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대한민국 연기 아이콘을 꼽는 대회가 있다면, 결승전까지 승승장구할 사람은 단연 송강호일 것이다. 송강호라는 배우를 빼놓고 한국영화의 지난 20년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희귀한 재능은 당대 감독들의 창작열과 영감에 날개를 달았고, 동료ㆍ선후배들에게 강렬한 자극과 동기부여가 됐고, 관객들에게는 신뢰가 됐다. 티켓 파워까지 갖췄기에, 충무로의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가 송강호에게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형사, 왕, 변호사, 살인범, 조폭…송강호는 한국영화 캐릭터들이 어찌할 수 없이 지니고 있는 어떠한 정형성들을 매번 간파하며 그 안에 독창적인 숨결을 불어넣어왔다. 그 매력의 요체는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가 캐릭터에 부여하는 ‘묘한 인간미와 정겨움’이 아닐까 싶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송강호) 형사가 아직 연쇄살인사건을 파헤치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이는 것도, ‘괴물’의 강두(송강호)가 한강 둔치 어딘가에서 아직 매점을 운영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말마따나 “저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궁금하게 하는 송강호는 ‘밀정’에서 또 한 번 자신의 한계가 범우주임을 증명한다. 회색지대에 선 이정출은 송강호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그만의 인간미를 입었다.(*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Q. 얼굴이 많이 탄 것 같습니다.
송강호: 광주에서 여름 내내 ‘택시운전사’(장훈 감독)를 찍었어요. 뙤약볕 아래서 촬영하는 게 많다보니 어쩔 수 없이 탔어요. 올 여름 너무 더워서, 고생들 많이 하셨죠?
Q. 영화를 찍으며 스스로 그렸던 그림이 있을 텐데, 완성된 ‘밀정’은 어떻던가요.
송강호: 예상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격조 있게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흡족하게 봤습니다. 김지운 감독님이 당초 생각했던 그림 자체가, 지엽적인 작은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일제라는 혼돈의 시대를 관통했던 독립투사들의 갈등과 고뇌를 크게 조망하고 싶어 하셨는데 그게 너무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Q. 이정출의 실제 모델인 황옥은 친일파와 항일투사 사이에서 역사적 평가가 유보된 인물입니다. 일반인들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죠. 하지만 송강호가 이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많은 사람들은 송강호가 그리는 황옥을 실제의 그와 혼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인물을 어떠한 톤으로 그릴지, 나름의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송강호: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는 게, 황옥이라는 분에 대해서 저희들이 입장을 정리해서 ‘밀정’을 만든 건 아닙니다. 역사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이기에 저희도 모르죠. 물론 여러 자료들이 있기는 합니다. 끝까지 독립투사를 몰래 도우셨다는 설이 강력하게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어찌됐든 일제 앞잡이로 활동은 했기 때문에…아 앞잡이라는 단어가 좀 그런가요.(웃음). 그런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죠. 다만 저희 영화는 황옥이라는 특정인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혼돈스러운 시대를 회색빛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을 통해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려 했죠.
Q. 영화를 보면서 독립운동가 김산을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김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아리랑’에 캐스팅 된 적이 있으셨잖아요? 김산은 남에서는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북에서는 연안파라는 이유로 남북 모두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입니다. 이정출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송강호:맞아요. 그 영화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다른 영화사(명필름)에서 준비하다가 결국 제작이 안 됐는데, 김산이라는 인물도 그랬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불행한 인물이죠.
Q. 그런 캐릭터에 유독 끌리시는 건가요.
송강호: 아닙니다. 물론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시대라는 게 더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 보지 못했던 회색빛의 인간. 그게 참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가령 현대물인데 회색빛의 인물이라면, 매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Q. 이정출은 체제의 모순에 휘말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기질적으로 본인의 안위가 중요한 사람이었을까요.
송강호: 둘 다이지 않았을까요.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도 있겠지만, 그 인물 자체도 현실적인 면이 강했겠죠. 그럼에도 용기가 있는 인물이라 생각해요. 달콤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의 시간을 선택하잖아요. 삶의 태도나 본인의 가치관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건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Q. ‘밀정’의 어떤 부분에 마음이 끌려서 합류하셨나요.
송강호: 최재원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대표가 저에게는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다고 하고, 김 감독에게는 제가 출연한다고 했더군요. 밀정 같은 농간에 저희가 놀아난 건 아닌가 하는…(웃음) 물론, 농담입니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콘셉트 자체가 새롭지는 않았지만, ‘밀정’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시선이 존재하다고 느꼈어요. 회화적으로 표현하자면 붉은색도 아니고 까만색도 아닌, 회색빛이랄까. 좌절의 시대, 혼탁한 시대가 드러나 있더군요. 더군다나, 김지운 감독이 하신다니까 흔쾌히 한다고 했죠.
