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가족의 유대감을 과시하지만 재산 분할에 칼부림 나는 게 현실이다. 재벌들이 승계권을 위해 이사회를 소집하거나 주식 다툼을 벌이는 것도 영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HBO 드라마 '석세션'은 규모가 남다른 미디어 재벌 가족이 몇 십조를 능가하는 재산 앞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다.
극 중 '웨이스타 로이코'는 TV 방송국부터 테마파크까지 미디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재벌 회사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을 연상시키는 이 가문의 수장은 치매 초기 증상의 '로이'다. 건강 상태로 경영권에서 손 떼려는 로이의 발목을 잡는 건 자신보다 유약하고 못 미더운 자식들이다.
장남 '코너'는 목장을 운영하며 경영에는 무지한 바보이고, 차남 '캔달'은 부사장 자리에 앉아있지만 쉬운 계약도 번번이 실패하는 머저리이다. 셋째는 시종일관 껄렁껄렁한 태도를 보이는 망나니에, 막내딸은 정치권에서 일하는 속물, 그 자체다. 이들 중 한 명에게 젊은 날을 바쳐 일궈 놓은 내 회사를 물려줘야 한다니, 로이의 입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80세 생일, 로이는 가족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을 한다. 유력한 승계자였던 켄달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남은 형제들도 야욕을 드러내며 답도 없는 권력 다툼이 시작된다.
명품 막장 드라마.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회사 경영권을 사이에 둔 재벌들의 모습은 막장 그 자체이다. 고고하게 앉아 수 싸움을 벌이며 반전을 거듭하는 그런 수준 높은 권력 다툼이 아니다. 형제들은 서로 물고 뜯고 말 그대로 때리며 유치한 싸움의 끝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들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뒤통수를 치며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옛 속담을 그대로 재연한다. 물론, 죽음 앞에서도 가족애는 찾아볼 수 없다. 뇌출혈로 생사를 헤매는 아버지의 병실에서 그의 사망뉴스를 검토하는 아들 캔달을 보면 천륜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
이런 뻔한 막장 재벌 스토리를 '석세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탈바꿈해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석세션'은 욕망에 젖은 가족 간의 대립 속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탄탄한 각본과 세련된 연출,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지는 배우들 열연으로 제72회 에미상에서 최고의 드라마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즌 4까지 이어진 지금, 여전히 많은 시상식의 후보로 식지 않는 영향력을 과시해 HBO의 간판 작품임을 입증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낯익다면 그건 바로 '오징어게임'의 수상을 번번이 가로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제27회 미국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오징어게임' 대신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오는 9월에 열릴 에미상에서도 양강구도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게임'과 '석세션'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오징어게임'이 더는 추락할 곳 없는 밑바닥의 잔혹함으로, '석세션'은 더는 올라갈 곳 없는 꼭대기의 이중성을 보여주며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상금을 얻기 위해 게임의 참가자들을 이겨야 하고, '석세션'은 경영권을 쟁취하기 위해 가족들을 배신한다. 돈 앞에서 다른 인간은 그저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할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이 사회에서 친구든 가족이든 전혀 모르는 제3자이든 그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필요성이 사라진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나 가진 자들이나 부 앞에서는 추악한 본능만을 따를 뿐이다.
부의 꼭대기에서 한없이 고상할 것 같은 재벌 후계자들. 실상은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은, 어쩌면 더 엉망진창처럼 보이는 그들의 몰락에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막장 드라마. HBO '석세션'은 웨이브에서 만나볼 수 있다.
[편집자 주] '비즈X웨이브 리뷰'는 비즈엔터가 국내 첫 통합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와 함께 만드는 콘텐츠 큐레이션 코너입니다. 이 리뷰는 웨이브 공식 에디터 '노진아' 님과 함께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