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홍선화 기자]
16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실제 삼청교육대에 강제 연행된 한일영 씨를 만나 참혹했던 삼청교육대의 현실을 재조명한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한다. 이들이 내세운 국보위의 목적은 ‘정의사회 구현’. 1980년 8월 국보위는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 발표를 통해 불량배 소탕을 계획, 일명 ‘삼청계획 5호’를 실시한다.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기준들로 사람들을 체포 및 분류하여 처벌하고, 심지어는 ‘순화 교육’을 목적으로 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체포된 이들을 국가폭력의 장으로 내몰았다.
현재까지도 ‘삼청교육대’라는 용어는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조차 수많은 오해와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삼청교육대의 실체는 과연 어땠을까. 당시의 기록들과 실제 삼청교육대에 강제 연행된 한일영 씨의 증언을 통해 삼청교육대의 민낯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파헤쳐본다.
불량배 소탕 계획에 투입된 경찰과 군인들은 무려 연 80만 명. 경찰서 내부에는 보안사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 하에 실적 경쟁이 이뤄져 2주 만에 무려 3만 명의 인원을 검거했다. 국보위가 삼청계획을 준비할 당시 검거 계획은 2만 명이었으나, 실제 검거된 인원은 6만 755명으로 3배가 넘는 실적을 기록했다. 몸에 문신이나 자상이 있다는 이유로, 공권력에 반기를 든다는 이유로, 지역 주민들에게 밉보였다는 이유 등 갖가지 혐의를 붙여 영장 없이 검거됐다.
검거된 이들은 군·경, 지역유지 등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들의 등급심사를 거쳐 3만 9,786명이 순화교육 대상자로 선별되었고, 등급심사 과정이 단시간에 재빨리 이뤄져 실제 본인이 무슨 죄목으로 체포되고 선별되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납득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을 만물각에서 재연해보았다.
"나는 주면 주는 대로 먹겠다. 나는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겠다" 삼청교육대 수련생 생활수칙이다.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건 다반사. 심지어 배가 고파 구더기가 들끓는 군인들이 먹다 남은 잔반통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에 깨워 기합을 주고, 교육 중에 군홧발로 짓밟고, 추운 겨울에 속옷 차림으로 나무에 묶어 매미 소리를 내게 하는 등 알려지지 않은 가혹행위도 많았다고 피해자들은 증언한다. 평생 이 지옥 같은 시간들에 대한 트라우마로 살아가는 피해자들.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참혹했던 삼청교육대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현장이었지만 당시에는 삼청교육대의 실상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 배후에 있었던 중요한 원인은 바로 언론의 동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군부는 각 언론에 보도지침을 내려 삼청교육대의 긍정적인 모습들을 홍보했다.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쏟아져 나왔던 삼청교육대에 대한 미담 기사들. 과거 KBS 자료에서도 삼청교육대를 미화한 홍보 영상이 발견되었다. 당시 언론 보도의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국민들은 삼청교육대가 불량배들의 정화를 위한 긍정적인 수단이었다고 인식되고 있다.
삼청교육대에 대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과와 피해 보상 언급은 있었지만 이들에게 제대로 된 피해보상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돌아온 건 ‘삼청교육 이수자’라는 부정적인 사회적 낙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