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할 나이 아닌가요? 이 나이 동안 뭐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 안부를 묻는 욕설보다 더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면전에 대놓고 해 볼 생각조차 힘들 말이다. ‘이 나이 되도록 뭘 했냐’는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싸그리 부정해 버린다는 ‘상식’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다. 이 말 뒤에 정당한 비판의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한들, 칼을 찔렀다 뽑은 곳에 남은 상처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졸지에 이런 막말의 피해자가 된 이는 고작 스물 여덟살이다.
이 같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지적하기도 힘든 막말을 ‘독설’으로 포장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JTBC ‘믹스나인’이다.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직접 전국의 크고 작은 기획사를 방문해 숨은 실력자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에서 제작된 예능이다.
원체 독설가로 정평이 나 있던 양현석 프로듀서가 ‘믹스나인’ 전면에 등장한다는 소식에 참가예정자들만 떨었던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부터가 눈치를 봤다. 유구한 막말의 역사로 ‘트라우마 제조기’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 덕에 안방에서 또 어떤 불편한 상황과 마주해야 할 지 우려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아슬아슬했던 첫 방송을 지나, 본격적 논란은 2회에서 터졌다. 지난 5일 ‘믹스나인’에서 양현석은 아이돌 코코소리 출신의 김소리에게 “아이돌을 하기엔 많은 나이다. 은퇴할 나이 아닌가. 이 나이 동안 뭘 했나”라고 ‘독설’했다. 김소리의 무대도 보기 전이었다.
이에 그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어야 하는 걸까. 김소리가 애써 밝게 대답하자 양현석은 “코코소리, 1집 내고 망했잖아. 되는 것은 없는데 하는 것만 많네”라고 말을 이었다.
방송 직후 ‘믹스나인’의 화제는 그 어떤 참가자도 아닌 ‘양현석 막말’에 집중됐다. 양현석의 발언이 소위 ‘팩트 폭력’도, ‘독설’도 아닌 이유는 그 안에 김소리에게 도움이 될 지적이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 김소리가 스물 여덟살이 될 때까지 노력했지만 결과를 내지 못 한 것이 ‘팩트’라면 이 프로그램에 국내 최대 아이돌 기획사 대표 프로듀서 명함을 들고 나온 양현석은 그 이유를 날카롭게 짚어 줄 필요가 있었다. 여타 아이돌에 비해 나이가 많은 것, 성공하지 못 한 것을 언급해 참가자의 상처를 후벼 파는 처사를 시청자들이 이해해 줄 의무는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양현석은 7일 인스타그램에 “믹스나인. 김소리. 코코소리. 리얼걸프로젝트. 잘했다 말해주고 싶어. 지난주 녹음실 깜짝 방문. 관심이 있어야 독설도 가능. 심사는 냉정하게. 꼭 잘되길 바라”라는 글과 함께 영상을 올렸다. 영상은 연습 중인 김소리를 깜짝 방문해 덕담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끝난다.
이 같은 ‘병 주고 약 주고’ 식 마무리는 당사자 간의 문제다. 그러나 이를 보고 불쾌감을 느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되돌리기는 힘들었다. 이전에 네티즌들이 만든 ‘양현석 막말 모음’이 다시금 SNS 및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믹스나인’의 포커스 역시 참가자 보다는 양현석에게 맞춰진 상황이다.
기대 속에 베일을 벗은 ‘믹스나인’이 시청률도, 화제성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양현석 리얼리티’로 변질된 탓이다. 프로듀서의 이야기가 맨 앞 줄에 서서 참가자들이 선택된 기준이나 그들의 매력을 가리고 있다. 때문에 다수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은 현 시점에선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믹스나인’이 이대로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춰 재미를 포기할 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