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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의 아무말이나] '겟 아웃' 백인은 오바마 시대의 흑인을 꿈꾸는가

[허남웅 영화평론가]

(사진=UPI 코리아 제공)
(사진=UPI 코리아 제공)

*(이 글은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흑인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가 중심이 된 일명 ‘블랙 시네마’가 다양한 형태로 개봉하고 있는 올 한 해다. 흑인 남성 간의 사랑을 성장영화로 접근한 ‘문라이트’와 백인 남성 중심적인 나사(NASA)에서 고군분투한 숨은 여성들의 활약을 대중적인 화법에 담은 ‘히든 피겨스’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바통을 이어받은 영화는 ‘겟 아웃’이다. 미국의 영화 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 지수가 무려 99%라고 하여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B급 감성의 공포물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흑인이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크리스(다니엘 칼루야)로,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놀랍게도(?) 백인이다. 여자 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암스) 부모님의 초대로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크리스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로즈의 부모님이 오바마의 팬이고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표를 찍었다고 해도 여전히 차별이 빈번한 미국에서 흑인으로 백인의 집에 간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 것이다.

아니나 달라, 로즈의 부모님은 두 팔 벌려 크리스를 환영하지만, 뭔가 속내가 있는 듯 얼굴에 띈 미소가 자연스럽지 않다. 관리인과 가정부로 근무하는 흑인들 또한, 크리스를 시중들어야 하는 처지가 맘에 들지 않는지 눈빛이 호의적이지 않다. 로즈는 크리스에게 신경과민이라며 마음을 놓을 것을 권유한다. 그래도 영 낌새가 좋지 않던 크리스는 늦은 밤 거실로 갔다가 정신과 의사인 로즈 어머니의 최면에 빠진다.

‘겟 아웃’을 향한 국내외 반응은 찬사 일색이다. “새로운 영화가 온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영화”,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영화적 체험”, “공포영화의 새 장을 열다” 등에 더해 압권은 이거다. “어떤 말로도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다” 좋은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좀 과장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겟 아웃’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테마를 단순하게 규정한다면 ‘인간 개조’다. 크리스가 초청을 받아 찾아간 여자 친구 집의 위용 자체가 이와 관련 있다. 도시 외곽 깊숙한 곳에 있는 구조는 차치하고 저택 앞으로 펼쳐진 넓은 정원은 흑인 노예를 채찍질해가며 목화밭을 재배했던 미국의 남북전쟁 이전 시대를 연상시킨다. 다시 말해, 백인 기득권에는 영광(?)의 시절이요, 흑인에게는 치욕스러운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셈인데 결국, 크리스가 이곳에서 맞닥뜨릴 감정은 공포라는 걸 암시한다.

영화적 상상임에도 꽤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미국의 정치적 위상과 관련이 깊다. 미국은 지난 8년간 백악관의 주인이었던 버락 오바마에 이은 새로운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다. 진보 성향의 흑인 대통령과 가장 정반대의 위상을 지닌 인물을 뽑은 배경이 심상치 않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난 8년간 트럼프와 같은 백인 보수 세력의 기득권들이 숨죽여 꿈꿨을 어떤 욕망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배경을 이해할 때 ‘겟 아웃’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쉬워진다. 로즈 가족이 크리스를 부러 초청한 이유는 (스포일러 주의!) 그가 가진 건장한 신체와 남다른 능력(사진작가의 심미안)을 좋게 말해 패션, 시쳇말로 껍데기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일종의 전략이다. 흑인의 위상이 높아지고 대통령까지 오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외부로 밀려난 백인들이 자신들의 정신을 흑인의 신체에 이식하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와 같은 인간 개조의 테마는 당대의 미국 기득권 세력이 직면한 불안을 반영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맨츄리안 캔디데이트’(1962)다. ‘맨츄리안 캔디데이트’는 한국전쟁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에 납치당해 세뇌당한 군인이 미국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개봉 당시는 미소 냉전이 한창이면서 이를 악용한 매카시즘이 만연했다. 영화는 극우주의자 매카시가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조장해 반대편에 있는 개인을 파괴하는지를 영화로써 우회적으로 풍자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한 ‘분노의 악령’(1978)도 있다. 세계 정복을 꿈꾸는 미국 정보국 요원이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납치해 인간병기로 양성하는 이야기다. 미국의 기성세대는 베트남전 이후로 청춘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미국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기성세대는 전쟁이 필요했다. 이에 반대해 평화를 외치는 젊은이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었다. 자아가 성숙되기 전 기성세대가 원하는 가치에 맞춰 개조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 정복과 초능력과 같은 허무맹랑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악령’은 분열하는 미국의 무의식을 읽을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겟 아웃’은 미국 백인 남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의 개조 대상이 이제는 흑인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라이트’와 ‘히든 피겨스’가 온전히 흑인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겟 아웃’은 납치당해 개조될 위기에 처한 흑인을 거울삼아 백인의 불안감을 내비친다. 공포물은 대개 가해와 피해의 대상을 초월해 개인 혹은 집단의 무의식에 스며든 불안심리를 드러낸다. ‘겟 아웃’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공포물이라고 할 수 없지만, 단순히 오락물을 넘어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 기득권 세력의 파열하는 정신세계를 기막히게 포착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edwo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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