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비즈엔터

'차이나는 클라스' 신병주 교수, 아들 사도세자에 악역 자처한 조선 영조 생애

[비즈엔터 김세훈 기자]

▲신병주 교수(사진제공=JTBC)
▲신병주 교수(사진제공=JTBC)

신병주 건국대 교수가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조선 21대 임금 영조의 생애와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14일 방송되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가 다시 출연해 조선의 제21대 임금 영조의 생애와 업적을 강의한다.

신병주 교수는 먼저 두 가지 숫자 83, 52를 제시하면서 강연을 시작한다. ‘83’은 바로 영조의 나이로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인 47세를 크게 웃돌며 83세까지 천수를 누린 조선 최장수 왕 영조를 뜻한다.

또 52는 영조의 재위 기간 52년을 상징한다. 영조가 조선왕조 500년의 10분의 1을 집권한 데에는 철저한 건강관리가 뒷받침되었다고 한다. 특히 영조는 52년간 7,284회의 건강검진을 할 정도로 건강관리에 진심이었는데, 이 결과 70대에 검은 머리가 새로 나고 80대에 빠진 이가 자라는 기적까지 경험했다고. 자기 관리 끝판왕 영조의 건강 비결이 방송에서 모두 공개될 예정이다.

건강에 진심인 영조는 성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직접 홍화문 앞으로 나오는 등 소통에도 진심이었다. 당시 옷감인 포로 납부하던 국방 세금의 부담이 백성들에게 점점 커지며 고통을 호소하자, 영조는 백성과 유생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진행해 그간 내던 포의 양을 반으로 줄인 '반값군포제', '균역법'을 실시하며 백성의 부담을 덜어줬다.

발로 뛰는 영조의 업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물이 잘 흐르도록 물 아래에 있는 토사를 파내는 '청계천 준천' 공사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당시 공사 현장에 방문한 모습이 그림으로도 나와 있어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업적을 세우며 조선 후기의 중흥을 이룬 영조에게도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아들 사도세자다. 영조 나이 마흔둘에 얻은 귀한 사도세자는 생후 백일에 생모의 품을 떠나 세자의 처소인 저승전으로 옮겨졌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이는 세자가 15살이 되던 해 대리청정을 시작하며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세자에 대한 책망이 지나칠 정도라며 신하가 상소를 올릴 정도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몰아세웠는데, 이러한 질책의 정도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그 기록이 세세하게 전해져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한 영조의 아들을 향한 비뚤어진 애정. 악역을 자처한 영조의 선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확인한다.

김세훈 기자 shkim@bizenter.co.kr
저작권자 © 비즈엔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bizenter.co.kr

실시간 관심기사

댓글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