것에 대해 "'발레리NO'처럼 현지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몸 개그가 1번 타자를 맡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객석은 금세 웃음과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공연 전, 개그맨들은 한국어로 하는 개그를 일본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한국 개그의 주된 웃음 포인트는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언어유희, 말의 뉘앙스 등인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달되는 재미의 정도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 관객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한국식 유머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데프콘 어때요', '심곡 파출소', '뽕짝소년단', '알지 맞지', '습관적 부부', '오스트랄로삐꾸스', '소통왕 말자 할매' 등 현재 '개콘'에서 방영 중인 코너들이 무대에 올라가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물론, 몇몇 코너에서는 예상만큼 웃음이 터지지 않았지만 대다수 코너에선 기대 이상으로 한국식 유머가 성공적으로 전달됐다.
◆ 韓·日 개그 교류의 장이 된 '개콘'
한국 개그맨들이 상황극과 캐릭터, 말장난을 중심으로 한국식 유머를 펼친 것과 달리 일본 개그맨들은 몸을 활용한 슬랩스틱 개그를 보여줬다. '비콘' 팀의 히구치 히데요시와 마에다 시라는 서커스 개그를, 외국의 유명 오디션 '갓탤런트' 출신의 글로벌 개그맨 이치가와 고이구치는 방귀 개그를 선보였다.
또 tvN '코미디 빅리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등에 출연해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웨스피(WES-P)는 테이블 보 빼기 개그로, 일본에서 촉망받는 젊은 개그맨 기요카와 유지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볼 법한 기인 퍼포먼스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일본 측 출연진 모두 베테랑 개그맨들답게 금세 현장 분위기에 적응했다. 그러면서 '개콘'이 선보이는 개그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공연이 끝난 뒤 비즈엔터와 만난 '난스이' 팀의 쓰루 마루는 '개콘' 각 코너들의 설정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뽕짝 소년단'의 코쿤은 순발력과 개그 타이밍이 대단하더라. 일본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숏폼 플레이'는 유튜브 쇼츠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많은 인원이 한번에 한 코너를 꾸미는 것도 신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카게야마' 팀의 마스다 코헤이는 "일본에는 TV 콩트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그런데 '개콘'은 새로운 내용으로 매주 시청자들을 웃긴다고 들었다. 정말 대단하다"라고 밝혔다.
'개콘' 개그맨들에게도 일본에서의 공연은 귀한 경험이 됐다. 신윤승은 "'데프콘 어때요'가 일본에서도 통할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첫 대사에 관객들이 웃는 것을 보고, 우리 개그가 전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또 "'만담의 나라' 일본에서 '만담 듀오 희극인즈'를 시도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고 돌아간다"라고 설명했다.
◆ 관객들 얼굴에는 웃음꽃 가득
약 2시간 30분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밖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다 행복해 보였다. '개콘' 일본 공연이 양국 개그맨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된 것이다. 특히 한국의 TV 프로그램을 그리워했던 재일동포들의 향수병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었다.
시부야에서 온 김예순 씨는 "딸이 한국에 갔을 때 '개콘'을 방청했는데,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번에 일본에 '개콘'이 온다고 하니 딸이 꼭 보러 갔다 오라고 했다"라며 이날 공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전했다.
또 김운천 씨는 "매주 유튜브로 '개콘'을 챙겨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개그맨들이 매일 만나는 친근한 옆집 이웃 같았다"라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일본 특집 녹화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종종 일본에 와달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일본 관객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시바시 기즈유키 씨는 부인과 함께 요코하마에서 왔다며 "한국 개그맨들의 무대는 처음 봤는데, 굉장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라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