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서현우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해본다고 했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이하 로또 1등)' 인터뷰를 마치고 재미 삼아 산 로또가 덜컥 20억 원에 당첨된다면 인생이 달라질까. 그의 답은 '아니요'였다.
"20억이 아니라 200억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할 거예요. 작품을 제작해 보거나 극단을 꾸려보는 식으로 시도의 폭은 넓어지겠지만 배우를 관두고 여행만 다니며 살 것 같지는 않아요. 하하."
그래서인지 극 중 공은태(이준혁 분)가 받은 로또 1등 당첨금 실수령액 13억 원이 더 와닿았단다.
"130억이었다면 '저 사람은 왜 회사를 다니지?' 싶었을 거예요. 통장에 뒷배로 꽂아둘 만한, 근거 있는 자신감을 채워줄 만한 절묘한 금액이죠."

'로또 1등'을 본 현실 직장인들의 반응도 남달랐다. 특히 양준호가 거래처 팀장 앞에서 욕설을 내뱉는 장면에 대해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통쾌했다", "속 시원했다"는 연락이 많이 왔다고 털어놨다.
"그 장면을 준비하면서 친구들한테 윗사람이나 거래처 분에게 어디까지 대들 수 있는지 물었어요.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대리만족이라는 판타지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잘하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양준호의 마음은 서현우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스스로 준비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 첫 주연작 '악의 꽃', 영화 '남산의 부장들', '헤어질 결심' 등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서현우는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작품들을 '로또'라고 불렀다.

"연극, 뮤지컬, 독립영화, 단편영화를 하면서 영화사에 프로필도 열심히 돌린 시기가 있었어요. 좌절도 많이 했죠. 그래도 꿋꿋하게 계속했어요. 운 좋게도 이현욱, 이동휘, 류준열, 김준한, 이상희처럼 포기하지 않는 동료들이 많았어요. 그 친구들도 지금 다 자리를 잘 잡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서현우의 연기 스펙트럼은 넓다. '로또 1등'의 양준호처럼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를 다하는 직장인부터 올해 초 방영한 ENA 드라마 '아너: 그녀들의 법정'의 박제열처럼 악랄한 검사까지 천 가지 얼굴을 가진 배우다. 그런 그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바로 난이도다.
"익숙한 걸 해내면 고착화되고 성장이 없을 것 같아서요.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캐릭터보다는 연기하기 어려워 보이는 인물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서현우의 다음 무대는 오는 12월 5일 첫 방송되는 tvN 토일드라마 '기프트'다. 대본리딩에 참여한 사진이 공개되며 주인공 중 하나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서현우는 "정확히는 특별출연"이라고 바로잡았다.

"극 초반에 김우빈 배우에게 세게 시련을 주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특별출연이 참 어려워요. 극의 중심은 아닌데 정확하게 극에 영향을 주고 빠져야 하니까 난이도가 높은 편이거든요."
특별출연을 포함해 올해 서현우는 '아너: 그녀들의 법정', '클라이맥스', '오늘도 매진했습니다',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2', '로또 1등'과 방송 예정인 '기프트'까지 총 6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이러한 쉼 없는 행보는 '갈증'이라는 원동력 덕분에 가능했다.
"작품을 못 하던 시절에 뼈에 새긴 갈증이 있어요. 힘닿는 데까지 해보자는 게 제 소신이에요.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일과 취미의 경계가 흐려지더라고요. 연기는 제 유일한 안전한 놀이터예요."

'연기 청부업자'로 불리는 그에게도 미지의 영역이 있다. 바로 멜로다.
"미장센이 강한 비주얼적인 멜로 말고 영화 '파이란'처럼 그리움과 애틋함, 미안함이 요동치는 어른 멜로를 하고 싶어요. 제가 쌓아온 테크닉을 와르르 무너뜨려 줄 작품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로또 1등'을 마무리하며 서현우는 현실의 직장인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고 했다. 많은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며 하루하루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로또 1등'이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우 서현우는 직장인으로 따지면 지금 어느 직급쯤일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배우는 승진도 직급도 없다"라고 답했다.
"조연이 되면 다음엔 주연, 주연이 되면 슈퍼스타가 되겠지 하는 꿈을 꾸던 때도 있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공들여 해냈으면 다음엔 수월해야 하는데 또 새로운 산이 나타나요. 배우로 산다는 건 끊임없는 도장 깨기의 연속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