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배우 유승호는 평범함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마다 읽히는 그 동경이 나는 내심 안쓰러웠다. 평범한 삶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생각보다 소박하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가는 것이 편치만은 않다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유승호의 삶과 같거나 비슷한 삶을 살아본 경험이 없기에 이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위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하지만 유승호와 인터뷰를 하면서, 평범함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을 입안으로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고등학생 때부터 지어야 했다는 어른으로서의 무게는 여전히 안타까웠고 놀이기구를 탈 때조차 선글라스·마스크·모자로 중무장해야 하는 신세는 여전히 딱했지만, 유승호의 농담은 평범한 사람의 그것처럼 유쾌했고 일을 대하는 자세 역시 평범한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승호는 비범한 외모에 보통 사람의 얼굴이 담아내고 있었다.
Q. 최근 엘 씨로부터 “‘군주’ 배우들의 단체 여행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유승호: 그 형 (여행) 혼자 가나요? 으하하. 중간에 같이 여행 가자는 얘기가 나오긴 했는데 다들 바쁘다 보니까 시간 맞추기가 애매하더라고요. 결국 안 가기로 한 걸로 알았는데… 명수 형에게 연락해봐야겠네요.(웃음)
Q. 제대로 여행을 다녀와 본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안 간 거예요, 못 간 거예요?
유승호: 여행을 갈 기분이 아니었어요. 촬영을 할 때는 시간이 없었고, 쉴 때는 시간이 있어도 심적으로 조금 불안정한 상태였거든요. 여행을 갈 기분이 아니었어요.
Q. 무엇이 불안정했는데요?
유승호: 드라마 ‘리멤버’(SBS, 2015)가 끝나고 1년을 쉬었어요. ‘리멤버’를 하면서 연기에 대한 한계를 많이 느꼈거든요. 스스로 무너져 내렸어요. 그 때가 여행을 가기에는 참 좋은 타이밍이었는데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냥 힘들기만 했죠..
Q. 그 1년을 어떻게 보냈어요?
유승호: 아무것도 안 했던 것 같아요.
Q. 다시 한 번 연기를 하자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겼나요, 아니면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요?
유승호: 주변에서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선배님들과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 연기하면서의 걱정 같은 걸 나누면서 마음을 풀어가기도 했고요. 이제 와서 직업을 바꾸는 것이 연실적으로 어렵잖아요. 어찌됐든 계속 부딪혀야 연기에 대한 고민이 해소될 것 같아서 또 한 번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왔어요.
Q. 다시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유승호: 아휴, 하길 잘했네요.(웃음) 다행히 ‘군주’(MBC, 2017)가 잘되고 칭찬을 많이 받아서 자신감도 생겼어요. 역시 사람은,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 같아요. 하하. 한편으로는 다음 작품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이 생겼어요. 이번 작품이 잘 됐으니 다음 작품은 더욱 잘 돼야 기대치에 부응할 텐데. 그런 고민이 또 생기더라고요.
Q. ‘잘 된다’의 기준은 흥행인가요, 당신의 만족도인가요.
유승호: 흥행이죠, 아무래도. 흥행이 안 돼도 제가 연기자로서 어떤 만족을 느끼거나 잘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상관이 없을 텐데… 날 모르겠어요. 일단 작품이 안 되면 배우 탓으로 돌아가니까요. 전역 이후 영화를 하면서 확실하게 많이 느꼈어요. 주인공이라면 흥행에 대한 책임도 져야죠.
Q. 가벼운 질문입니다. 최근 그룹 아스트로 차은우 씨와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의 광고를 찍었죠. 가게마다 붙은 광고 포스터에 지나가던 여성들의 발걸음을 되돌린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유승호: 하하. 차은우 씨 얼굴이 진~짜 작더라고요. 광고 촬영날이 ‘군주’ 촬영 다음날이었거든요. 저는 얼굴도 정말 많이 타고 면도를 제대로 못해서 수염도 덥수룩했는데, 은우 씨는 너무 뽀얗고 수염자국 하나 없는 거예요! 차은우 씨가 굉장히, 굉~장히 착하고 조심스러워 하셨어요. 얘기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조용하신 분을 만나서 무탈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들은 지나가면서 포스터 보고 욕하던데요? “미쳤냐. 도대체 ‘뽀샵’을 얼마나 했기에 네가 이렇게 됐냐”라고.(일동 폭소) 역시 친구들이죠.
Q. 유승호 씨도 다른 사람의 외모에 부러움을 느껴요?
유승호: 그럼요. 약간 거친 느낌이 나는 사람, 수염이 멋지게 나는 사람이 부러워요. 저는 수염이 얼굴을 다 덮었으면 좋겠거든요. (취재진 사이에서 한숨이 나오자) 으하하하. 아니, 그런데 마음으로 원하면 (수염이) 나나 봐요. 군주를 하면서 볼에 수염이 나는 거예요, 조금씩! 지금도 수염 자국이 조금 짙지 않나요?
Q.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네요. 연예인으로 따지자면 누구의 외모가 부러워요?
