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감독의 영화가 있고, 배우의 영화가 있다. 김기덕의 영화는 늘 김기덕 영화였다. 장동건이 나오든, 하정우가 나오든, 이나영-오다기리 조가 나오든, 종국에는 김기덕으로 회귀해서 김기덕의 작품으로 기억됐다.
그런데 ‘그물’은 좀 다르다. 영화를 보고 몇 주가 지났는데, 시간이 갈수록 김기덕보다 류승범의 얼굴이 더 선망하게 떠오른다. 그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다가, 그것이 류승범이 연기한 남철우라는 캐릭터와 실제 류승범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동질감’ 혹은 ‘이질감’에서 기인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문득 했다.
‘그물’은 배가 그물에 걸리는 바람에 남한으로 흘러들어온 북한 어부의 이야기다. 어부 철우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남한에서 겪어야 했던 일종의 모멸감, 북으로 돌아간 후 또 한 번 만나게 되는 좌절감. 그러니까 류승범이 연기한 남철우는 사회라는 시스템에 의해 붕괴된 인물이다. 국가라는 그물에 걸린 남자, 체제의 압박에 의해 종국엔 구겨지는 남자.
그런 인물을 한국을 떠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류승범이 연기했다는 것은 뭔가 의미심장하다. 돌이켜보건대, 류승범 역시 철우와 비슷한 혼란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결정적인 차이라면, 시스템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무너진 철우와 달리, 류승범은 스스로 시스템의 속박을 벗어던졌다는 점일 게다. 그러니까, 류승범은 시스템을 박차고 나간 남자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년)를 통해 건들건들 스크린에 당도한 류승범은, 정우성과는 다른 얼굴로 청춘의 한 모습을 대변해 왔다. 정우성이 반항과 우상의 아이콘으로써 어떤 ‘로망’을 부추겼다면, 류승범은 밉지 않은 ‘양아치스러움’과 자유를 그려나가며 20대에게 동류의식을 선사했다. 날 것 그대로의 청춘, 비릿한 청춘, 팔딱거리는 청춘. 류승범이 품은 청춘의 얼굴이었다.
그런 청춘에게서 변화가 감지된 건, 서른 즈음의 어떤 시기였던 것 같다. 그 무렵, 류승범은 뭔가 달라 보였다. 부쩍 어른스러워진 모습, 동시에 뭔가에 짓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한 얼굴. 그건 마치 태풍이 오기 전의 고요처럼 너무나 잔잔해서, 오히려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를 확인한 건, ‘베를린’ 개봉을 앞두고 1대 1로 마주한 인터뷰에서였다. 그와의 대화는 영화를 넘어 사는 문제로까지 조금 깊어졌는데, 당시 그는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들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스템에 대해, 체제의 부조리에 대해, 괄약근에 힘을 바짝 쪼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귀족사회를 타파하고 자유를 거머쥔 프랑스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말들 속에서 ‘틀에 갇히는 걸 본능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사회의 엄숙주의 안에서 암묵적으로 강요받아야 했던 어떤 외로움이 감지됐다.
‘그물’을 보면, 자본주의의 상징인 명동 한복판에 놓인 철우는 우연히 위기에 빠진 성매매 여성을 구해준 뒤 이렇게 묻는다. “자유로운 나라에서 뭐가 그렇게 힙듭네까?” 당시 인터뷰에서 류승범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부당거래’의 대사를 인용해서 이렇게 답했다. “이 사회에서 ‘존중’이라는 것들이 자본에게까지 깔아뭉개지는 게 아쉽다”고 “배우라는 것이 돈을 창출해 내거나 상품을 찍어내는 직업이 아닌데, (중략) 배우가 가지고 있는 무형의 존중받아야 하는 것들이 자본에 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날카롭게 바라보려 했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 하는 듯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베를린’ 홍보를 마치고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연기처럼, 펑.
이후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집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급하게 처분한 후, 캐리어에 옷가지 몇 개만을 챙긴 채 파리로 떠났다고 했다. 오지에 들어가서 한 달간 망고만 따먹고 산다는 이야기도 들렸고, 끊임없이 명상하면서 스스로 중독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류승범의 형이자 감독인 류승완 감독의 말에 따르면 류승범은 “온전히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이후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류승범이다. 그는 여전히 정처 없이 전 세계를 배회하며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에 자신을 맡긴 채 흐르고 있다. 완벽한, 노메이크업.
김기덕 감독은 ‘그물’의 철우를 통해 우리 모두가 그물에 걸린 고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스템에 의해 자유가 속박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철우를 연기한 류승범은 그럼에도 우리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도, 류승범도, 시스템 안에 놓인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