Q. 김지운 감독과는 네 번째 협업입니다.
송강호: 지난 20년간 쭉 함께 걸어왔지만 항상 머물지 않는 분 같아요. 장르의 변주든, 작품에 대한 태도든 항상 놀랄 만큼 바뀌어오지 않았나 싶어요. 실제로 일련의 작업들을 보면, 한 곳에 머문 적이 없죠. 그게, 말이 쉽지 참 대단한 거거든요. 작품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그런 시도와 실험을 이어간다는 건 예술가로서 놀라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Q. ‘적인가 동지인가’ 이 영화를 정말이지 탁월하게 설명해주는 카피라는 생각입니다. ‘밀정’에서는 모든 캐릭터들이 적과 동지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으니까요. 이병헌 씨가 연기한 정채산과의 ‘밀당’도 매우 흥미롭죠.
송강호: 이정출과 정채산의 만남은, 의열단 입장에서는 일종의 회유고 이정출 입장에서는 변화의 한 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정출이, 정채산을 만났기 때문에 마음이 바꾸었다고 보지는 않아요.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고뇌가 담겨왔다고 생각 하거든요. (첫 장면에 등장하는)박희순 씨가 연기한 김장옥은 의열단원으로 활약한 김상옥 열사를 모델로 한 인물이죠. 이정출은 한때 동지였던 김장옥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의 신체 일부(발가락)를 끝까지 가지고 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이정출이 느끼는 마음의 짐이고, 빚이고, 심적인 고통인 거죠.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이정출의 마음을 흔든 것이지, 어떤 한 부분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다? 그랬다면, 영화가 다루는 세계가 굉장히 작아 보였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정출의 마음을 흔든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을 꼽자면, 그건 의열단 연계순(한지민)의 죽음이겠죠.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요.
송강호: 카메라가 죽은 연계순의 작은 손만 비추는 장면이 있죠. 그 손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이정출의 표정은, 연계순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는 작고 힘없는 손도 잡아주지 못했던 민족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작은 손 하나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구나…’ 회한이 차오른 거죠. 그 손은 제게 중요했습니다.
Q. ‘변호인’에서는 변호인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변호했습니다. 이번에는 피고인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변호했죠. 법정신은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송강호: 나중에 밝혀지지만, 법정에서의 이정출은 ‘쇼잉’이잖아요. ‘쇼잉’이지만 진심이 담겨 있기도 하죠. 진실의 이중성. 그게 묘미인 것 같아요.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짜를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또 이정출의 정체성 같기도 하고요. 항상 그런, 경계의 날에 서 있는 인물이죠.
Q. 개인적으로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에 탄복하게 되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장면을 별 것 인 첫 처럼 만드는’ 능력 때문입니다.
송강호: 어이쿠! 과찬이십니다.
Q. 정채산과 술을 나누는 장면에서의 표정은 특히나 압권이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경을 상당히 위트 있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내셨습니다.
송강호: 그 장면은 사실 더 유머러스하게 찍었는데, 감독님이 편집에서 절제를 하신 것 같아요. 아니었다면 더 재미있을 수는 있었겠지만, 캐릭터는 훼손이 됐겠죠. 관객입장에서는 이병헌이라는 배우와 송강호를 8년 만에 한 화면에서 만나니까, 거기에서 오는 반가움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두 사람이 되게 오랜만에 만났네!’ 라는 게 분명 존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많은 감독님들이 송강호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매 테이크마다 연기가 다른데, 그 장면들이 편집에서 기가 막히게 다 붙는다”고.
송강호: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테이크마다 늘 다르게 연기가 나와요.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짐작해요. 기술적으로 그럴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은 반복이 되는 순간 에너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반복된 상황이라도, 액팅을 살짝 변주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기도 하죠. 사실 테이크마다 다른 연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 현장에서 감독님들이나 동료배우들이 종종 물어보곤 해요. 그럴 때 제가 궁여지책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가 돌아가고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매순간 감정이 똑같을 수 있느냐”고요. 그렇게 대답을 하곤 하죠. 하하하.
Q. 강동원-유아인-공유 등, 확실히 송강호와 붙으면 연기가 더 좋아 보인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송강호라는 배우의 리액션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후배들 입장에서 ‘송강호 앞에서 정신 차리자’라는 마음이 있을 텐데, 그러한 긴장감도 좋게 작용을 하는 것 같고요.
송강호: 어이쿠. 후배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송강호라서라기보다 선배 배우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송강호라서 특별히 신경을 쓴 건 아닐 겁니다.
Q, 공감할 수 없군요.(웃음) 송강호라는 이름 앞에 본능적으로 따라붙는 긴장감이 있을 겁니다. 실제로 공유 씨는 “촬영 당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더군요.
송강호: 하하. 후배들이 건강한 긴장감을 가지는 건 있겠죠. 그게 저 때문인지는…쩝.(웃음) 공유 씨는 제가 진담 반 농담 반, (1급수에만 서식하는) 다슬기 같은 친구라고 해요. 그래서 ‘공다슬기’라는 별명이 생겼던데, 공유 본인도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굉장히 맑아요. 보통 ‘밝은 친구’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공유는 그보다는 ‘깨끗하게 맑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빙산이 더 큰 배우라고 생각해요.
Q.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직접 하셨다고요.
송강호: 네. 직접 뛰어내리고! 구르고! 뛰고!(웃음) 기차는 CG인데, 다 따로 찍어서 합성을 했어요. 절묘하죠.
