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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영감대] 한국영화가 재미없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2003년도는 ‘올드보이’(박찬욱) ‘살인의 추억’(봉준호) ‘장화홍련’(김지운)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등의 수작이 쏟아져 나온, 그러니까 한국영화 에너지가 기이하게 뜨거웠던 해였다. 흥행과 비평이 사이좋게 충무로에 꽃을 피웠던 시절.

지난 해 ‘아가씨’로 만났던 박찬욱 감독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는 예술적 야심이 큰 프로듀서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거 아니야?’ 싶은 기획을 밀어붙이는 동력이 그들에게 있었고, 창작자들에게 허용된 것들이 많았죠. 만약 지금의 시스템이었다면 ‘올드보이’는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데뷔작을 실패한 (나 같은) 감독에게 그 누구도 투자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결국 재능이나 실력이라고 하는 것들은 시대를 잘 만나야 하는 게 있어요.”

박찬욱이 언급한 ‘지금의 시스템’은 창작자들에게 어떠한가. 2000년 들어 한국영화의 권력은 창작자들이 아닌 제작자나 자본을 가진 대기업 자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투심(투자심리)이라는 것도 생겼다. 어떠한 영화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를 돈을 쥔 이들이 모여서 따지는 것인데, 좋게 말해서 ‘심리’이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검열’이다. 이 과정에서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영화 대신, 다수 대중의 취향에 맞는 안정적인 영화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영화는 하향평준화 됐다.

하나의 시나리오가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세공과정은 어떠한가. 세상에 태어난 초고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를 타듯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다듬어진다. 나이-성별에 맞게 선별된 표본 모니터링 요원들에 의해 시나리오 점수가 매겨지고, 신 별로 재미의 유무가 갈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이 가해진다. 그 과정에서 확보되는 건 대중성, 사라지는 건 개성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낳은 부작용은 올 상반기 극에 달한 느낌이다. 감독의 이름을 지워도 무방한 개성 없는 영화들이 쏟아졌다. 여기저기에서 “한국 영화 재미없다” “한국영화가 비슷하다”는 곡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끊이지 않았다. 나홍진(‘곡성’), 박찬욱(‘아가씨’) 등의 감독이 그마나 제 몫을 해줬던 지난해 상반기와 달리, 그런 허리 역할을 이행해 준 창작자가 없었다는 것도 올 상반기의 처참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사실 시작부터 불안했다. 먼저 1월 극장가를 강타한 ‘마스터’를 보자. 영화는 전국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작품적인 면에서 지금의 한국영화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모두 드러냈다. 화면은 반지르르 했지만 내러티브는 거칠었고, 이야기보다 스타의 얼굴에 주목하는 순간이 많았다. 143분이라는 영화의 긴 러닝타임은 자신감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A급 배우를 배려하느라 자르지 못한 혐의가 짙었다. 조의석 감독이 ‘감시자들’(2013)에서 보여줬던 ‘어떤 결기’가 희미해져 더욱 아쉬운 결과물이었다.

‘마스터’의 흥행을 이어받아 전국 780만 관객을 동원한 ‘공조’는 흥행을 위한 요소를 모아모아 만든 기획 영화였다. TV 드라마에서 자주 만났던 신과 신들이 이어졌다. 조기 대선으로 덩달아 뜨거워졌던 3월 극장가 각 배급사 선수들로 나온 ‘임금님의 사건수첩’(CJ) ‘보안관’(롯데) ‘특별시민’(쇼박스) 역시 투심과 모니터링 과정에서 반질반질하게 깎인 냄새가 강하게 났다. 나름 선수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뜻을 모았으나,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 자체검열한 면모가 여기저기서 엿보였다.

올 상반기는 마감하는 ‘리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촬영 도중 감독이 교체되는 것도 모라자 연출 경험이 전무한 제작사 대표가 사령탑에 대신 앉았다. 이범수가 제작과 주연을 겸한 ‘자전차왕 엄복동’ 역시 감독이 하차하는 상황이 생겼다는데, 아무리 감독의 위상과 전과 같지 않은 시대라고 하나 어쩌다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일용직이 됐을까 싶은 대목이다.

물론 영화는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이다. 감독이 돈의 흐름을 무시하고 영화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영화를 향유하는 건 불특정한 대중이고, 대중은 보편적인 재미를 선호한다. 창작자는 그런 대중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인장을 밀어 넣어 대중을 설득시킬 때 우린 그를 작가라고 부른다. 지금의 시스템이 아쉬운 건, 그런 작가의 탄생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질반질한 게 대세인 주류 영화 흐름에게 창작자의 울퉁불퉁한 재능은 깎이고 깎여 가공품처럼 처리 돼 지금 우리에게 당도하고 있다. 한국영화, 정말 재미없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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