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패신저(Passenger). 우리말로 옮기면 승객, 유랑하는 사람. 머무름을 기약하지 않지만 영영 떠나가 버리는 것도 아닌.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패신저 음악은 일견 이별을 연상시킬 만큼 씁쓸했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재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피어 올랐다.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는 패신저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다. “‘렛 허 고(Let her go)’의 유튜브 조회수가 10억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아는 사람은 엄청나게 없다”(출처 나무위키)는 심보 고약한 누리꾼의 일격과 달리, 이날 현장에 모인 팬들은 열렬한 애정으로 패신저를 맞이했다.
패신저는 마이크 로젠버그의 원맨밴드다. 지난 2003년 동료들과 함께 ‘패신저’라는 밴드를 구성해 한 장의 음반을 발매했지만 팀은 해체했고, 패신저는 홀로 활동을 이어갔다. 영국과 호주, 유럽 일대에서 버스킹을 하던 그는 2012년 발표한 ‘렛 허 고’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대형 가수로 성장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패신저’라는 이름이 밴드의 이름처럼 들리겠지만 저와 제 기타가 오늘 출연자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멋질 거예요. 보통 이 대목에서 다들 자리를 떠나는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노래 가운데 유명한 곡은 딱 하나 뿐이라서, 그 노래만 12번 정도 연주할 거예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다른 곡과 헷갈려 하더군요. 제 노래는 ‘렛 허 고’입니다. ‘겨울왕국’의 ‘렛 잇 고’와는 달라요.”
패신저는 유쾌한 말솜씨로 공연을 이끌어 갔다. 한국어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객석을 향해 말 거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유명한 노래는 단 한 곡 뿐”이라던 그가 “신청곡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달라”고 청하자, 객석에서는 즉각 여러 노래의 제목이 튀어 나왔다. 의외로 남성 관객을의 호응이 뜨거웠다.
‘라이프 포 리빙(Life for living)’, ‘아이 시 러브(I see love)’를 연주한 뒤 패신저는 잠시 노래를 멈추고 옛날 얘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트래블링 얼로운(Travelling Alone)’에 얽힌 이야기였다. 아내와 사별한 호주 노인과 10년 연인과 헤어진 스위스 여성의 이야기로 노래를 완성했단다. 느리고 쓸쓸한 곡이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다음 곡에선 소리를 질러주세요. 왜냐하면 이 노래는 제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곡이거든요.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가사가 없어요. 그러니 언어적인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다들 일어나 주시겠어요?”
제목부터 정직한 ‘아이 헤이트(I hate)’가 시작됐다. 첫 소절(“난 인종주의자가 싫어. 재미없는 농담이나 지껄이지”)을 부르고 난 그는 낯설어 하는 한국 관객들을 위해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여기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이 인종주의자라는 뜻이에요.” 100% 적응 완료. 관객들은 즉각 발을 구르고 환호와 야유를 번갈아 보내며 노래를 즐겼다.
솔로 버전의 ‘뷰티풀 버드(Beautiful Bird)’를 지나, 조회수 11억 뷰의 주인공 ‘렛 허 고’가 관객들의 ‘떼창’으로 완성됐다. 버스커에서 월드 투어 가수로, 패신저의 인생을 바꿔준 노래. 그는 “전 세계를 돌면서 가장 경이롭게 느껴지는 건,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국가에서도 음악을 통해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앙코르 전 마지막 곡은 ‘위스퍼스(Whispers)’ 음반 수록곡 ‘스케어 어웨이 더 다크(Scare Away The Dark)’였다. 공교롭게도, 한국인에게 특히 절망적인 해였던 2014년에 발표된 노래. “우리가 모두 빛을 낸다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If we all light up we can scare away the dark)”는 가사는, 숫제 예언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지금의 대한민국과 맞닿아 있었다.
“2016년은 참 이상한 해였어요.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을 때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끼기 쉬울 거예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요. 이 노래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충분히 강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어서 만든 노래에요. 여러분 모두, 저를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