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소연 기자]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 · 문화 이야기.
"죄송한데, 그럼 내일 당장 진행해도 될까요? 도저히 시간이 안되네요."
KBS2 '태양의 후예'와 '구르미 그린 달빛', 그리고 tvN '도깨비'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지난해 신드롬 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것과 미술감독 김소연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김소연 미술감독은 KBS아트비전 소속으로 '칼과꽃', '정도전', '아이언맨', '너를 기억해' 등을 작업했고, 올해부터 홀로서기에 나섰다. 김소연 작가에게 인터뷰 문의를 하자 "당장 내일 오후가 아니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미 3주치 스케줄이 모두 빼곡하게 차있었기 때문. 해외 출국 일정까지 있어 중간엔 시간을 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김소연 미술감독과 인터뷰가 극적으로 성사됐다.
드라마에서 미술의 영역은 카메라 앵글 속에 비춰지는 모든 것을 총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트부터 작은 소품까지 모두 미술감독의 손을 거친다. 1960~70년대 미국을 콘셉트로 잡은 '도깨비' 속 김신(공유 분)의 집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 당시에 만들어진 전등을 치약으로 닦는 작업까지 했다. 강원도 태백을 '태양의 후예' 가상의 나라 '우르크'로 만든 1등 공신도 김소연 미술감독이었다. 아직도 태백의 뜨거운 태양 볕 탓에 생긴 알레르기로 고생 중이던 김소연 미술감독은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너무나 밀접한 미술과 그 뒷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했다.
Q: 어쩌다가 알레르기가 생긴 건가.
김소연: '태양의 후예'를 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태백에 갔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이서 햇볕을 쬔 것도 처음이라 저도 몰랐다.(웃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Q:지난해 히트 드라마는 모두 김소연 미술감독의 작품이더라.
김소연: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의 이응복 PD와는 '드림하이2'도 같이 하고, 단막도 2개인가 빼놓고 거의 같이 했다. 김성윤 PD와는 친한데 성향이 비슷해서 많이 싸운다.(웃음) 그래서 제가 '구르미 그린 달빛'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에서 제가 '구르미 그린 달빛'에 들어간다고 소문이 나 있는 거다. 한 6명에게 '네가 한다면서?'라는 얘길 들었다. 그때 난 이미 '도깨비'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나만 빼고 모두가 아는 그런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즈음 김성윤 PD에게 연락을 받았다. 이미 이응복 PD와도 정리를 한 상황이더라. 난 이응복 PD를 믿었는데.(웃음) 그때 '구르미 그린 달빛' 상황이 급했던 터라 급하게 투입이 됐다. 그래서 '도깨비' 2부 엔딩에서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함께 걷는 장면을 찍을 때 김성윤 PD가 커피차를 쏘면서 놀러왔다.
Q: 방송가에선 많은 연출자들이 함께하고 싶지만, 또 함께하기 힘든 미술감독이라고 하더라.
김소연: 초반에 까칠하고 예민하게 굴었던 부분이 있던 건 인정한다.(웃음) 전 영화미술을 하다가 KBS2 '그들이 사는 세상'만 작업해 보고 2011년 KBS아트비전에 들어오게 됐다. 이런 큰 조직은 처음이라 속 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도 몰랐다. 사회생활이라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6개월 만에 뛰쳐나갔다 다시 오게 됐는데, 그제야 정신이 들더라. 시행착오도 적어지고, 사람들도 알게 되면서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다.
Q:'김소연은 예술가라 힘들다'라는 말도 있던데.
김소연: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웃음) 세트를 잘 안 고쳐준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 거 같다. 이응복 PD도 저한테 성격 좋아졌다는 말을 했다. '드림하이2'를 할 땐 제가 입사 2년차라 뭘 해달라고 해도 '안되요', '못해요'라고 했으니까. 너무 모르고 힘드니 항상 짜증도 베어 있었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를 할 때엔 안 그러니까. 성격이 좋아진 게 아니라 할 줄 아는 게 많아져서 그런 거다.
Q:반대로 김소연의 장점은 한정된 제작비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최고의 완성품을 뽑아내는 거라고 하더라.
김소연: 그렇게 조정하고 뭔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좋아하고 재미를 느낀다. 사극은 어디서 어떻게 꾸미는지가 중요하다. 사극 촬영장 중에는 작고, 협소한 곳도 많지만 예산과 작품의 느낌에 맞으면 변형시켜서 하는 거다. '구르미 그린 달빛' 속 편전이 '도깨비'의 그곳과 같다. '구르미 그린 달빛'을 위해 52m짜리 세트를 만들었는데, '도깨비' 팀에서 과거 장면 촬영을 위해 양해를 구하고 진행한 거다. '도깨비'를 찍을 땐 문을 모두 위로 올려 넓게 찍었더니 '구르미 그린 달빛'과 다른 공간처럼 보이더라.
