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칸(프랑스)=정시우 기자]
“실사영화를 압도하는 애니메이션!” 2011년 연상호 감독이 세상에 내놓은 ‘돼지의 왕’을 향한 일각의 반응이다. 2년 후 세상에 나온 애니메이션 ‘사이비’는 연상호가 강하게 휘두른 두 번째 멋진 안타였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핀 풍부한 은유는 전작의 성과를 이어가며 연상호라는 이름을 충무로에 다시 한 번 각인 시켰다. 동시에 많은 이들의 궁금증은 커졌다. 연상호 감독이 실사 영화를 만든다면? 그렇다면 과연 어떤 그림의 작품이 나올까.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은 그러한 궁금증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연상호 감독을 칸 현지에서 만났다.
Q. ‘돼지의 왕’ 이후 5년 만에 다시 칸을 찾았다.
연상호: ‘돼지의 왕’으로 칸에 왔을 때 행사장 근처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1’ 입간판이 있었다. 그게 지금도 그대로 있더라.(웃음) ‘변한 게 없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하다. 다만 내가 외국어 울렁증이 있다. 레드카펫을 밟을 때도 ‘멘붕’이 팍 와서 어리바리했다. 다음에 또 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Q.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다음엔 경쟁부문에서 보자"고 했다고.
연상호:빈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잘 모르겠다.(웃음) ‘돼지의 왕’ 이후 불편한 게 하나 있었다. 칸 출품작 발표 시기가 올 때마다 “연상호, 올해 칸 가나” 식의 기사가 나왔다는 거다. ‘사이비’ 때도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졌는데, 당시의 나는 내 영화가 칸에 못 갈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괴로웠겠나.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Q. ‘부상행’은 당신의 첫 실사 영화다. 작업은 어땠나.
연상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영화가 다 끝난 후에야 어떤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사 영화는 당일 촬영한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더라. 반면 예산 문제 등으로 표현이 제한적인 실사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다양하고 보다 파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각각의 장단점이 확실한 것 같다.
Q. 부성에 넘치는 아버지 역에 공유를 캐스팅 했다.
연상호: 청춘스타 공유도 이젠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았나.(좌중폭소) 농담이다.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나오는 공유의 멋이 좋았다.
Q. 극중 상화를 연기한 마동석에 대한 현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연상호: 예상했다. 마동석 선배가 맡은 캐릭터 자체는 클리셰다. 사실, ‘돼지의 왕’이 칸에서 상영될 때 반응이 상당히 안 좋았다.(웃음) 칸 관객들은 반응이 즉흥적이지 않나.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이 나올 때 욕을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었다. 개인적으로 ‘돼지의 왕’ 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1년에 영화를 한 편 내지 두 편 정도만 보는 관객들을 생각했다. 그런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게 ‘부산행’이고, 마동석이 연기한 캐릭터를 관객 분들이 좋아해 주실 거라 믿었다.
Q. 마동석 배우도 현지 반응을 아나.
연상호: 공유가 마동석에게 문자를 보내 현지 반응을 전한 것으로 안다. 본인도 오지 못해 아숴워 하는 것 같다.(웃음)
Q. 칸 버전이 아직 완성본은 아닌 것으로 안다. 개봉까지 2개월이 남았는데, 얼마나 더 후반작업을 할 예정인가.
연상호: 갑자기 칸 행이 결정돼서 미친 듯이 작업을 해야 했다. 장영규 음악감독이 ‘곡성’을 같이 했는데, 두 영화를 함께 하느라 ‘멘붕’이 왔을 거다.(웃음) 남은 기간 CG를 더 만질 생각이다. 음악 역시 조금 더 보강할 예정이다.
Q. 차기작은 실사영화인가, 애니메이션인가.
연상호: 고민을 많이 했는데, 실사 영화가 될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혼자 하는 게 아니기에, 여러 상의 끝에 실사영화 쪽으로 기울어졌다. 상업영화만 할 생각은 없다. 사이즈가 작은 사나리오를 써놓은 것이 있는데, 이걸 한 번은 하고 넘어갈 것 같다.
Q 실사영화를 내 놓았지만 당신의 애니메이션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애니메이션계에서 입지적인 인물인데,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나.
연상호: 책임감, 당연히 있다. 아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리이야기’를 만든 이성강 감독의 작품인 ‘카이’ 제작에 참여했다. 조만간 IPTV용 성인 애니메이션도 나올 예정이다. 건방진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창작자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 애니메이션이 조금 더 상업적인 형태로 보여 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 중이다.
Q.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기다리라’고 말하는 기관사의 대목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있다.
연상호: 나도 굉장히 놀랍긴 하다. ‘부산행’ 시나리오는 세월호 침몰 전에 작업했다. 세월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일어난 대처가 나왔다는 건 굉장히 이상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