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임헌일의 이름은 늘 거대한 뮤지션의 근처에서 포착됐다. 정원영밴드의 안에서, 김동률과 이적의 음반에서, 이소라와 박효신의 공연에서. 1983년 생. 올해 겨우 서른세 살에 접어든 이 젊은 뮤지션에게서 이들은 무엇을 발견했던 걸까.기타리스트 함춘호는 어린 임헌일의 기타 연주에서 그 자신의 이야기가 보였다고 회상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김덕수는 임헌일을 처음 만난 날 “언젠가 어디선가 오래 전부터 만났던 것 같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 그의 음악도 그렇다”고 말했다. 아직도 임헌일을 모르겠다면 그의 음악을 먼저 듣길. 그리고 부디 이 인터뷰가 그를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Q. 인터뷰를 준비하며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다. 정원영을 비롯해, 이소라, 이적, 김동률 등 당신과 닿아있는 뮤지션들이 곁에서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임헌일: 아이고.(웃음)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편하게 해 달라.
Q. 2005년 정원영밴드를 통해 프로 세계에 입문했다. 음악 생활의 시작을 대(大)뮤지션과 함께 한 셈이다.
임헌일: 그 땐 그게 굉장한 축복이란 걸 체감하지 못했다. 지나고 나서 내가 후배 뮤지션을 볼 때가 된 후에야 대단한 일이란 걸 알았다. 물론 그 때도 좋긴 좋았다. TV에서만 보던 분들이 내게 함께 하자 제안해주시고 사석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 생기고. 신기하다, 재밌다, 즐겁다…, 그 땐 그 정도였다. 그러다 내 음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그 때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Q. 그 때의 임헌일은 어땠나. 자신만만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자신감이 붕괴되는 순간도 마주했을 텐데.
임헌일: 선배들이 내게서 매력적인 무언가를 봐주셨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 분들의 칭찬이 진짜라고 내가 믿는 순간 망가지는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다. 솔로 음반을 아주 치밀하게 기획했던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굉장히 냉철하고 정확하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내 음악적인 한계, 동시에 내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자,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Q. 첫 솔로 음반이 이후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줬겠다.
임헌일: 모든 음반이 그랬다. 만들 땐 ‘이거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그런데 얘가 세상에 나오면….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새 옷을 입을 때, 집에선 완벽해보여서 자신 있게 나왔다가도 사람들 속에서는 왠지 창피한 기분이 드는. 몰랐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그래도 나의 최선을 담으려고 한 음반이니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Q. ‘배드/굿(BAD/GOOD)’ 이전에 발표된 음반이…
임헌일: 소품집. 온라인 음원 유통은 전혀 하지 않고 공연장에서만 실물 CD로 판매했다. 차트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음악도 아니거니와 내 음악을 귀담아들어주시는 분들, 말하자면 ‘내 사람들’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음반이었다.
Q. 그 소품집이 ‘배드/굿’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에는 어떤 영향을 줬나.
임헌일: 전부터 (음악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방식 중 하나가 소품집이었고. 소품집은 비웠지만 동시에 진지한 노래였다. 상념적인 가사, 감성적인 곡들. 이번에는 정말 편안한 느낌으로 했다.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왔고, 내게서 이런 감성이 나온다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음악이 어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풋풋했던 대학 시절도 생각났다.
Q. 정작 당신이 ‘진짜’ 어렸을 때는 가벼운 노래를 안 했지 않나.(웃음)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재하 음악대회 수상곡 ‘너의 생각’을 들었는데 한 없이 진지하더라.
임헌일: 그게 2000년대 초반에 나온 곡이다. 그 땐 ‘허세’란 단어가 없었다. ‘오글거려’, ‘느끼해’라는 반응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진지한 분위기의 음악을 좋아했고 나도 그런 식의 음악을 만들었던 것 같다. 패닉을 봐라. 20대 초반에 ‘강’을 쓰지 않았나. 그럴 수 있는 시절이었다.
Q. 그 때가 그립진 않나.
임헌일: 많이 그립다.
Q. 그러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나. 옛날처럼, 진지하게.
임헌일: 여태까지는 그랬다. 그러다 문득 ‘내가 너무 내 세계에만 빠져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근하게 마음을 풀어줄 수 있어야, 내가 진지한 얘기를 해도 잘 들어줄 것 아닌가. 내가 너무 진지 일색이라 사람들에게 선을 긋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Q. 개인적으로는 전략적인 변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팝 적인 노래에 인터뷰까지 한다니, 전면적으로 나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헌일: 가벼운 마음으로 낸 거라 처음엔 아무런 프로모션 계획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음악들이 꽁꽁 감출만한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깝기도 하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여력이 되는 선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Q. 인상 깊게 본 댓글이 있었다. “이 오빠, 이번엔 누굴 또 이렇게 좋아하는 거냐”는 내용이다. 요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임헌일: 하하. 늘 혼자 좋아하고 혼자 헤어지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누군가를 좋아할 여유조차 없다. 내가 요즘 빠져 있는 거라… 음악이라고 답하면 너무 재수 없을 것 같고.(웃음) 요즘에는 ‘잠드는 순간’이 가장 좋다. 아! 여행을 정말 가고 싶다.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온 지가 너무 오래됐다.
Q. 여행이라 함은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말하는 건가.
임헌일: 예전에는 그런 편이었는데 요즘엔 많이 포기했다. 정작 여행 가면 (음악을) 아무것도 못 써온다. 오히려 굉장히 뜬금없을 때, 가령 예전에 공익 근무할 때 사무적인 공간에서 되게 슬픈 가사가 나오기도 한다. 대중없다.(웃음)
Q. 최근 만난 어느 뮤지션은 영감이 오지 않으면 그냥 기다린다고 했다. 설령 그 시간이 아주 길더라도 말이다. 당신은 어떤가. 기다리는 편인가, 찾아나서나.
임헌일: 사람마다 다를 텐데 마냥 기다리기엔 삶이 너무 짧은 거 같다. 긴 기다림 끝에 나온 작품이 아주 훌륭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의미 없다고 생각한 메모들이 정말 의미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과거에 만들었다가 묵혀둔 데모 가운데 괜찮은 것들이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김동률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연주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곡을 많이 써라. 평생 지금처럼 (곡이)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 얘기가 굉장히 와 닿았다.
Q. 과거에 만들었던 곡을 다시 들어보면 어떤가. 20대 때 만든 노래와 지금 만드는 노래가 분명 다를 텐데.
임헌일: 20대 때는 삶이 어려운지 몰랐다. 들어오는 일만 바쁘게 하고, 누구와 헤어지면 죽을 것 같고. 그게 전부였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랄 만한 게 없었다. 물론 40대가 돼서 지금을 돌아본다면 ‘어렸다’고 말하겠지만, 그 때보다 삶의 세밀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밝지만 슬픔이 느껴질 수 있는 여지, 반대로 슬픔을 통해 기쁨이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작법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
Q. 삶에 대한 세밀한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
임헌일: 예전에는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일에만 공감했다면, 이젠 내가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다. 별일 아닌데 눈물도 많아지고 사회적인 이슈를 보면서 마음 아플 때가 많고. 이 모든 걸 음악적으로 담아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그러려면 듣기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