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 음악평론가]
“USB도 앨범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최근 가요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다. 주인공은 바로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 그는 자신의 최신 앨범 ‘권지용’을 USB 형태로 발매했고, 나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바로 그 USB를 지금 막 사용해본 상태다. 주지하다시피, 가온 차트에서는 이 USB를 앨범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판매량 집계에 넣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음이 유형물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게 주요한 이유였다.
USB를 컴퓨터에 접속하면 시리얼 넘버를 치라는 화면이 먼저 등장한다. 부여 받은 숫자와 문자의 조합을 입력하면 고음질 음원과 고화질의 사진과 뮤직비디오 등을 다운받을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한다. 즉, USB 안에 음악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 패스워드로 ‘경유’하는 방식이기에 가온 차트에서는 이걸 앨범으로 치지 않은 것이다.
글쎄. 어쨌든 음악을 소유한다는 측면에서 과연 이게 합당한 결정인가 싶다. 만약 원한다면 소비자들이 이 USB에 다운받은 곡들을 얼마든지 다시 담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 순간 텅 비어있던 USB는 순식간에 음이 고정된 유형물로 짠하고 변신한다. 가격에 대한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공CD의 경우, 지금 한 장에 2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CD 가격은 부클릿 포함해 거의 2만원에 달한다. 그리고 CD의 부클릿처럼 이 USB 역시 음원 외에도 여러 독점 자료를 소유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이 정도면 문제 없다고 본다.
게다가 저장용량이 4기가로 충분하니 (위에 언급한) 음원 외의 사진 및 영상 컨텐츠들도 함께 담을 수 있다. 어떤가. 이렇듯 유형물을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내는 것, 이게 되려 더 앨범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가 말이다. 심지어 곡 순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이걸 자신의 뜻대로 재배열할 수도 있다. ‘접속’을 통해 ‘소유’하고, 자신의 취향대로 얼마든지 내용물을 교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디의 USB는 충분히 앨범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USB 논란의 핵심이 ‘앨범이냐 아니냐’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시해서 말하자면, 핵심은 다름 아닌 멜론으로 대표되는 거대 음원 유통 권력의 배제다.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추구하는 대신 그들에게만 독점적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서 기존 음원 유통 구조를 뒤흔드는 것. 이미 10년도 전에 라디오헤드(Radiohead)는 자신들의 앨범 ‘In Rainbows’(2007)를 홈페이지에서만 직접 다운로드 받게 해 화제를 모았던 바 있다. 지디의 USB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따라서 지디의 USB는 멜론으로 대표되는 막강한 음원 사이트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어디까지나 지디쯤 되는 거물이 시도했기에 주목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라디오헤드의 선구자적 행보 이후 비슷한 시도들이 줄을 잇고 이어졌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라디오헤드가 그랬던 것처럼 과연 지디의 USB가 게임판을 뒤흔든 일대 사건으로 회자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확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얘기만큼은 꼭 강조하고 싶다. 손바닥 안에 컴퓨터가 들려져 있는 이 슈퍼-울트라-모던한 접속과 확장의 시대에 CD나 LP만이 앨범이라고 주장하는 건, 산업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너무 낡고 고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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