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색안경과 평가 절하에 시달리는 것이 아이돌의 숙명이지만, 국내 가요 시장에서 아이돌만큼 중요한 존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말 많고 탈 많았던 병신년을 마무리하며 올 한 해 활약한 아이돌 그룹을 비즈엔터가 꼽아 봤다.

올해의 HOT데뷔 블랙핑크, 아이오아이
블랙핑크와 아이오아이를 빼고 올해의 신인을 논할 수가 없다는 명제에 이견을 보일 이는 드물 것이다. YG엔터테인먼트가 2NE1 이후 7년 만에 내는 걸그룹이라는 점에서 블랙핑크는 세간의 주목을 끌며 첫 걸음을 뗐고, 방송 출연을 자제하며 신비주의 행보를 택했음에도 음원차트 1위를 점령하는 등의 강세를 보였다.
아이오아이의 경우, 국민 프로듀서라는 든든한 ‘빽’을 두고 탄생했다. 멤버 선발 과정부터 그룹 결성까지 데뷔 서바이벌을 통해 매력을 뽐낸 덕에, 시한부 걸그룹이라는 약점에도 음악 방송에서 다섯 번이나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블랙핑크와 아이오아이가 ‘휘파람’, ‘왓 어 맨’으로 정면 승부를 펼쳤던 지난 8월에는 두 팀이 국내 8대 음원차트 1위 자리를 양분하며 대중의 관심도를 입증했다. 그야말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신흥강자들의 탄생이다.
올해의 세대교체 트와이스
가요계의 흐름이 아무리 빨라졌다고 한들 신인상 수상 1년 만에 대상을 움켜쥘 수 있는 팀은 거의 없다. 하지만 걸그룹 트와이스는, 해냈다. 데뷔곡 ‘우아하게’의 역주행 흥행 이후 트와이스에게 펼쳐진 것은 꽃길, 꽃길, 계속되는 꽃길 뿐. 지난 4월 발표한 ‘치어 업(Cheer up)’은 1억 스트리밍 돌파(가온차트 기준)라는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 희대의 유행어 “샤샤샤”를 남겼고, 10월에 내놓은 세 번째 미니음반은 올해 발매된 걸그룹 음반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올해의 신기록 엑소
신기록 제조기, 신기록 자판기, 신기록 메이커, 신기록 행진…. 그룹 엑소를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신기록’이다. 발매하는 음반마다 전작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는 덕분에 ‘엑소의 적(敵)은 엑소’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올해 발표한 정규 3집 ‘이그젝트(EX'ACT)’를 110만 장 이상 팔아치우며 엑소를 트리플 밀리언셀러 자리에 올려놓았고,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net Asian Music Awards)’ 사상 최초로 4년 연속 대상을 안기며 또 하나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올해의 빌보드 방탄소년단
K팝 가수들의 글로벌 인기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는) ‘빌보드 순위’에는 그러나 함정이 숨어 있다. 많은 팀들이 뽐내는 ‘월드 앨범 차트’나 ‘월드 디지털송 차트’는 사실 수많은 하위 차트 중 하나일 뿐이며, 메인 차트로 통하는 ‘핫 100’(싱글) 혹은 ‘빌보드 200’(음반)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한국 가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10월 발매한 정규 2집 ‘윙스(WINGS)’는 ‘빌보드 200’ 차트에 26위로 진입했다. 한국 가수들 중 가장 높은 순위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녹여낸 음악과 서사적인 콘셉트를 바탕으로 방탄소년단은 유의미한 규모의 현지 팬덤을 갖게 됐다.

올해의 징크스 마(魔)의 7년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7년 징크스에 무너졌다. 먼저 10년차에 접어든 걸그룹 카라가 올 1월 해체된 것을 기점으로 7년차 포미닛, 레인보우와 2NE1도 해체 수순을 밟았다. 멤버들의 이탈 또한 도드라졌다. 시크릿에서는 한선화가 탈퇴하며 연기자로서의 제 2막을 택했고,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던 장현승은 비스트 스케줄에 불참하던 끝에 결국 솔로 행보를 선언하며 팀에서 탈퇴해 아쉬움을 남겼다. 7년차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6년차 걸그룹 미쓰에이와 나인뮤지스는 각각 지아와 민하 이유애린 현아 등이 탈퇴하며 멤버 재편을 겪었다.
올해의 정주행 여자친구
지난 해 ‘꽈당’ 직캠으로 역주행 반열에 올랐던 여자친구. ‘오늘부터 우리는’의 히트에 이어 올 초부터 ‘시간을 달려서’, ‘너 그리고 나’로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이젠 내놓는 싱글마다 음원차트 1위를 기본으로 찍고 시작하는 경지에 올랐으니, 그들의 역주행에 놀라워하던 건 이미 먼 옛날로 느껴진다. ‘파워 청순’이라는 콘셉트의 한계는 어디일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올해의 아차!상 티파니, AOA 설현‧지민
아차! 하는 사이에 벌어진 실수가 걷잡을 수 없는 논란으로 커졌다. 걸그룹 AOA 설현‧지민과 소녀시대 티파니는 올해 역사의식 논란에 휩싸이며 홍역을 치렀다. 설현과 지민은 안중근 의사를 묻는 퀴즈에서 ‘긴또깡’을 언급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이후 열린 컴백 쇼케이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광복절을 하루 전날 SNS에 욱일기 사진을 게재했던 티파니는 몇 시간 뒤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으나 더욱 큰 비난 여론을 맞닥뜨렸다. 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는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에서 하차,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2차 사과문을 공개했다.

