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수능 문제는 누가 만들고 그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낼까.
'수능, 출제의 비밀'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낸 영화다.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 국어 교사 맹보람(이선빈)은 행정 착오로 2급 국가기밀인 수능 출제위원단에 합류하게 된다. 외부와 차단된 채 40일간 합숙하며 그가 만들어야 하는 건 오탈자도 논란도 없는 '문제없는 문제'다. 모두에게 공정해야 하고 정답은 명확해야 하며 시비가 생길 여지도 없어야 한다. 매년 지켜봐 온 수능을 출제위원들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는 발상부터 신선하다.
개봉 시점도 공교롭다. 실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정리에 한창일 때 스크린 속 출제위원들은 문제를 만들고 또 검토한다. 당연하게 치러진다고 여겨온 시험이 누군가의 치열한 고민과 수 없는 검토를 거쳐 완성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코미디 장르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수능이라는 제도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웃음 뒤에 여러 질문이 남는다. 공정해야 하는 시험,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 각자의 입장과 책임이 얽힌 관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능이 갖는 무게를 알기에 영화 속 상황들이 남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선빈이 연기한 맹보람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얼떨결에 들어온 낯선 공간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원칙을 지키려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나라면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쉽게 만나기 어려울 만큼 곧은 인물이지만 그래서 더 주변에 한 명쯤 있었으면 싶은 사람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맹보람이라는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한다.

맹보람의 반대편에는 유재명이 연기한 국어 출제위원장 문주열이 있다. 유재명은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보여줬던 강렬하고 서늘한 악역과 달리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얄미운 인물을 연기했다. 자신의 논리를 앞세워 어떻게든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모습이 어찌나 얄미운지 주변 누군가가 겹쳐 보일 정도다. 대놓고 악랄하기보다 나름의 이유와 논리로 움직이기에 더 그럴듯하다. 이런 인물의 뻔뻔함과 능청스러움을 유재명은 실감 나게 살려낸다.
조연진의 활약도 눈에 띈다. 국어과 검토위원장 박경태 역의 김영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직원이자 문주열의 오른팔인 기준수 역의 전석호를 비롯해 김경민, 이진희, 황보라, 정수영, 이중옥, 류경환까지 각자의 개성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여러 인물이 한 공간에 갇혀 버리는 신경전과 대화가 쉴 틈 없이 이어지고 배우들의 탄탄한 호흡이 영화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이용재 감독의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수능 출제라는 딱딱하고 낯선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내면서도 그 안의 현실과 인물들의 갈등을 놓치지 않는다. 웃음을 주는 장면과 곱씹을 거리를 남기는 장면 사이의 균형도 고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각본으로 주목받은 그는 이번 작품에서 직접 쓴 시나리오로 장편 연출에 데뷔했다. 앞으로 그가 펼쳐 보일 이야기에도 기대가 모인다.
수능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관문이고 사회에는 공정성을 둘러싼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시험이다. '수능, 출제의 비밀'은 그 시험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수능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지만 웃음만 남기지는 않는 영화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