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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현숙 “잘 살아내야죠, 지금 이 순간을”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김현숙(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김현숙(사진=고아라 기자 iknow@)

2007년 방영된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 5회, ‘영애는 남보다 비를 더 많이 맞는다’. 비 오는 날의 에피소드로 채워진 이 회차는 다음과 같은 영애(김현숙 분)의 내레이션으로 막을 내린다. “비가 그쳤다고 해서 우산을 버릴 수 없다. 내일을 살기위해 오늘을 버릴 수 없듯이.” 11년 간 영애를 연기해온 배우 김현숙은 이 회차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꼽았다.

김현숙은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포착하는 것이 ‘막돼먹은 영애씨’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긴 시간 영애를 연기하면서 영애와 자신이 동일시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영애가 사기를 당할 땐 나도 사기를 당”하는 웃지 못 할 우연도 생겼다. 영애의 몫이던 러브라인이나 ‘막돼먹은’ 에피소드가 새로운 배우들에게 넘어가도 김현숙은 괜찮다. “이제는 거의 제작자의 자세”가 됐기 때문이다.

두 번의 파혼과 셀 수 없는 이별을 경험했던 영애는 지난달 종영한 시즌16에서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 상대는 ‘작사(작은 사장)’ 승준(이승준 분)으로, 영애를 “소름끼치게” 사랑하지만 지질함과 유치함을 숨기지 못하는 인물이다. 김현숙은 “가장 이상적인 상대는 산호(김산호 분)였는데 아쉽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결혼은 타이밍”이라는 명언(?)을 되새김질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나요? 결혼도 타이밍이에요. 지나간 남자들, 물론 다 사랑했겠죠. 저도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지금 남편은 아니거든요. 남편도 알아요.(웃음) 하지만 괜찮은 상대가 나타났을 때보다 내가 준비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게 결혼인가봐요. 어렸을 땐 능력도 있고 외모도 괜찮고 성격도 좋은 남자를 찾는데, 그걸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결혼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현숙(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김현숙(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결혼을 완전무결한 사랑의 종착점처럼 그리는 여느 드라마와 다르게 ‘막돼먹은 영애씨’에겐 결혼도 현실이다. 예식을 올리기도 전부터 신혼집에 얹혀살던 시동생 규한(이규한 분)이 만취해 아기 침대에서 잠든 일화나 축의금 도둑을 잡으며 역정을 내던 영애의 모습은, 그가 처한 ‘막돼먹은’ 세상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버진 로드 한 번 제대로 밟지 못했음이 서운할 법도 한데 김현숙은 “영애스러워서 좋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혼전 임신을 한 영애는 이제 곧 엄마가 된다. 김현숙은 “다음 시즌부터는 워킹맘의 삶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현숙이 현실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짙은 공감이 가능하다. “훨씬 주체적으로 사는 세대”인 요즘 여성들이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책임감, 중압감, 죄책감에 정신적으로도 힘든” 상황을 그리고 싶단다. 김현숙은 “작가들이 결혼을 안 해서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웃었다.

김현숙은 “영애가 삶의 일부가 됐다”고 털어놨다. 시즌이 끝날 때마다 작품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힘들단다. 영애 안에 삶을 쌓아둔 건 김현숙뿐만이 아니다. 그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골수팬들은 영애와 주변 인물들이 현실 어딘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시즌16 마지막 회에 총 출동한 원년 멤버를 보고 울컥했다는 반응도 많았다. “원년 멤버들을 보면서 자신의 예전 추억들을 떠올리나 봐요. 시청자들이 영애를 자기 인생, 내 이웃의 이야기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김현숙(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김현숙(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영애의 삶은 고되다. “이상과 현실이 따로 놀아 답답할 때도 있다”던 김현숙은 “그런데 이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시청자 중에는 “드라마가 너무 현실적이라 보면서 괴롭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김현숙은 “‘현실을 공감할 수 있게 다루는 것 또한 우리 드라마’라는 사명감이 있다”고 했다. 서로의 고단함에 공감하며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은 김현숙이 꼽은 ‘막돼먹은 영애씨’의 강점이다.

‘막돼먹은’ 세상에서 분투하는 사이에 영애의 꿈은 깎이고 닳는다. 하지만 김현숙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고 말한다. “큰 사무실에서 전문직 여성이 되고 싶어 했던” 영애가 녹록치 않은 현실을 겪어가면서 “지금이라도 잘 살아내자는 목표”를 갖게 된 것처럼, 김현숙 또한 먼 꿈을 좇기보다 현재에 충실해졌다.

“어렸을 땐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해보면 대~충 ‘각’이 나오잖아요. 미래가 불투명했을 땐 오히려 더 큰 꿈을 가졌는데, 현실에 부딪히고 깎이면서 ‘지금을 잘 살아내자’로 바뀌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 인생이 실패했다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살아낸 자신을 칭찬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 또한 성공의 또 다른 모습 아닐까요.”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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