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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봉준호표 먹거리 X파일, 양갱과 ‘옥자’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진=넷플릭스 제공)

봉준호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 개봉 당시, “열차 안에 동물칸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옥자’를 보며 ‘설국열차’에서 성사시키지 못한 동물칸의 확장 버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설국열차를 추동하는 에너지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향한 비판이었듯 ‘옥자’ 저변에 깔린 것 역시 자본주의 시대의 탐욕이다. 만약 ‘옥자’가 ‘설국열차’ 안에 들어앉았다면, 꼬리칸 사람들의 바퀴벌레(단백질 블록)가 아닌 무수히 많은 옥자들을 먹을 수 있었을까.

강원도 산골소녀 미자(안서현)가 10년간 동거동락한 슈퍼돼지 옥자를 찾아 미국 뉴욕으로 간다는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는 봉준호의 인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거대 우리 같다. 동물을 찾아 나선다는 1차원적 플롯으로만 보면 ‘플란다스의 개’가, 헤어진 가족이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는 ‘괴물’이, 이 모든 것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또 ‘설국열차’를 호출하게 된다. 미자에게서 모성을 본다면 ‘마더’와도 연결 될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연대기와 함께 살펴보면 여러모로 흥미로운 텍스트다.

‘옥자’는 크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미자의 세계, 강원도 산골이다. 자연과 사랑이 피어나는 이곳은 슈퍼돼지 옥자에겐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이 세계에서 옥자는 인간의 친구이자 가족이고 정신적 교감의 대상이다. 그 대척점에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의 세계가 있다. 이곳에서 옥자는 식량이다. 레스토랑에서 나이프를 썰며 “육즙이 좋네”라는 충만감을 줄 수 있는 질 좋은 품종이다. 인간의 미각을 위한 도살을 목표로 사육되는 이곳은 옥자에게 공동묘지나 다름없다. 실제로 영화는 후반 홀로고스트를 연상시키는 살육현장을 스크린 가득 품는다. 도축실로 들어가는 좁은 문 앞에서 슬픈 울음을 쏟아내는 무수한 옥자들은 과거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 흐느꼈던 어떤 이들의 모습을 불러 세운다. 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묵시론적인 그림은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가 매만진 다크한 질감 안에서 한 층 더 싸늘한 느낌을 자아낸다. 디테일한 연출에 남다른 감각을 지닌 봉준호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최하층) 사람들의 주식으로 지도층이 던진 양갱(바퀴벌레 사료)이 저렴한 인력을 확보하려는 계급의 산물이었다면, 유전자 변형을 통해 질 좋게 탄생한 ‘옥자’의 하마를 닮은 돼지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자본의 산물이다. ‘옥자’는 인간의 친구이기도 식량이기도 한 동물이라는 존재가 지니는 이중성을 통해 유전자 변형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인 ‘먹는다’는 의미를 잠시 불러 세운다.

후반 도살장 장면을 제외하면 ‘옥자’의 리듬은 내내 경쾌하다. 봉준호의 특징이라 명명되는 ‘봉준호식 블랙코미디’가 전면에 선 영화는 그래서 한편의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보 캐릭터 만들기에 각별한 소질을 지닌 봉준호는 이번에는 그 재능을 조금 더 뽐내는 듯 보인다. 괴기한 느낌의 루시 미란도는 물론이고, 미자와 옥자를 돕는 비밀동물보호단체(ALF) 캐릭터 대부분을 희한하게 비틀었다. 주말 저녁 ‘개그 콘서트’에서 볼법한 유머가 이들 사이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다만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이러한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는 상당히 흥미로우나 그것이 영화가 품은 거대 메시지의 활력을 다소 잡아먹는 인상을 안기기도 한다.

영화 안에서 시스템과 혈투를 벌이는 ‘옥자’는 영화 밖에서도 다른 의미의 (극장 배급) 시스템들과 뒤엉키며 가볍지 않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온라인 공개가 목적인 미국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된 ‘옥자’는 결국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작은 극장들에서만 공개된다. 넷플릭스의 지원 속에서 탄생하긴 했지만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4K 디지털영화로 만들었다. 2.35: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를 선택하기도 했다. 영화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여러 의미에서 ‘옥자’는 변종인 셈이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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