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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콘] 마릴린 맨슨, 록 이즈 얼라이브

▲마릴린 맨슨(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마릴린 맨슨(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사랑해요 한국” 같은 멘트는 애초에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혹은 “헬로우 코리아” 정도의 인사는 그래도 해주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웬걸. “갓뎀. 잇츠 서울 코리아(Goddam. It's Seoul, Korea)”라는 짧은 멘트와 멤버 소개를 끝으로 오후 8시부터 9시 10분까지, 70여 분을 굵고 짧게 달렸다. 쇼크록의 제왕 마릴린 맨슨의 이야기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 예스24 라이브홀에서는 마릴린 맨슨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현장에는 1700여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온몸으로 ‘록 이즈 데드(Rock is Dead)’를 외치고 있는 2~30대 마니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점잖은 중년 관객도 눈에 띄었다.

▲마릴린 맨슨(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마릴린 맨슨(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청탁금지법, 속칭 김영란 법 시행 이후 처음 나간 공연 취재였다. 지난달 28일 권익위원회가 “프레스 티켓은 금액에 관계없이 제공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놓자 기획사 측은 공연을 3일 앞두고 초청 공문을 보내왔다. “좌석 티켓은 매진된 관계로 프레스 티켓은 스탠딩 티켓으로 제공된다”라는 설명과 함께. 공연 시각은 일주일의 피로가 착실히 누적된 시간인 금요일 오후 8시. 2KG에 달하는 노트북 가방을 내 가녀린(?) 어깨가 몇 시간이나 견뎌줄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셈을 해보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취재 신청을 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 저변에는 평균 나이 40대 후반의 마릴린 맨슨이 언제 다시 한국을 찾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공연을 본 뒤에는 몇 년이 걸려도 그들은 되돌아올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솟아났다. 볼록해진 몸매에서 세월의 흔적이 읽히긴 했지만, 연주와 노래 그리고 에너지만큼은 8년 전과 변함없었다.

맨슨 달러를 흩날리며 등장한 마릴린 맨슨은 첫곡 ‘앤젤 위드 더 스캡드 윙스(Angle With the Scabbeed Wings)’를 시작으로 ‘큐피드 캐리스 어 건(Cupid Carries a Gun)’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다. 노래를 마치고 침을 뱉거나 객석을 향해 탬버린을 집어던지는 ‘시크’함은 여전했지만, 성경을 찢거나 성행위를 묘사하는 퍼포먼스는 사라졌다. 심지어 짧은 시간을 쪼개 몇 번이고 의상을 갈아입고 나오던 의외의 귀여움도 일면 엿보였다.

▲마릴린 맨슨(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마릴린 맨슨(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위 헤이트 러브, 위 러브 헤이트(We hate love, We love hate)”라는 외침으로 시작된 ‘이레스폰서블 헤이트 앤썸(Irresponsible hate anthem)’에서는 “퍽 잇(Fuck it)” 가사에 맞춰 수 천 개의 가운데 손가락이 공중에 떠오르는 장관이 펼쳐졌다. ‘스위트 드림(Sweet Dream)’은 또 어떻고. 몇 마디 기타 연주만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객석은 보컬 마릴린 맨슨이 거대한 철조물에 몸을 맡긴 채 등장하자 함성으로 터져나갈 듯 했다. ‘크루시 픽션 인 스페이스(Cruci-Fiction in Space)’를 지나 ‘코마 화이트(Coma White)’가 연주되자 객석은 또 한 번 들끓었다. 맨슨은 붉은 면사포를 뒤집어 쓴 채 흡사 교주 같은 모습으로 관객들을 홀렸다.

앙코르곡이 시작되기 전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관객들은 “맨슨”을 연호했다. “퍽 유” 같은 욕설은 예삿말이고 “나와라”는 애타는 외침, 심지어 “하야하라”는, 시공을 뛰어넘은 일갈도 터져 나왔다. 두 개의 드럼스틱을 들고 등장한 맨슨은 손수 드럼을 두들기며 ‘뷰티풀 피플(Beautiful People)’의 시작을 알렸다. 마릴린 맨슨의 노래 중, 보기 드물게 짧은 곡이다. 무대가 끝난 뒤, 가라앉지 않은 흥분과 왠지 모를 아쉬움을 안고 공연장 근처를 서성였지만 리앙코르는 없었다. 맙소사. 이번 투어에서는 ‘록 이즈 데드’를 부르지 않는다는 괴소문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주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연이었다. 어지러운 시국으로 함께 어지러워진 마음을 비워내기에도 말할 것 없이 좋았다. 욕설과 샤우팅과 의미 모를 하야 촉구가 어우러졌던 공연장을 떠나며 생각했다. “록 이즈 얼라이브!(Rock is alive)”.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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