올해의 전화위복 비스트
지난 2009년 데뷔한 이래로 큰 풍파 없이 순조롭게 ‘롱런’하던 비스트. 올해는 아홉수도 아닌 ‘일곱수’가 낀 것 마냥 많은 일을 겪었다. 논란을 일으키던 멤버 장현승이 4월에 탈퇴했고, 10월엔 소속사와 전속 계약이 만료돼 의도치 않은 ‘무소속’으로 지내왔다. 이후 두 달 만에 새 소속사 어라운드 어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나머지 비스트 멤버 윤두준 이기광 양요섭 용준형 손동운 등은 독자노선을 택했다. 새 출발에 나선 이들의 첫 스케줄은 팬들과의 V앱과 연말 팬미팅. 아직 전 소속사와 상표권 문제 등이 남았지만, 멤버들끼리 새로운 소속사를 설립하며 팀을 이어가는 사례가 신화 이후 처음인 만큼 이들의 행보에 관심이 더해진다.
올해의 냉동인간 젝스키스
지난 4월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그룹 젝스키스 강성훈은 곱게 빗어 내린 5:5 칼머리를 한 채 나타났고, 16년 전과 변함없는 그의 스타일링에 제작진은 “냉동인간 수준”이라는 자막을 붙였다. 젝스키스 재결합 성공의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는 불혹에 가까워진 나이일지라도 기꺼이 ‘오빠’라고 부를 만큼 멋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젝스키스의 여섯 멤버 모두 냉동된 듯한 비주얼로 이를 충족시켰다. 결과는? 신곡 ‘세 단어’와 리메이크 음반 수록곡의 차트 1위.

올해의 리부트 원더걸스
걸그룹 원더걸스가 지난해 발표한 음반 제목은 ‘리부트(REBOOT)’, 우리말로 옮기면 ‘재시동하다’는 의미다. 그것은 앞으로의 원더걸스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당시 ‘걸밴드’를 콘셉트로 내세워 화제를 모았던 원더걸스는 그러나 활동 내내 연주 실력에 대한 갑론을박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의 경험을 교훈삼아 이들은 지난 7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연주한 싱글 음반 ‘와이 소 론리(Why so lonely)’를 발표, 장기간 차트 1위를 수성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원더걸스가 보여준 것은 멤버들의 향상된 연주 실력이 아니라, 스스로를 주체자로 곧추 세운 아티스트의 모습, 진정한 의미의 리부트다.
올해의 그래도 아직은 태연
걸그룹 소녀시대의 메인보컬로 데뷔한 태연은 다수의 OST를 통해 일찌감치 솔로 가수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선보인 발라드 넘버는 예쁜 음색과 가창력을 강조하기에는 제격이었으나 태연의 오리지널리티가 끼어들 여지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태연이 올해 보여준 행보는 실로 고무적이다. ‘아이(I)’, ‘와이(Why)’, ‘11:11’에서 그가 그린 여성상은 남성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 스스로를 중심에 둔 주체적인 인물이다. 태연은 지금 아이돌 솔로 활동의 좋은 예를 넘어서 여성 가수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의 극한직업 B1A4
오락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연예인은 서비스업에 속하는 직업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연예인, 특히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는 때로 고강도의 ‘감정 노동’이 요구되곤 한다. 그룹 B1A4는 최근 tvN ‘SNL코리아8’에 출연했다가 개그우먼 이세영에게 강제로 신체 접촉을 당한 바 있다. 멤버들의 의사에 명백하게 반하는 접촉이었으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당황한 얼굴로 웃는 것 뿐. 비단 B1A4만의 일이 아니다. 걸그룹 러블리즈 류수정이 팬사인회에서 볼 꼬집기를 당했을 때에도, ‘위문열차’ 공연을 간 에이프릴 채원에게 군인이 동의 없이 허리에 손을 둘렀을 때에도, 이들은 모두 웃어야 했다. 극한직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