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여자가 자신의 아들 뻘 남자에게 연락을 받고 몸을 치장한다. 우아한 프릴이 달린 흰색 원피스에 머리에는 왕관 같은 장식품도 얹었다. 흡사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 같다. 남자는 “마지막 업무 보고를 드리겠다”면서 여자에게 가까이 얼굴을 다가간다. 눈에 서린 감정이 애(愛)인지 증(憎)인지 모호하다. 남자는 여자를 껴안는다. 여자도 남자의 등을 쓰다듬는다. 남자는 여자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자신이, 여자가 호시탐탐 노려오던 대기업 회장의 친손자라고. MBC 주말드라마 ‘돈꽃’의 한 장면이다.
세속적인 욕망을 대표하는 ‘돈’과 순수함의 상징인 ‘꽃’을 연결해 만들어진 이 작품의 제목은 “돈을 꽃처럼 여기고 사는 사람들, 돈을 좇느라 꽃 같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이야기”(김희원 PD)를 함축한다. 부와 권력을 탐욕하는 재벌가 사람들, 재벌가의 혼외자와 그에 얽힌 출생의 비밀, 남녀의 얽힌 애정 관계 등 ‘막장’의 요소를 갖췄음에도 드라마는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다. 오히려 우아하게, 때론 아찔하게 흐른다. 덕분에 ‘돈꽃’은 이달 3일 방송된 마지막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인 23.9%를 기록했다.
베테랑 배우와 참신한 연출의 앙상블이 이뤄낸 성과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강필주 역의 장혁과 청아그룹 총수 맏며느리 정말란을 연기하는 이미숙의 호흡이 특히 돋보인다. 애와 증, 믿음과 경계, 협력과 배신을 오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아들 장부천(장승조 분)을 회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동원하는 정말란은 강필주에게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며 의지한다. 하지만 강필주는 장부천을 내세워 정말란의 호감을 산 뒤 그를 배신할 계획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이 가면 안에 감춘 속내와 그것이 드러날 때의 긴장감은 팽팽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강필주가 정말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감독은 정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출로 전개를 이끈다. 아름다운 풍경은 등장인물의 순수성과 속물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인물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구도나 격정적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음악은 배우들의 연기에 날개를 달아준다. 속살보다 실루엣이 에로틱한 법. 김희원PD는 인물의 갈등을 자극적으로 풀어내는 대신, 그들의 속내를 은밀하게 보여주며 시청자를 작품 안으로 이끈다. 막장 소재로 명품을 완성한 비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