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의 가수 박효신을 생각한다. ‘칼머리’를 하고선 진지한 얼굴로 ‘해줄 수 없는 일’을 부르던 그를. 정식 데뷔 전에 올랐던 선배 가수 박정현의 콘서트 무대. 휘트니 휴스턴의 ‘런 투 유(Run to you)’를 부르고 난 뒤, “이제 내가 시작이구나”는 생각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그를. 넘치는 재능과 욕심으로 펄떡이던 그를.
2016년의 가수 박효신을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17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세련된 스타일링, 여유로운 무대 매너, 여전히 눈물은 많지만 불안한 기색은 없다. 달라진 건 더 있다. 목소리와 음악이다. 절절한 목소리로 지난 사랑의 아픔을 토해내던 소년은 이제 웃는 얼굴로 다가올 미래를 노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란다. “박효신이 이런 음악을?” 그리고 놀라움은 곧 두 가지 반응으로 변한다. “박효신의 멋짐을 이제야 알았다”는 사람들과 “내가 알던 박효신을 돌려줘”라는 사람들.
박효신의 창법 변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시작된 것은 2007년경의 일이다. 당시 발표한 정규 5집 ‘브리즈 오브 씨(Breeze Of Sea)’는 서정적인 발라드로 채워져 있었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굵은 목소리와 애절한 정서는 음반 제목처럼 ‘산들바람’마냥 가벼워졌다. 그 때의 반응도 지금과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효신의 멋짐을 이제야 알았어요” 혹은 “내가 알던 박효신을 돌려줘.”

그래서 박효신은 지난 9년 동안 변화에 대한 설명을 달고 살아야 했다. 지난 10월 열린 ‘아이엠 어 드리머(I Am a Dreamer)’ 콘서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창법을 바꾼 건 아니고요. 지금 표현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까 이렇게 부르게 된 거예요.” 웃는 얼굴로 이런 무시무시한 말도 했다. “제가 겪을 것 다 겪고 나이가 마흔 살쯤 됐을 때 첫 음반을 냈다면 여러분에게 혼란을 드리지 않았을 텐데.”
사무치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기엔 데뷔 초의 절절한 목소리가 제격이다. 아련한 그리움을 표현하기에는 5집이나 6집의 목소리가 최고다. 그러나 박효신은 이제 자기 자신을 꺼내놓고 우리들을 얘기하며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박효신은 내고 있을 뿐이다.
지금 박효신이 맞닥뜨린 것은 그가 스스로 세워 올린 기대감이다. 가슴을 저미는 슬픔과 슬픔을 극대화시키는 목소리.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모습을 토대로 박효신에 대한 기대를 쌓았다. 박효신이 이 기대를 이탈하려 했을 때 생겨나는 반발(“내가 알던 박효신을 돌려줘”)은, 박효신이 감내해야 하는 몫이다.
다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박효신은 변화와 이탈을 통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지점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저력은 대중의 선호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신에 초점을 맞춘 용단에서 발생한다. 한 때 마이클 볼튼, 임재범에 비견되던 소년은 어느새 오직 자신의 이름으로만 설명되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대충 갈 거였으면 인생을 걸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즐거운 멜로디에 얹어 부르며, 박효신은 지금 박효신의 길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