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라효진 기자]
배우가 되기 전, 윤현민은 인생에서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야구선수가 됐지만, 프로의 세계는 생각보다 냉정했다. 몸과 마음은 위축됐고, 연달은 부상이 그를 좌절시켰다. 결국 유니폼을 벗은 윤현민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시작으로 배우가 됐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꿈이 톱스타는 아니었어요. 차근차근 활동을 이어가서 마흔 살이 됐을 때는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봐 줄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배우를 평생 직업으로 삼는 게 목표였어요. 제 생각보다 빨리 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좀 더 자신을 다스릴 필요도 있죠. 이런 부분에서 야구를 했던 것이 도움돼요.”
운동선수 특유의 악바리 근성은 있었지만, 과도한 욕심은 내지 않았다. 작품 속 역할과 그 비중을 가리지 않았다. 덕분에 윤현민의 필모그래피는 그의 말대로 ‘차근차근’ 늘어갔다. 성적이 저조한 작품은 있을지언정 윤현민이 연기한 캐릭터가 묻힌 적은 없었다. JTBC ‘무정도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이 1%도 채 되지 못했던 드라마지만, 윤현민은 이 작품을 통해 업계에서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10년만 버텨 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했던 연기자의 길을 걸은 지도 어언 7년이다.
지난달 28일 종영한 KBS2 ‘마녀의 법정’은 그런 윤현민이 지상파 미니시리즈 남자주인공으로 발돋움한 드라마다. 극 중 정려원과 호흡을 맞춘 그는 흥행 참패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던 KBS2 월화극의 구원 투수가 됐다.
“첫 원톱 주연이라는 게 저로서도 걱정되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너한테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고 작품이다’라면서 부담을 많이 줬어요. (웃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돌이켜 봤는데, 여태 저에게 중요하지 않은 작품은 없었어요. 한 작품을 잘해야 다음 작품이 들어오리라는 마음으로 임했으니까요. 그래서 압박에는 귀를 닫고, 최선을 다해서 밀어붙여야 겠다고 생각했죠.”
유독 평범치 않은 캐릭터를 많이 맡았던 윤현민은 ‘마녀의 법정’에서도 남다른 인물을 연기했다. 소아정신과 의사 출신의 검사 여진욱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메디컬 드라마를 했을 때는 용어도 입에 잘 붙지 않는데 응급 상황이 많으니 마음이 급해졌던 부분이 어려웠죠. 이번에는 법정 드라마라 빠르게 대사를 내뱉을 필요는 없었지만, 용어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종이에 빼곡히 써 가며 무작정 외웠어요.”
당초 차기작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원했던 그는 다시 한 번 쉽지 않은 캐릭터를 골랐다.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진 적 없던 여성·아동 대상 성범죄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재미는 물론 대중의 경각심까지 일깨운 ‘마녀의 법정’의 진정성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가 반환점을 돌 무렵 진행된 현장 공개 당시에는 촬영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하다가 눈물까지 보였던 그다.
“그 때는 정말 왜 울었는지….(웃음) 소재 자체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고민도 많았죠. 하지만 ‘마녀의 법정’을 통해서 배우로서의 저뿐만 아니라 인간 윤현민도 성장했던 것 같아요.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듯해서 저도 모르게 외면했던 사건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마지막회를 찍으면서도 또 한 번 울컥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