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궁금했다. 원더걸스는 록을 지향하는 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밴드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멤버들의 연주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악기를 든 상태에서는 여느 걸그룹처럼 예쁘고 섹시하게 춤을 추기가 어렵다. 요컨대 원더걸스가 밴드로 변신할 명분이 그럴듯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왜, 원더걸스는 또 다시 밴드로 돌아왔을까.
원더걸스가 내놓은 대답은 의외로 심플했고 은근히 설득력 있었다. “밴드, 왜 하면 안 되는데요?” 원더걸스는 지금 걸그룹에 대한, 그리고 밴드에 대한 금단에 반기를 들고 있다.
Q. 1년만의 컴백이에요. 소감이 어때요?
유빈: ‘아이 필 유(I Feel You)’ 활동이 끝난 뒤 바로 새 음반 작업에 들어갔어요. 만들어 놓은 곡이 더 많은데 그 중 추리고 추려서 여름에 잘 어울릴만한 곡을 골랐죠. ‘리부트(REBOOT)’ 음반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욕심을 내다보니 발매도 늦어졌고요. 그래도 온전한 원더걸스의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합니다.
혜림: 그동안 늘 박진영 PD님 곡으로 활동했잖아요. 이번엔 처음으로 자작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워서 더욱 긴장되고 기대돼요. 다들 어떻게 들으실지 궁금해요.
Q. 멤버들 모두 곡 작업에 참여했어요. 각자 좋아하는 장르 혹은 잘하는 장르가 다를 텐데 의견 조율은 어떻게 했어요?
예은: 혜림이와 선미, 저와 유빈 언니, 두 명이 한 팀이 돼서 작업했어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면서 색깔을 맞춰 나갔죠. 타이틀곡 ‘와이 소 론리(Why so lonely)’는 혜림이와 선미가 홍지상 작곡가님과 만든 노래에 유빈 언니가 랩을 만들어 넣었어요. 수록곡 ‘아름다운 그대에게’도 선미와 혜림이가 작업한 곡에 유빈 언니가 멜로디 라인을 더해줬고요.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음반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Q. ‘와이 소 론리’는 레게 풍의 곡이에요. 걸그룹은 많이 시도하지 않는 장르죠.
선미: 도입부를 특이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옛날 악단 같은, ‘뚬답뚬답’하는 소리로 시작되는데 그게 재밌게 느껴졌죠. 가사는 시니컬한 내용으로 가되 거부감이 들지 않게 멜로디를 사랑스럽고 예쁘게 풀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 레게라는 장르가 더해진 것이고요. 대부분의 섬머 송은 BPM이 빠르고 사운드도 강렬해요. 반면 ‘와이 소 시리어스’는 느긋한 분위기에 템포도 느리죠. 그래서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박진영씨 반응은 어때요?
예은: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셨고요. 이를테면 원래 ‘와이 소 론리’의 후렴은 모던 록의 느낌이 났거든요. 그 부분을 벌스(verse)와 통일해서 레게로 맞추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처음엔 브릿지도 멜로디로 연결됐는데 박진영PD님의 조언에 따라 유빈 언니의 랩을 얹었고요.
선미: 동물적인 안무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게 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웃음) 각 잡힌 군무는 아니고 각자의 느낌에 충실하게 추려고요.
예은: 어쩌면 여태까지 했던 안무 중 가장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일단 템포가 느려서 한 박자를 하나의 동작으로 다 채워야 해요. 그런 안무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멤버마다 다른 느낌으로 완성될 것 같아요.
Q. 대중의 반응은 어떨 것 같아요?
선미: “여름인데 왜 이렇게 더운 노래를 갖고 나왔어?” 이러는 거 아니야? 하하하.
유빈: 새롭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아이 필 유’ 때는 악기와 퍼포먼스가 결합된 형태였지만 이번엔 아예 안무버전과 밴드버전을 따로 나누어 활동할 예정이거든요. 그리고 사실 우리는 한국인의 피에 레게 소울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레게의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린 그렇게 보고 있죠. 하하.
Q. 트와이스를 시작으로 백아연, 백예린 등 JYP 여가수들이 올해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맏언니로서 책임이 막중할 것 같은데 어때요?
선미: 그들의 기운을 이어받아서 우리도 잘 되고 싶단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꼭 1위를 해야 잘 되는 걸까 의문이 들긴 하죠. 1위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차트 순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세상이잖아요. 하지만 잘 돼야죠.
Q. 그러면 순위 말고 여러분이 ‘잘 됐다’고 여기는 기준은 뭔가요?
선미: 롱런이요. 음원의 롱런.
예은: ‘원더걸스 잘 나왔다’라는 반응이 많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원더걸스 왜 나왔냐’라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건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의미겠죠.
유빈: 저번 음반보다 많이 발전했다, 성장했다. 혹은 원더걸스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음반이다. 그런 반응이 제겐 가장 뿌듯할 것 같아요.
Q. 반응은 어디서 체크해요?
선미: 각종 커뮤니티와 SNS, 기사 댓글, 그리고 구글링! 하하. 저와 예은 언니가 많이 보는 편이에요.
Q. 피드백을 얻기도 하나요?
선미: 그렇죠. 배울 점이 있는 피드백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거르고. 으하하.
예은: 영양가 없는 피드백은 정말 신경이 안 쓰여요. 다만 영양가는 있는데 아픈, 정곡을 찌르는 반응이 보일 때가 있어요. 마음은 아프지만 잘 받아들여야죠.
Q.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요?
선미: 왜 악기 녹음 직접 안 하냐고.(웃음) ‘리부트’ 음반이 나온 뒤 “밴드라면 악기 녹음도 직접 해야 하는 건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리부트’가 전자 음악에 기반을 둔 음반이라 리얼 악기로 녹음할 생각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직접 연주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죠. 싱글 음반에 들어간 세 곡 모두, 멤버들이 전부 녹음한 곡이에요. 연주 실력이야, 당연히 서툴 거예요. 하지만 우리들의 의지가 잘 전달되길 바라요.
Q. 상처가 제법 컸나 보네요. 그럼에도 다시 악기를 잡은 이유가 있나요?
예은: 우선 우리 모두 자기 악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합주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아이 필 유’가 밴드와 춤을 접목시킨 디스코 밴드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제대로 된 밴드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 ‘밴드 왜 해?’라는 반응도 물론 많죠. 그런데 우리가 은근히 반항적인 기질이 있나 봐요. ‘왜 해?’라고 하니까 ‘왜 못해?’, ‘왜 하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웃음)
Q. 밴드와 걸그룹, 서로 정 반대 지점에 놓인 포맷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할 필요도 있을 거예요. 밴드냐, 걸그룹이냐, 아니면 밴드와 걸그룹 사이의 무언가냐. 정리가 됐나요?
예은: 정리를 해가는 중이에요. 아직도 무대를 할 때마다 춤을 얼마나 출지, 밴드를 어떻게 구성할지, 멤버들마다 생각이 달라요. 서로 의견을 맞춰나가면서 우리에게 베스트인 것을 찾아가고 있죠. 다만 틀에 갇히지는 않으려고 해요. 이를 테면 “밴드라면 한 테이크는 한 번에 녹음해야 하지 않아?”라든지, “걸그룹이라면 꼭 춤을 춰야 해”라는 선입견을, 우리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