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주희 기자]
충무로에서 배우 서영희의 캐릭터는 독보적이다. 많지 않은 여자 배우들이 스크린에서 드문드문 활약하는 가운데, 서영희는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영화의 중심축을 자신에게 가져오는 배우다.
스릴러인 ‘추격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마돈나’부터 공포물 ‘스승의 은혜’ ‘궁녀’까지 자신만의 장르마저 구축한 서영희가 이번엔 영화 ‘여곡성’을 통해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장르 스릴러 공포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여곡성’은 원인 모를 기이한 죽음이 이어지는 한 저택에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옥분(손나은 분)과 비밀을 간직한 신씨 부인(서영희 분)이 집안의 비극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공포 영화다.
1986년인 32년 전에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많은 내용을 덜어내 스토리 라인을 깔끔하게 만들었고, 캐릭터에 현대적인 감성을 부여한 만큼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새로운 표현법이 필요했다. 늘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서영희는 기존에 있던 신씨 부인을 ‘서영희 화’하며 최근 보기 힘들었던 ‘사극 공포’ 장르에 힘을 보탰다.
서영희와 일문일답
Q. 공포나 스릴러 하면 떠오르는 대표 여배우로 서영희를 꼽는다. 자신의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대만족 한다.(웃음) 어떤 장르에서 내가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떠오르면 속상하지 않나. 그래도 작품을 많이 한 편인데 어느 한 부분에 특화되지 못하는 것보다 익숙해지는 게 그래도 좋은 것 같다. 다른 이미지는 다시 만들면 되니까. 또 다른 장르로 가서 또 열심히 노력하겠다.
Q. 이번 작품은 1986년 작인 동명의 영화를 새롭게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작이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A. 많은 사람들 기억에 대작으로 남은 작품이라 부담은 크지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버릴 수 있는 영화가 새롭게 대중영화로 재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좋았다.
Q. 요새 충무로에 사극 공포 장르 자체가 많이 없다. 그것 자체로도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A. 오랜만이라 반가워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어린 시절 이런 영화를 많이 본 세대다. 예전에 무서웠던 것 얘기해 보라고 하면 이런 영화를 꼽지 않았나. 요새는 왜 없을까 생각했다. 최근엔 좀비만 나온다.(웃음) 그래서 다시 클래식 하게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우리들에겐 익숙하지만, 젊은 친구들 눈에는 오히려 새로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게다가 나는 우리 영화가 15세라는 부분도 걱정된다. 내 첫 15세 관람가 영화가 ‘탐정’이기 때문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15세 이하들과 친해지고 싶다. (손)나은이 팬들에게도 사랑 받고 싶다.(웃음)
Q. 리메이크지만 서영희 만의 캐릭터를 만들었을 것이다. 신씨부인을 어떻게 ‘서영희 화’ 했나.
A. 관객들에게 내가 하는 신씨부인에 대한 믿음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캐릭터의 열정을 내가 잘 보이게 해야 했다. 신씨 부인의 야망과 열정을 관객이 알지 못 하면 사랑할 수 없는 역할이라 어떻게 잘 표현할지 고민했다.
Q. 신씨 부인은 한 명의 인물이지만,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초반 냉정한 시어머니의 모습으로 시작했다가 귀신이 몸 안에 들어오면서 다정한 시어머니의 모습, 완전히 귀신이 된 모습까지 등장한다.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A. 연기할 때 그냥 나를 믿었다. 다정한 신씨부인은 실제 내 모습을 많이 써서 괜찮았다. 평소 나의 느리고 따뜻한 모습이 있다.(웃음) 귀신 역은 분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크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위엄있는 신씨부인의 모습이었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모습이라 관객들이 첫 번째 모습을 믿어줘야지 나머지 부분을 쫓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Q. 사극에 피 분장까지 해야 했다. 준비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나.
A. 아니다. 피 좀 칠하면 된다. 이런 분장은 할로윈 때 일부러도 하지 않나.(웃음) 의상은 한복 효과를 많이 봤다. 사극이라 그런지 옷만 갈아입어도 느낌 자체가 달라진다. 소복 입고 다니면 밤중에 다들 정말 무서워했다.(웃음)
Q. 공포 영화이기 때문에 촬영 현장 자체에서도 색다른 느낌을 받았을 텐데.
A. 사극이라 한옥에서 찍었는데 아무도 없을 때도, 아니면 누군가를 갑작스럽게 맞닥뜨릴 때도 섬뜩하더라. 촬영 당시 안개 끼고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이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경우에 공포가 느껴졌다. 소품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놀라게 된다. 그리고 내가 분장한 상태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랄까봐 걱정도 했다.(웃음)
Q. 생닭을 먹는 신, 하녀 죽이는 신 등 강렬한 장면이 많았다. 공포영화로서 관객들에게 가장 어필할 신을 하나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
A. 우선 언급한 대표적인 신들을 잘 봐주셨으면 좋겠고, 내가 해천비의 칼을 무는 신이 있는데 짧지만 섬뜩한 장면이라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남편을 해치는 장면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잔인하지는 않지만 잘 보였으면 좋겠다.
