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 MC 최불암은 선조들의 지혜가 남긴 또 하나의 재산, 지푸라기로 엮은 밥상을 맛보러 떠났다.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농경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쌀을 수확함과 동시에 그에 따른 부산물인 지푸라기도 생겨났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짚을 그저 부산물이 아닌 요긴한 생활용품의 재료로 썼다. 추수 후 곡식은 짚으로 엮은 가마니에 보관했고, 이엉 잇기로 초가지붕을 새로 장만했다. 농한기인 겨우내 멍석을 짜고 짚신을 만들었다. 통풍이 잘되고 단열재 역할까지 했던 지푸라기는 농경사회의 알짜배기 산물이었다.
선조들의 지푸라기 쓰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푸라기는 음식의 맛을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메주를 만들 때 그들은 짚을 이용했다. 볏짚에서 나오는 균이 콩의 발효를 돕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생선이나 고기 등을 익히기 위한 연료로 짚을 사용했다. 이번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곡식을 털고 난 후 남겨진 짚이 밥상 위에서 어떤 쓸모로 재탄생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주 임씨 집성촌인 곡성군 고달면 백곡마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어린이들 마냥 빈들에 모여 볏짚 더미 위에 불을 붙인다. 옛날 기억을 되살려 볏짚으로 닭을 구워 먹기 위해서다. 볏짚에서 닭을 구울 때 나는 구수한 향이 옛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또 겨우내 무를 보관하기 위해 단열효과가 있는 볏짚을 사용해 저장고를 마련한다. 프라스틱 제품이 넘쳐나는 요즘에 이처럼 짚 쓰임의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는 건, 백곡마을의 자랑인 초고장 임채지 선생 덕분이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는 그는 평생 짚으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며 살았고 그 영향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짚 살림꾼들이다. 농한기가 되면 마을회관에 모여 짚공예도 하고 함께 밥도 해 먹는다.
볏짚과 흙을 켜켜이 쌓은 저장고에 넣어뒀다 겨우내 꺼낸 무가 특히 달고 맛있는 이 계절. 잘게 썬 무로 지은 무밥을 잘 띄운 청국장에 비벼 먹으면 이만한 별미가 없다. 짚을 꼬아 말린 조기를 고사리 양념에 넣고 졸여주면 이 또한 맛난 반찬이 된다. 풋고추를 다져 넣은 밀가루 반죽에 상추를 옷 입혀 구운 상추전은 마을 밥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짚을 엮어 예술도 하고, 요리도 하는 백곡마을로 향한다.

남원시 수지면 진곡마을에는 산골짜기 깊은 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윤자현씨가 있다. 그에게는 또 다른 가족이 있는데 바로 70두의 소다. 자현씨는 15년 전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귀향해, 아버지 뒤를 이어 소를 키우고 있다. 그에겐 소가 자식 같은 존재다. 그래서 소 먹이도 허툰 걸로 주지 않는다. 볏짚을 모아 소 먹이에 쓴다. 이때 그냥 마른 짚을 주는 게 아니라 쌀겨, 옥수수, 깻묵 등 여러 가지 식재료를 함께 넣고 끓여 쇠죽을 만든다. 매일 아침마다 옛 방식 그대로 쇠죽을 만들어 소들을 먹이는 ‘소 아비’ 자현씨를 만나러 가보자.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돌아오면, 콩 익는 냄새가 난다. 냄새의 근원지는 나오주씨 집 뒷마당. 매년 이맘때면 황토방에 짚을 깔고 직접 쑨 메주를 그 위에 놓는다. 3일에 한 번씩 메주를 뒤집다 보면 하얀 곰팡이가 피어나는데, 그러면 잘 띄운 메주 덩어리가 완성이다. 여기에 짚에서 나오는 야생균 즉 바실러스균이 콩의 발효를 돕는 원리가 숨어있다. 메주를 쑤는 날이면 나오주씨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바로, 오주씨의 사돈 최경애씨. 경애씨는 메줏값 대신 고기를 사와 음식을 대접한다. 서로를 사부인으로 부르기보다 언니, 동생으로 부른다는 오주씨와 경애씨의 웃음꽃 활짝 핀 메주 쑤는 날을 구경하러 가본다.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을 품은 무안은 예부터 산물이 풍부했다. 원래는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는 숭어를 볏짚에 구워 먹었지만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숭어를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러자 식육점을 운영하던 나승대씨 조부모님은 돼지고기를 볏짚에 구워 먹었고, 그 맛에 반해 식당을 열었다. 그리고 그것이 3대째 이어져 손자인 승대씨가 하고 있다. 고기 냄새 따라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떠오른 옛 추억을 따라 영산강이 내어준 산물들로 요리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