Q: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소연:보여주려는 콘셉트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편이다. 사진 두개를 갖다놓고 '이거와 이걸 합한거'가 아니라 그 두개를 합한 이미지를 찾아내 보여주는 거다. 한 번도 (샘플 이미지를) 찾지 못한 적은 없다. 제가 작품을 쉴 때 하는 것도 그런 이미지를 채우는 거다. 집에서 2~3일 동안 안 나가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상들을 몰아 보면서 참고가 될 만 한 장면은 사진을 찍는다. 페이퍼를 보면서도 중독에 가깝게 읽고. 제 컴퓨터에 '그냥'이라는 폴더가 있는데 여기에 연도별로 그런 것들을 계속 넣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 마른 스폰지가 된다. 대본을 보고 그때 찾으면 늦는다. 이미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뭔가 생각하면 그걸 한 바퀴 돌리면서 찾는다.
Q:지난해엔 그런 이미지를 채울 틈도 없이 바쁘게 지냈을 것 같다.
김소연: '구르미 그린 달빛'과 '도깨비' 외에 '화랑'과 '마녀보감'도 했다. 작품이 연달아 있다 보니 바빠서 현장에도 못가보고, 세트가 수정되는 것도 직접 봐주지 못했다. 그게 너무 미안하다. '화랑'과 '마녀보감'을 마친 후 '숨을 쉬자' 하던 차에 '구르미 그린 달빛'에 들어가게 된 거다. 더군다나 합류도 늦어서 제가 들어가는 날 세트 발주를 해야 했다. 제가 디자인을 하는 동안, 동시에 세트를 짓는 작업이 진행됐다. 죽음을 맛본 거 같다. 3일 동안 잠을 못 잤을 땐 '지금 잠들다 못 일어나면 어떡하나' 무서워서 잠들지 못한 적도 있다.
Q:그렇다면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건 '구르미 그린 달빛'인 건가.
김소연:아니다. '태양의 후예'가 제일 힘들었다. 힘들다고 징징거릴 여유조차 없을 만큼 힘들었다. '너를 기억해'를 끝내고 넘어가느라 본래 시작해야 하는 시점보다 조금 늦어진 상태였는데 처음 해보는 게 많았다. 전쟁, 지진 이런 것도 해본 적이 없었고, 처음 짓는 세트가 많아 오래 걸리고 회의도 많이 했다. CG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디자인까지 다 해야 하니까 너무 바쁘고, 시간은 촉박했다. 세트도 한 번 짓고 나면 대개의 경우 중간에 터치할 게 별로 없는데, '태양의후예'는 계속 다시 지었다. 매일 밤새고, 회의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Q: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했던 '태양의후예' 연출자인 이응복 PD와 '도깨비'까지 같이 하게 됐다.
김소연: '태양의 후예'를 힘들게 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게 됐다. 그래서 '도깨비'는 보다 편한 상황에서 미술을 할 수 있었다. 서로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떻게 세트를 맞춰가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제가 대강 디자인해서 이미지를 만들면 이응복 PD가 생각한 것을 추가해서 말해준다. 그렇게 4-5번씩 오가면서 세트 하나가 완성되는 거다. 이응복 PD가 캐나다에 가 있을 때에도 이런 과정을 진행했다. 남들이 보기엔 "왜 연출자가 미술감독 말을 비판없이 수용 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치열하게 협의하면서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 뿐이다.
Q: 작업을 하면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어떤 걸까.
김소연: 일단 공간이다. 사람들이 영화 '광해'의 미술이 좋았다고 느끼는 건 넓은 공간을 소비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공간을 낭비해야 한다. 작은집에서 오밀조밀 사는 건 그냥 사는 거다. 그리고 창과 문이 중요하다. 창과 문은 시대와 국가를 드러낸다. 캐릭터에 맞게, 드라마의 장르, 성격에 맞게 가장 적합한 창틀, 문짝을 찾는 거다. '태양의 후예'를 할 땐 외국에서 보는 포크레인을 찾느라 전국의 크레인 대여 업체를 다 뒤졌다. 베란다에 나오는 수도꼭지를 찾기 위해 4시간을 서핑한 적도 있다. 벽은 그냥 칠하면 된다. 문짝 손잡이 하나가 벽보다 더 존재감이 크다. '도깨비'도 1960-70년대 미국 스타일에 맞춰 조명, 문짝 손잡이 등을 직접 사왔다.
Q: 워낙 작품이 연달아 잘되다 보니 방송가 뿐 아니라 영화 쪽에서도 러브콜을 받을 것 같다.
김소연: 아직은 영화보단 드라마에 더 매력을 느낀다. 전 원래 영화를 했었다. 대학원 졸업 후 5년 정도 영화 미술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제가 세트를 지을 때에도 영화처럼 짓는다. 영화와 드라마, CF를 모두 해봤기 때문에 "각각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전 "이건 그냥 양파, 오이, 마늘 같은 것"이라고 말해준다. 셋의 특징도 장점도 모두 다르다. 영화도 영화의 장점이 있고, 드라마도 드라마의 장점이 있는데 저한테는 드라마의 장점이 더 큰 거 같다.
Q:힘들다고 하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을까.
김소연: 재밌다. 고등학교때 '겨울나그네'라는 공연을 봤는데, 정말 좋더라. 원래는 춤추고 노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전 노래도 춤도 다 못한다.(웃음) 그래서 무대 연출로 진로를 정하고 대학도 그쪽으로 진학했다. 그런데 무대 말고 영상 미술에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 감출 건 감추고, 앵글로 보여준다는 게 색다른 재미였다.
Q: 올해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김소연: 감사하게도 새로운 작품을 바로 맡게 됐다. 일단 그 작업에 집중해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