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주희 기자]
여성 영화가 귀한 요즘, ‘당신의 부탁’(감독 이동은)과 같은 따스한 영화는 등장만으로도 영화 시장과 배우에게 큰 선물이 된다. ‘당신의 부탁’은 사고로 남편을 잃고 살아가는 32살의 효진(임수정 분)에게 남편의 아들인 16살 종욱(윤찬영 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영화. 지난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 공식 초청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은데 이어 19일 정식 개봉했다.
임수정은 “빨리 개봉되길 바랐다. 영화를 제작할 때부터 재밌게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객분들 반응도 좋았는데, 엄마들 이야기다 보니까 여성 관객들이 공감을 많이 해주시더라. 극에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소재가 좋은 작품으로 완성됐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으며, GV(관객과 대화)도 많이 예정돼 있다고 귀띔했다.
‘당신의 부탁’은 만년 소녀 같은 배우 임수정이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한 것으로 주목 받았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엄마’의 모성애를 강조하지 않는다. 임수정이 맡은 효진은 16살의 아들을 두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32살로, 법적으로는 엄마이지만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는 인물이다.
“내 첫 엄마 역할이다. 엄마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감독님께서 임수정 역시 엄마 역할이 처음이기 때문에 효진의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해서 용기를 냈다. 효진은 종욱에게 자신을 엄마라고 생각해 달라는 기대도 안 할 거 같았다.”
극중 효진과 종욱은 서류상 모자이지만 피가 섞이지도 않았고 함께 살아본 적도 없다. 연결고리인 남편도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효진의 친구는 “누군가 보기엔 종욱을 맡아 기를 사람을 효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키우지 말아야 할 사람도 효진이다”라고 말하면서 무모하게 종욱을 맡는 효진을 나무란다.
“효진이 종욱을 맡는 이유는 관객이 납득해야 하는 포인트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시간이 지났지만 효진에게는 슬픔과 공허함이 남아있다. 우울증 증상 중 대책 없이 일을 저질러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효진의 심리 상태를 보면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본인도 홀로 살아가고 있는데 종욱 또한 주변에 어떠한 어른도 없으니 인간 대 인간으로 안됐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효진은 종욱을 처음으로 집으로 들이기 전, 그동안 현관에 놓아두었던 남편의 구두를 치운다. 그렇게 종욱은 허전했던 효진의 공간을 새롭게 채우게 된다.
“초반 효진은 삶의 의욕이 없다. 종욱과 살면서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지만 종욱을 걱정하고, 효진에게 없던 에너지와 생기가 발생한다. 그만큼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의도치 않게 에너지를 만들어서 한 사람이 살아질 수도 있는 거구나 생각도 했다. 종욱의 엄마찾기에 동참하면서 죽은 남편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된다. 그제야 남편을 진짜 떠나보내게 되는 거다.”
영화는 효진과 종욱, 그리고 또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극중 효진은 자신의 엄마(오미연 분)에게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고, 엄마 역시 효진에게 원망을 늘어놓기도 한다. 특히 연출을 맡은 이동은 감독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를 세심하게 어루만져 관객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다.
“배우들이 대사를 바꾼 건 하나도 없다. 시나리오부터 섬세했다. 이동은 감독님 대본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실제로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한번 씩 못된 말을 하지 않나. 요새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웃음) 우리 엄마가 영화를 보면 어쩜 자신한테 했던 것을 똑같이 했냐고 하실 것 같다. 이 얘기를 오미연 선배님께 하니까 그게 엄마와 딸이라고 하더라.”
엄마 역할까지 캐릭터 소화력을 넓힌 임수정은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동안 임수정은 영화 매체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책 출판 등 가리지 않고 대중과 적극적으로 만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들이 말리고 뭐라고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길을 가겠소’ 하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 때론 악역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사실 효진도 그렇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한다.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인간 임수정으로서도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면서 살고 싶다. 극중 대사에 ‘선택을 한다는 건 포기할 것이 생기는 거야’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처럼 포기하는 것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바쁘고 행복하다. 그게 요새 내 가치관이다.”
“드라마는 2004년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오랜만에 ‘시카고 타자기’를 했는데, 그동안 내가 ‘왜 드라마를 안 했나’ 할 정도로 두려운 게 사라졌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시카고 타자기’를 계기로 ‘드라마 더 할래요’라는 말을 하게 되더라. 예능은 나와 잘 맞는 게 있으면 이제 한 번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또 내가 채식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관련된 좋은 이벤트가 있다면 참여하고 싶고, 일단 출판사와 얘기한 것이 있어서 에세이 책을 완성시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