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리=윤준필 기자]
'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은 박인준 법률사무소 우영 대표변호사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법과 사람, 그리고 사회 이슈에 대한 명쾌한 분석을 비즈엔터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쉽게 '고소하겠다'는 말이 오간다. 특히 SNS 발달로 인해 법적 조치에 대한 정보가 널리 퍼지면서, 형사고소를 단순한 갈등 해결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형사고소는 협상의 도구가 아니라 법적으로 상대방의 처벌을 요청하는 중대한 의사 표시다.
우리 일상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대개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자존심 싸움에서 비롯된다. 길을 가다 어깨가 부딪혀 시작된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A가 B의 코를 다치게 했고, B는 A의 멱살을 잡았다면, 누가 고소해야 할까? 대부분 더 큰 피해를 본 B가 A를 고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가 맞고소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에서 고소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형사고소는 한번 시작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진다.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에서는 '처분권 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민사소송은 당사자가 소를 제기하고, 진행하고, 취하할 자유가 있지만, 형사사건은 국가의 형벌권 행사에 관한 문제로 직권주의가 적용된다. 고소는 자유롭게 할 수 있어도, 일단 시작된 수사는 고소인의 의사만으로 중단시킬 수 없다.
둘째, 더 큰 피해를 준 측에서 맞고소하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B의 코를 부러뜨린 A가 멱살을 잡혔다는 이유로 B를 고소하는 건 합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런 맞고소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합의 가능성을 낮출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죄를 더 엄중하게 처벌받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맞고소가 필요한 상황도 있다. 명백하게 큰 피해를 당하였는데도 상대방이 근거 없는 고소를 했을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맞고소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감정적 대응이나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무리하게 맞고소를 시도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셋째, 고소 내용은 반드시 사실에 기반을 둬야 한다. 고소장에 허위 사실을 기재하거나 과장된 내용을 담으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자신의 처지만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
형사 절차는 생각보다 길고 복잡하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3~4년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이 기간에 당사자들은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고소를 결정하기 전에 이러한 시간적, 정신적 비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고소는 사회적으로 '칼'을 뽑는 행위와 같다. 한번 뽑은 칼은 쉽게 다시 집에 넣을 수 없으며, 양측 모두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특히 자신이 더 큰 잘못을 했다면, 섣불리 고소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다.
법률 분쟁에서 최선의 해결책은 대화와 합의를 통한 평화로운 종결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고소를 고려해야 한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 후 결정해야 한다. 법률 전문가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고소의 타당성과 예상되는 결과를 조언해 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갈등 해결 방식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 쉽게 '고소'라는 카드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의와 화해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형사고소는 정의 실현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지, 분쟁 해결의 첫 번째 선택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법적 분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싸움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여 상처를 최소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신중하지 않은 고소는 법정 다툼의 시작일 뿐, 진정한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