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왓챠, 쿠팡플레이, 디즈니플러스, 시즌(seezn)… 지상파 채널 개수보다 OTT 서비스가 많아졌다. OTT 오리지널 시리즈에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콘텐츠, 극장 개봉작까지 더하면 볼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다.
'윤준필의 이거 어때?'는 윤준필 기자가 직접 끝까지 다 본 콘텐츠를 리뷰하는 시리즈다. 콘텐츠 선택 장애를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편집자 주]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안정적인 선발 투수가 갖춰진 팀은 투수진 운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며, 강력한 투수의 공이 경기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수가 타자를 상대할 때, 첫 공을 스트라이크 존 안에 넣을 수 있다면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쉽다.
영화에서도 초구가 중요하다. 영화가 시작한 지 5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 영화는 관객과의 밀당에서 주도권을 가져올 수가 있다.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도 확실한 초구를 던져 주도권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그 재난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난 영화다. 지난해 열린 제 74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정됐으며 배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김소진, 박해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화려한 배우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초구'는 임시완이다. 그는 공항에서 정처 없이 떠돌며 '사람이 많이 타는 비행기'를 찾는 미스터리한 인물 진석(임시완)을 맡았다. 진석은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비행공포증을 참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르려는 재혁(이병헌)과 공항에서 시비가 붙는다. 이후 진석은 하와이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진석은 비행기 안에서 테러를 감행한다. 그가 저지르는 테러는 실제로도 벌어진 적도 없는 케이스다. 악의의 당위성을 찾아볼 수 없다. 임시완은 그런 진석을 차분하게, 또 광기가 돋보이게 그려냈다.
임시완이라는 강력한 초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면서, 관객들 역시 '거대한 밀실' 안의 승객 중 하나가 된다. 비행기가 360도 회전하는 순간에는 실제 비행기에 탑승한 듯한 몰입감과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은 좀비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것은 장르일 뿐, 재난에 대응하는 기차 안 인간 군상극이었다. '비상선언'도 '부산행'과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관객들은 극 중 비행기 안에 펼쳐진 '작은 인간 사회'를 마주한다. 비행기 안팎으로 재난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펼쳐지는데, 이기심을 앞세우는 사람들과 희생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있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코로나19가 처음 창궐했을 때를 비롯해 여러 재난들이 우리 사회를 덮쳤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관객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재난과 겹쳐지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의 눈은 비행기 안에, 가슴은 영화와 똑 닮은 현실에 집중하게 된다.
아쉬운 건 '부산행'의 단점마저 닮았다는 것이다. '부산행'에서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낀 할머니가 기차 문을 열어 좀비 떼를 객실로 불러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가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비상선언'에서도 중후반부가 넘어가면 그런 이상한 선택을 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초구' 임시완이 쌓아놓은 영화의 긴장감은 서서히 무너지고, 그때부터 관객들은 영화의 내용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인천에서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대체 비행시간은 몇 시간일까?' 같은 것 말이다.
또 다른 '부산행'의 단점이었던 신파적 요소가 '비상선언'에도 있다. '신파'가 영화에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의 감정이 고점에 올랐을 때, 눈물샘을 건드리는 '신파'는 나름 훌륭한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선언'의 신파는 반복되는 위기와 갈등에 관객들이 질릴 때쯤 등장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40분. 8월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