유승호: (소)지섭이 형만 돼도…. 지섭이 형 수염, 부러워요.
Q. ‘리틀 소지섭’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잖아요. 한동안 그 표현을 불편해 하는 것 같던데 이젠 아닌가 봐요.
유승호: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하는 것 같아요. 지섭이 형 닮았다는 말을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 땐 그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요. (리틀 소지섭이라고 불리는 걸) 아는데 자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시니까, 그냥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던 거죠.(웃음)
Q. 당신이 연기한 세자 이선은 일련의 사건과 시련을 통해 성숙한 왕이 되어가는 인물입니다. 유승호는 어때요? 당신을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준 사건이나 인물이 있다면 무엇 혹은 누구인가요.
유승호: 현장에서의 저의 위치가 저를 어른으로 만든 것 같아요. 사실 촬영 현장에서는 스태프들의 컨디션이 배우들의 기분을 따라가기 마련이거든요. 배우는 가장 예민하기도 하지만, 현장의 기둥이 되고 작품을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물론 힘들고 짜증날 때는 있어요. 하지만 제 감정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표현하는 건 스태프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그런 걸 느낀 것 같아요.
Q. 어린 나이에, 의도치 않게 어른이 된 셈인데요. 후회나 아쉬움 같은 게 있나요?
유승호: (즉각) 네!
Q. 이렇게 금방 대답할 줄은…
유승호: 하하.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거니까요.
Q.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만약 옛날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다시 연기를 할 건가요?
유승호: 제가 경험한 것들을 알고 있는 상태로요? 안 해요. 다만 이건 제가 배우의 삶을 한 번 경험해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일 수 있겠네요.
Q.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삶을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인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나 조심성이 높은 것 같아요.
유승호: 네. 많이 심해요. 하고 싶은 건데, 하면 안 될 것 같고. 나는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고, 남들 다 하는 일탈도 나는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에 대해 그리고 계신 이미지가 있잖아요. 술도 안 마실 것 같고 욕도 안 할 것 같고 이슬만 먹을 것 같고…. 사실 저는 친구들과 만나면 장난도 진짜 심하게 치고 욕도 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니까 뭘 못하겠어요.
Q. SNS를 안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유승호: 아니요, 그건 오글거려서요. 셀카 찍어서 ‘아, 오늘 군주 촬영 중인데 연기가 잘 되네’라고 적는다거나…,(일동 폭소) 요즘엔 샵(#) 달면서 뭘 쓴다면서요. ‘#군주 촬영하기’, ‘#부안에서’, ‘#좋은 날’ 이런 것들, 아우 못하겠어요.(웃음)
Q. 팬들은 SNS가 아니면 승호 씨의 근황을 알 수 없잖아요.
유승호: 일산에 오면 저 많이 볼 수 있어요. 흐흐. 친구들이랑 당구 치고 볼링 치고 PC방도 가요. 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어서 쉬는 날 할 거 없으면 다 같이 가서 도와주기도 해요. 요즘엔 비름이랑 호박잎을 키우고 있는데, 비름으로 단을 만들면 꼬다리를 썰어야 하거든요. 그래야 상품 가치가 높아져서… 오늘도 인터뷰 끝나고 가기로 했어요.
Q. 딱 하루,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요?
유승호: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요. 친구랑 싱가포르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갔는데 거기에 놀이기구가 있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모자 쓰고 마스크 끼고 선글라스 끼고 놀이기구를 탔는데, (착용한 것을) 다 벗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벗었더니 ‘어! 유승호!’ 하더라고요. 아…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거든요. 놀이기구를 타는 게 굉장히 불편했어요.
Q. 군대에 있었을 때가 당신에게는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었겠어요.
유승호: 맞아요. 보통 사람 수준이 아니에요. 강원도 현지인이었죠. 서로 너~무 익숙해져서 신경을 안 썼어요, 제 직업에 대해서는.
Q. 그래서일까요. 군 제대 이후 진행한 영화 ‘김선달’ 인터뷰에서 당신이 굉장히 밝고 가벼워졌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유승호: 네. 군대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법이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처음엔 사람들이 제 직업 때문에 저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먼저 제 허점을 편하게 얘기하고 저의 일상을 나누면서, 조금은 내가 망가져보자고 마음 먹었죠.
Q.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유승호: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 또한 그들을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사실 예전에는 친한 사람이 아니면 얘기를 잘 못하고 얘기하는 걸 안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직업상 내가 싫어한다고 안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인터뷰도 그렇고 배우들이나 감독님과 계속 교류가 있어야 하니까요. 군대 안에서 배운 것들을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 실천하려고 하고 먼저 다가가려고 하고 있어요. 만약 그 때 그렇게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오늘 인터뷰도 굉장히 형식적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Q. 한 해가 절반 이상 지났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요?
유승호: 그냥 아무 일없이 올해가 지났으면 좋겠습니다. (Q. 시상식에서 상 받아야죠) 아뇨, 상 안 주셔도 돼요.(웃음) 조용히 작품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