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노래는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그 곳이 바로 우리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곡이에요. 거기가 우리 ‘집(Home)’이니까요. 같이 부를래요?”
1만 명의 관객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자 공연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정중앙에 위치한 무대에는 가수 박효신이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뭐라고?” 그가 외치면 “플라이 하이(Fly high)”라고 ‘떼창’으로 답하는 관객들이 있었다. 무대 여기저기서 발을 구르고 무릎을 꿇고 뜀박질을 하던 박효신은 급기야 무대 바닥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그리고는 낮게 읊조렸다. “아, 행복하다. 하하하.”
박효신의 단독 콘서트 ‘아이 엠 어 드리머(I Am a Dreamer)’가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이번 콘서트에는 국내 공연 사상 이례적으로 360도 무대를 도입해 관객들과 거리를 좁혔다. “우리나라에는 중앙 무대를 설치할 수 있는 공연장이 없어 우리가 천장에 와이어를 다 설치했다”던 박효신의 선택은, 이번에도 옳았다. 박효신의 등 뒤로 펼쳐진 관객들의 불빛은 그 어떤 세트장보다 아름다운 배경이 됐고, 지칠 줄 모르고 무대를 누비는 그의 무쇠 같은 체력 덕분에 곳곳의 관객들이 두루 ‘은혜’를 입었다.
8대의 스피커의 통해 출력되는 박효신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입체적이었다. 음원에 담긴 섬세한 톤의 변화를 라이브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구현해내는 박효신의 실력에 한 번 놀라고 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음향에 두 번 놀랐다. 기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콘서트 대비 4배 규모의 음향 장비를 동원했다더니, 제법 효과가 있었다.

첫곡 ‘홈(Home)’을 시작으로 ‘더 드리머(The Dreamer)’, ‘샤인 유어 라이트(Shine your light)’를 연달아 부른 박효신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대신 입고 있던 빨간 재킷을 훌렁 벗어던졌다. ‘원더랜드(Wonderland)’였다. 도발적인 목소리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은 박효신은 이내 목에 멘 리본타이를 스르륵 풀었다. 거침없이 움직인 손길은 그의 몸을 단정하게 가려준 셔츠로 향했다. 하나, 둘, 셋. 세 개의 단추를 풀고 나서야 움직임이 멈췄다. 공연장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였다.
목소리만으로 연령 등급을 매긴다면 이번 콘서트는 틀림없이 ‘19금’ 판정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 드럼이 신나게 춤을 추고 기타 소리가 거세지더니 공연은 이내 록 페스티벌로 바뀌었다. 박효신이 무대에서 사라져도 음악은 사라지지 않았다. 벌써 의상 한 벌을 갈아입고 나온 박효신은 ‘리라(Li-la)’와 ‘잇츠 고너비 롤링(It's gonna be rolling)’까지, 총 6곡을 연달아 부른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꿈’을 주제로 만들어진 콘서트인 만큼 박효신은 직접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들과 꿈 인터뷰를 나눴다. 악보집에 박효신의 사인을 받는 것이 꿈이라던 20세 가수 지망생이 있는가 하면, 그와 사진 찍는 게 가장 큰 꿈이라던 40대 누나 팬, 박효신의 행복을 빌어주던 대학생 팬도 있었다. 말하자면 박효신은 이미 다양한 의미로 많은 이들의 꿈이 되어 있었다. 새삼 그의 존재가 커다랗게 느껴졌다.
세트리스트 대부분이 정규 7집 수록곡으로 채워졌다. 박효신은 “내가 계속 신곡만 부르는 바람에 서운하신 분들이 있을 것 같다”면서 ‘해줄 수 없는 일’, ‘동경’, ‘좋은 사람’, ‘눈의 꽃’ 등의 과거 히트곡을 짧은 메들리로 엮어서 들려줬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박효신이 ‘눈의 꽃’을 부르지 않았어도 만족스러웠을 게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음악이 히트곡에 대한 미련을 지울 만큼 충분히 훌륭하기 때문이다.
공연의 마지막은 첫곡과 마찬가지로 ‘홈’이 장식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후렴구의 ‘떼창’을 관객들이 함께 완성했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 누워 “행복하다”고 말하던 박효신은 이내 “우리 행복합시다”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놓아둘 수 있는 곳. 박효신 콘서트는 박효신이 만든 즐거운 우리들의 집이요, 지상 최대의 낙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