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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스타] '수능, 출제의 비밀' 유재명 "밉지 않은 악역 고민"(인터뷰)

▲배우 유재명(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배우 유재명(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악역을 맡았을 땐 늘 묵직한 모습으로 스크린을 채워온 유재명이 이번에는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인물로 관객과 만난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의 수능 국어과 출제위원장 문주열을 통해서다. 극 중 문주열은 욕심 많고 이기적인데 이상하게 미워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 낯선 온도를 만들기 위해 유재명은 무엇을 고민했을까.

'수능, 출제의 비밀'은 수능을 앞두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40일간 문제를 내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유재명은 소재보다 작품의 형식에 주목했다.

"소재도 신선한데 작품이 담고 있는 그릇이 블랙 코미디 형태이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포착한 것 같아요. 자그마한 조직이든 위계가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설득하고 타협하고 욕심부리는 건 어떤 곳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잖아요."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문주열은 S대 교수, 지성인으로 불리지만 젊은 세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비호감이 지나치게 부각될 수 있었다.

▲'수능, 출제의 비밀' 스틸컷(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수능, 출제의 비밀' 스틸컷(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이런 비호감 역할들에 굳어지는 건 아닐까 고민이 있었어요. 소시민 아빠 같은 역할도 했지만 악역들이 반복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깊었거든요."

그래서 그가 찾은 답은 '귀여움'이었다. 완전한 비호감 캐릭터가 아니라 입체적인 인물이어야 관객이 애정을 갖고 지켜볼 수 있다고 봤다.

"만약 제가 사다리에서 떨어진다면 옆에 있던 사람이 '떨어지지 마!'를 외치게 하는 게 목표였어요. 웃음을 얻으려고 하지만 그 웃음 안에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능, 출제의 비밀' 스틸컷(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수능, 출제의 비밀' 스틸컷(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유재명은 수능 출제위원회라는 공간을 영화의 배경이라기보다 메시지로 이해했다. 그는 40일간 전문가 집단을 한곳에 모아두고 문제를 만든다는 설정 자체가 우리 사회를 상징한다고 봤다.

"수능은 공정해야 해서 출제위원들을 합숙시키는 거잖아요.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했어요. 수능 출제위원회라는 공간 아래 있는 어른들의 모습으로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거죠."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장면들도 많았다. 회의실에서 벌어지는 집단 싸움 장면도 원래는 꼼꼼한 콘티가 있었지만, 감독은 리허설에서 배우들의 에너지를 본 뒤 방향을 바꿨다. 유재명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관객들이 '보물찾기' 할 수 있는 재미 요소들을 넣었다고 했다.

"시장에서 싸움 구경하면 웃으면서 볼 때가 있잖아요. 그런 에너지로 갔어요. 문주열과 박병태(김영민 분)가 손을 잡는 거, 고재봉(김경민 분)의 파우치 같은 것들, 짠하면서도 웃기는 디테일을 곳곳에 넣으려고 했어요. 완성본을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수능, 출제의 비밀' 스틸컷(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수능, 출제의 비밀' 스틸컷(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처음 호흡을 맞춘 이선빈은 그의 예상을 기분 좋게 빗나간 배우였다. 전작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만든 선입견이 있었다.

"굉장히 단단하고 자기주장도 분명한, 똑소리 나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헛똑똑이인 면도 있고 순수하더라고요. 작품을 앞두고 '선배님,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하면서 겁을 내는 모습도 있었어요. 그런 소녀 같은 면도 인상적이었죠."

수능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유재명은 오는 11월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부담과 책임감에 짓눌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길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배우 유재명(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배우 유재명(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요즘 같은 가을에는 길만 걸어도 하늘이 참 예쁘잖아요. 제가 학력고사를 치르던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가끔 하늘도 보고 옆에 있는 친구도 돌아보면서 매 순간을 아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요."

실제 출제위원들에게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전했다. 영화 속 풍자적인 묘사가 현실의 출제위원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출제위원분들은 지금도 합숙하고 계실 텐데요. 나중에 밖에 나와 영화를 보시더라도 허구의 영역이니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없는 문제'를 내시리라 믿고요.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배우 유재명(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배우 유재명(사진출처=(주)바이포엠스튜디오)

그는 올해 '수능, 출제의 비밀'을 비롯해 영화 '넘버원', '비광', '아가미', 드라마 '러브 미' 등 다섯 작품에 출연했다. 수능 출제위원들만큼이나 밤낮없이 노력하는 다작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런 그의 작품 선택 기준은 뜻밖이었다.

"유재명이라는 배우랑 이런 거 하고 싶다는 소중한 마음을 보려고 해요. 프러포즈 받는 사람의 마음으로요. 그래서 악역이든 비호감 역할이든 소시민이든 내가 연기할 역할보다 그 작품만의 매력을 보려고 하는 거 같아요."

이번 작품이 유재명에게 특별한 이유는 또 있었다. 경험이 쌓일수록 생기는 관성, 그 게으름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다. 그는 수능이라는 낯선 소재가 그 경계심을 다시 깨워줬다고 했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많은 것을 다 알지는 못해요. 요새 제 화두는 '다시 프레시해지자'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영화처럼 새로운 소재, 새로운 형태의 작품들을 계속 추구하려고 합니다."

이민혜 기자 lmh@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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