Q.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은 ‘지렁이 국수 신’이다. CG로 후반작업을 했겠지만, 촬영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진행을 했나.
A. 지렁이는 실제인 것처럼 똑같은 걸 만들었다. 남편(최홍일 분)이 젤리 느낌이 나는 것을 실제로 드셨고 거기에 CG가 살짝 들어갔다. 나는 남편이 지렁이를 먹는 걸 봐야했는데, '언제 컷 하지?' 생각만 했다. 짧게 촬영하면 그저 씹기만 하면 되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정말 그걸 먹어야하기 때문에 걱정했다. 최홍일이 원래 국수를 진짜 좋아하는데, 그 신을 찍은 후엔 잘 안 먹더라. 정말 힘들어하셨다.
Q.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것은 며느리 역의 손나은이었다. 호흡은 어땠나.
A. 촬영 전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진중한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믿음이 갔다. 촬영하면서도 고민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예쁜 나은이 얼굴이 부럽더라. ‘저 시절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 신씨 부인은 너무 인상만 썼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웃음) 그래서 그나마 내가 피칠 할 때 괜찮아 보이더라.(웃음)
Q. ‘여곡성’은 서영희가 ‘하드캐리’ 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동안도 유독 피땀 어린 캐릭터를 도맡아 했는데 이번에도 여전하다.
A. 늘 피 묻힌 캐릭터를 많이 해서 사람들도 익숙하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다. 아직 자신할 수가 없다. ‘하드캐리’라는 말은 요즘 많이 쓰는 말인데, 나는 너무 옛날 사람이라 칭찬인지도 모르겠더라. 욕은 아닐 거라고 믿고만 있다. 좋은 말일 거다.(웃음) 좋으면서도 부담이 된다.
Q. ‘고생 전문 배우’로도 알려져 있는데, 혹시 대중이 서영희에게 오해하는 부분이 있을까.
A.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웃음) 그리고 원래 성격이 우울하고, 평상시에 힘들게 살 것 같다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웃고 사세요’ 라고 하시는 분도 있다.(웃음) 평소에 나는 너무 웃어서 탈인데 말이다. 평소엔 우울하고 무거운 것을 되게 싫어한다. 술도 슬퍼서 먹은 적이 없고 행복할 때 더 즐거우려고 먹는다. 우울한 일은 보통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실물이 좋다는 말도 많이 듣는 편인데,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봐주시니까 오히려 보탬이 되는 거 같다.(웃음)
Q. 성격과 다른 작품들을 해오면 힘들지 않나.
A. 영화가 끝나고 잘 치유한다. 감정에 너무 깊게 들어가서 힘들지 않냐는 말을 듣는데, 우연히도 힘든 역과 밝은 역을 동시에 촬영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너지를 얻으며 연기를 해왔다. 지금은 가정이 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면 생활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Q. 20년 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이젠 나이가 어린 배우들과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 생각도 하나.
A. 나는 일찍부터 엄마 역할을 해왔다. ‘추격자’의 딸이 김유정이다. 지금은 나보다 키가 더 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면서 헷갈릴 때도 있고 한편으론 뿌듯하다. ‘왜 이렇게 세월이 빠르지?’ 생각도 든다. 이번엔 손나은을 보면서 나도 나은이처럼 많은 걸 해봤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Q. 최근엔 ‘탐정’ 시리즈로 사랑을 받았다. 평범하면서도 억척스러운 아줌마 역할이었는데, 더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나.
A.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도 좋지만, 영화 속에서 다뤄지지 않은 인물들이 아직 많을 텐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캐릭터들도 영화화될 것이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또한 도전일 것 같다. 또 잔잔한 영화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대작도 기억에 남는 영화가 많지만, 오히려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는 잔잔한 영화인 경우가 많다. 너무 잔잔해서 졸릴 정도였으면 좋겠다. 절대 영화화되지 않겠지만(웃음)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