Q. 굉장히 뿌듯하다는 뉘앙스이십니다.(웃음)
송강호: 그 장면이 굉장히 멋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일동웃음) 박찬욱 감독님께서 “그 장면 어떻게 찍은 거야?”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건 잘 잘 찍었다는 의미죠. 뿌듯했습니다.(웃음)
Q. 여전히 작품에서 사투리를 사용하십니다. 그럼에도 송강호의 사투리는 극 안에서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특기하죠.
송강호: 연기를 하는데 있어 언어는 가장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를 위해서 언어를 채택하는 것이지, 언어를 위해 연기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해석 하시면, 제가 경상도 사투리를 굳이 사용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것도 있어요. ‘설국열차’에서 제가 영어를 못해서 한국어를 사용한 건 아닙니다. 그건 봉준호 감독의 철저한 계신이죠. 전세계 개봉이기에 영어권 언어로 통일을 시킨 것일 뿐, 설국열차라는 공간은 다민족이 사는 공간입니다. 다양한 인종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남궁민수(송강호)를 설정했기에 그대로 한국어를 사용한 것이지, 만약 영어가 필요했다면 저에게 영어를 시켰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부분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Q. 사투리 연기에 대해서는 후배들이 조언을 구해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송강호: 종종 있죠. 표준어밖에 못하는 배우가 사투리가 고민된다고 조언을 구하길래 “너의 감정과 연기가 목표가 돼야지, 절대 사투리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 그 개념을 명확히 알면 연기가 좋을 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제조건이 있는 겁니다. 연기가 보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해당 연기의 목표가 명확하게 달성이 되지 않는다면, 사투리 같은 배우의 지엽적인 부분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거죠.
Q. ‘설국열차’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해외에서 남궁민수로 많이 기억되기도 하시겠네요.
송강호: ‘설국열차’ 뿐 아니라, ‘살인의 추억’ ‘박쥐’ ‘밀양’도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지금 ‘택시 운전사’를 함께 촬영하고 있는 독일배우 토마스 크레취만(독일기자 피터 役)도 영화를 다 보셨더라고요. 제 영화를 많이 봤다기보다 한국영화를 많이 보세요. 그만큼 한국영화가 세계영화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산업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예술적인 성과에서도 발전하고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자부합니다.
Q. 영화는 많이 보시나요?
송강호: 솔직히 말씀드리면, 많이 보는 편은 아닙니다. 꼭 봐야 할 영화가 아니면,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아요.
Q. 꼭 볼 영화란…
송강호: (특유의 억양으로) 꽂히는 영화?(일동웃음)
Q. 정답이군요!
송강호: 하하. 이상하게 꽂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친한 감독님들 영화는 뒤늦게라도 챙겨보곤 하죠. 가령 ‘아가씨’의 경우 개봉일이 한참 지난 후 대전에서 보고 감독님과 통화를 한 기억이 나네요.
Q. ‘밀정’은 결국 선택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정출의 어떤 선택들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죠. 연기는 어떻습니까. 배우 송강호의 연기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을까요.
송강호: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특별히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차근차근 꾸준히 걸었고, 그게 쌓인 결과물이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Q. ‘밀정’은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송강호: 신념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죠.
Q. 신념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는데, 연기관 역시 시시때때로 바뀌나요?
송강호: 배우 개인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척도는 분명히 존재하겠죠. 다만 그런 건 있어요. 작품의 성향을 가지고 ‘저 배우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나?’ 라고 하는 건 편견 혹은 선입견이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Q.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관객이 저에 대해 쌓아온 믿음이 있다면 거기에는 작품을 선택하는 판단력에 관한 신뢰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고요.
송강호: 오호~.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나요?(일동웃음) 아무래도, 송강호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쌓여왔기에 거기에서 오는 어떤 기대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죠.
Q. 그런 의미에서, 관객의 믿음에 크게 보답해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송강호: 작품 선택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합니다. 시나리오도 있고, 감독도 있고, 그 시기의 운도 있죠. 가령 시나리오가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안 들어 올 때가 있어요. 마음의 문이 안 열린다고 할까요? 그런데 시기가 지나 다시 보면 그땐 또 확 당기기도 해요. 이게 참 모르는 거예요. 밝힐 수는 없지만 제가 어떤 시기에 못 받아들인 어떤 시나리오가 대박이 난 경우도 있어요. 그게, ‘아깝다, 안타깝다’ 이런 건 없어요. ‘아, 이건 경우가 있구나’ 하는 거죠. 결국 작품마다 운도 크게 작용하는 거죠.
Q. 개인적으로 ‘밀양’에서의 송강호를 잊을 수 없습니다. ‘송강호가 카메라 뒤에 물러나 있으면 어떨까’ 궁금했었는데, 중요한 건 비중이 아님을 의미심장하게 증명했죠.
송강호: ‘밀양’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하는 연기고, 그래서 그렇게 한 것일 뿐입니다. 언제든지 그런 작품이 들어온다면 배역의 비중을 따지지 않고 참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