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시규어 로스의 내한 공연이 열린 지난 22일, 서울 최저 기온은 2도 아래까지 떨어졌다. 찬바람에 몸을 떨면서도 문득 시규어 로스가 공연 날짜를 무척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상 여행을 떠나기에 제격인 추위였다.
아이슬란드의 국민 밴드로 불리는 시규어 로스는 자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나 가수 뷔욕, 국내 배우 최강희 등이 시규어 로스의 팬을 자청했다. 명성에 걸맞게 이날 현장에는 7000여 명의 팬들이 모여들었다. 공연장을 새카맣게 채운 관객들을 바라보며, 궁금했다.
첫째, 이토록 생경한 음악이 어떻게 대중성을 확보했을까. 둘째, 스탠딩 존의 관객들은 어떤 자세로 이들의 음악을 즐길까. 셋째, 시규어 로스는 영어로 말할까, 아이슬란드어로 말할까.

세 번째 질문부터 답을 하자면, 시규어 로스는 이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 전, 아이슬란드어로 끝 인사(로 추정되는 말) 한마디를 남긴 게 전부다. 말(言)이 빠진 자리는 음악이 메웠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오베르(Overdur)’를 시작으로, ‘스타라울푸르(Staralfur)’, ‘사이글로푸르(Sæglopur)’, ‘바카(Vaka)’, ‘이-보우(E-Bow)’ 등 12곡의 무대를 쉼 없이 보여줬다.
두 번째 질문. 스탠딩 존의 관객들은 어떤 자세로 공연을 임했을까.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들으며 슬램을 즐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예상 외로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폭발적이었다. 오리 포들 디러손의 드럼은 쉴 틈 없이 내달렸고 욘 소르 비르기손은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켜며 관객들을 황홀경으로 안내했다. 몇 년 전 스탠딩 존에 서서 이소라의 ‘트랙3’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시규어 로스 공연 관객들이 비슷한 심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주를 부유하는 기분이었으리라.
가장 궁금했던 건, 전형적이지 않은 이들의 음악이 어떤 지점에서 대중성을 얻었느냐다. 한국과 아이슬란드의 물리적, 정서적 거리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의문이었다. 빤한 말이지만 직접 들어보니 알겠더라. 아이슬란드어와 희망어(멤버 욘 소르 비르기손이 직접 만든 언어)로 이뤄진 가사는 도무지 내용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상상력을 더욱 자극했다. 기존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기에 이들의 연주는 아주 정교하게 제련된 음악 같으면서도 가장 날 것의 소리 같기도 했다. 미래적이면서 원시적이었다.

음악과 함께 펼쳐진 조명과 영상 또한 장관이었다. 공연 초반 무드 있게 무대를 밝히던 조명은 공연이 절정으로 달릴수록 함께 뜨거워졌다. 마지막 곡 ‘포플라기드(Popplagid)’는 단연 압권이었다. 화려하게 터지는 조명과 천장을 향해 쏘아지는 레이저, 에너제틱한 연주와 신비롭게 울리는 욘 소르 비르기손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15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 모두 꼼짝없이 무대에 빨려 들어간 모습이었다.
“(낯선 언어로 가사를 쓰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만의 이미지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는가?” 시규어 로스는 최근 진행된 이메일 인터뷰에서 영어 가사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의 바람대로, 이날 모인 수 천 명의 관객들 모두 자신만의 환상 세계를 경험했다. 90분 동안 이어진 비현실적인 상상 여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