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감정에 충실하면,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감정이라면, 아름다운 것이다”-박찬욱
‘아가씨’는 거짓으로 물든 세계다. 이 세계에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상대를 속인다. 거짓의 세계에 예기치 못한 욕망이 들어선다. 욕망들이 밀고 당기며 싸움을 벌인다. 누가 먼저 자기 안의 욕망을 정면으로 바라볼 것인가. 누군가 욕망을 받아들이고 솔직해지는 순간, 이 거짓의 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한다. 아름답게.
1. 이름은 히데코(김민희 분).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은밀한 통제 아래 오랜 시간 살아왔다. 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녀는 이모부의 도구가 돼서 낭독을 해야 한다. ‘답답하다’ 2.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 코우즈키가 주최한 모임에 갔다가 히데코를 본다. 그녀의 엄청난 재산이 탐난다. ‘저걸 어떻게?’ 3. 고아로 태어나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숙희(김태리 뷴). 백작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히데코를 살살 꾀어 백작에게 이어만 주면 두둑한 사례금을 준단다. ‘식은 죽 먹기 아니야?’ 4.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가. 히데코와 그녀의 하녀로 위장한 숙희. ‘왜 자꾸 당신이 밟히는 거지?’
‘아가씨’의 원작 소설은 소매치기를 뜻하는 ‘핑거스미스’(Finger Smith). 영문 제목은 ‘하녀’(The handmaiden), 불어제목은 또 ‘아가씨’(Madmoiselle)다. 그러니까, ‘아가씨’는 소매치기인 하녀와 아가씨의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아가씨 역시 탁월한 소매치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가씨가 훔친 것은 아마도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여러 가지로 소개되고 있는 ‘아가씨’의 제목은 영화가 취하고 있는 3막 구성과 맞물려 더욱 절묘해 진다.

‘아가씨’의 1부는 숙희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2부는 같은 상황을 히데코의 시선에서 복기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3부에서 다시 전진한다. 2부의 경우 1부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1부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이면이 밝혀지면서 감정의 퍼즐이 테트리스처럼 맞춰지는데, 두 시선의 교차를 통해 관객의 믿음을 완벽히 전복시켜버리는 짜릿함이 있다. 이는 박찬욱의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쓰였던 구조다.
박찬욱은 원작 소설을 읽어 내려가며, 그리고 소설 속 활자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상상을 하며, 때론 낄낄대고, 때론 흥분하고, 때론 통쾌해했을 게 자명하다. 박찬욱의 또 다른 소설원작의 영화 ‘올드보이’와 ‘박쥐’가 그랬듯, ‘아가씨’ 역시 원작의 플롯에 얽매이지 않는다. 영화는 소설의 후반부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아가씨는 보다 농염하게, 하녀는 보다 당차게, 코우즈키는 보다 변태적으로, 백작은 보다 인간적으로 변모했다. 원작에 기반한 영화지만, 분위기를 축조한 것은 오로지 박찬욱의 감성이라는 의미다.
박찬욱의 세계에서 소녀들은 탈출을 감행해왔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소녀가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였다. ‘스토커’는 18살 생일을 맞은 소녀가 자신의 알을 깨고 성인의 세계로 건너가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인물들은 자기 딸이(혹은 누나가) 그만의 세계로 탈출하지 못하고 일찍이 꺾이자, 복수를 감행했다. 그 연장선에 있는 ‘아가씨’는 박찬욱의 여성에 대한 관심이 최전방에 서 있는 영화로 읽힌다. 단순히 레즈비언의 사랑을 그리기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 남성중심세계에 대한 반감과 조롱, 그리고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가 과감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정하자. ‘아가씨’에서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아가씨와 하녀의 성적 묘사일 것이다. 두 여자 사이의 섹스는 예상보다 수위가 높고, 과감하고, 길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려진다. 높은 수위에도 불구하고 외설적이라거나 (시각차는 있겠으나 딱히) 에로틱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 섹슈얼리티는 단순 성적행위가 아니라, 두 여주인공의 내면을 구현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으로 보일 때가 있다.(카메라가 두 여인의 체위보다 표정에 더 주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들의 연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 웅크리고 있던 두 여성은, 그렇게 닫힌 문을 활짝 열고 넓은 세계로 탈주한다.

숙희의 등장 후, 히데코의 세계는 빠르게 변한다. 이를 은유적으로, 그리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장면이 히데코의 낭독 장면이다. 남성들 앞에서 변태적 성행위가 묘사된 음란소설을 읽도록 교육된 히데코에게 낭독회는 일종의 노동이었다. 그녀에게 요구된 건 고도의 연기력이었다. 이 공간에서 그녀는 남성 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풍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숙희와의 긴밀한 교감 이후, 그녀의 낭독은 연기가 아닌 듯 보인다. 히데코는 책을 읽으며 실제 쾌감을 느낀다. 그것은 더 이상 남성들을 위한 낭독이 될 수 없다. 그 순간, 히데코를 지켜보는 남성들은 도리어 방청객으로 전락한다. 완벽한 관계의 전복. 남성들의 폭력적 시선이 머문 공간으로부터의 해방. 통쾌하다.
최근작들에서 김민희가 보여준 연기는 놀라웠지만, 이번에는 특히 그렇다. 앞으로 그녀는 더 진화된 연기를 보여주겠지만, ‘아가씨’의 매력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만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아가씨’는 숨소리부터 미세한 음성까지, 김민희의 모든 것을 담아낸 영화이니까. 신인 김태리는 딜레마에 놓인 인물의 감정을 사랑스럽게 연기한다. 당찬 여배우의, 당찬 등장이다. 변태성욕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는 조진웅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리고 하정우다. ‘아가씨’에서 백작은 하정우라는 배우를 만나 특유의 리듬감을 입었다. 보통의 장르영화에서 여자를 유혹하는 캐릭터가 지닐법한 ‘뻔한’ 상투성이 하정우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말끔하게 지워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팽팽하게 조율한 것은 박찬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