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너는 날 수 있다고 낭떠러지로 저를 밀어준 유재석 선배님, 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29일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놀면 뭐하니?'로 신인상을 받았던 배우 박진주의 수상 소감이다. 타고난 예능인처럼 보였던 박진주가 매주 얼마나 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소감이었다. 그런데 박진주는 본업인 연기에서도 그 부담감을 열정의 원료로 삼고 있었다.
"제가 즐기면서 할 것 같은 이미지잖아요. 하지만 작품을 할 때마다 고통받고 있어요. 칭찬을 해주셔도 고통받고, 혼나면 더 고통받고."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박진주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고통과 극복을 반복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제련된 박진주의 최신작, 뮤지컬 영화 '영웅'은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이다. 박진주는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박진주는 "'영웅'은 출연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점, 정성화·김고은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또 "출연 제안을 받고 펑펑 울었다. 윤제균 감독님이란 큰 감독님이 나를 알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맡게 되는 캐릭터 이름이 '진주'라는 얘기에 감사하고 놀랐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진주는 만만한 역할이 아니었다. 너무 밝아도, 무게를 잡아도 안 됐다. 독립군을 살뜰하게 보살피면서 유동하(이현우)와의 풋사랑을 그려야 하고, 또 격랑의 시대 안에 있었던 당시 청춘들의 비장한 각오도 보여줘야 했다.
"대작인 작품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캐릭터 밸런스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캐릭터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어요. 사람의 성격을 글로 정의할 순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조금씩 다른 성격을 보이잖아요. 감독님, 배우들과 균형을 맞추며 '마진주'를 만들어갔습니다. 감독님을 믿고 따라갔어요."
특히 노래와 감정 연기를 함께 보여줘야 하는 '영웅'만의 특징은 많은 고민을 안겼다. 특히 '마진주'의 마지막 순간은 박진주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동하(이현우)와 있으면 나까지 맑아지고, 서로 진짜 첫사랑 같은 거예요. 죽는 장면을 찍는 날은 아침부터 밥도 안 먹을 정도로 슬펐어요. 노래해야 하는데 발음이 안 될 정도로 눈물 나고 슬펐습니다. 그런 진짜 감정이 들어가야 관객들도 날것의 질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우리 진짜 고통이 들어간 장면입니다."
박진주는 대학교 때 뮤지컬을 전공했을 때부터 정성화의 오랜 팬이었다. 그런 정성화와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하게 된 것이다. 박진주는 촬영 현장에서 정성화를 지켜보며 "그동안 얼마나 큰 무게감으로 안중근 의사 역을 소화했을지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모니터를 봤는데, 화면 안에 '안중근' 선생님이 계셨어요. '실제 상황'이구나 싶었죠. 모든 감각을 세워서 제대로 해야 본래 성격을 눌러가면서 만든 '안중근'의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영웅'은 애초 2020년 8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수차례 개봉이 연기됐다. 그 사이 박진주는 '놀면 뭐하니?'를 통해 대중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그사이 나도 '영웅'을 조금 더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라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박진주가 예능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MBC '복면가왕'에 한 차례 출연해 가수들을 위협할 만한 가창력을 자랑해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박진주의 예능 출연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았다. 박진주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과거엔 더 보수적이어서 내 한계를 스스로 설정했었다"라고 털어놨다.
"안 그래도 제가 재미있는 캐릭터들을 자주 맡잖아요. 그래서 예능 출연을 꺼렸던 것도 있었어요. 예능에서까지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이면, 대중들이 제가 출연하는 작품을 볼 때 몰입하기 어렵지 않을까 했거든요. 그러나 어느 순간 도전하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박진주는 배우로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만약 자신이 배우로 살지 못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보고 즐거워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쁨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희망도 주고 싶어요. 전 제가 현실에 있을 법한 친근한 느낌의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대중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제 모습을 보고, '저 친구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 하면서 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