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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혁의 의지 “고통 안에서도 즐길 수 있잖아요”

[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배우 장혁과 인터뷰는 그가 주변의 만류나 팬들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주말드라마 ‘돈꽃’을 선택해야 했던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인물이 사건을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고 이미숙 이순재 등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의 치열함이 그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데뷔 22년 차, 아직도 “매 순간이 두렵다”는 장혁은 하지만 오늘도 꾸역꾸역 앞을 향해 걸어간다.

Q. ‘돈꽃’이 호평 속에 막을 내렸습니다.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기존 주말드라마와 차별화를 이뤘다는 평이 지배적인데요.
장혁:
처음엔 ‘왜 주말드라마를 하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팬 분들도 실망감이 있는 뉘앙스로 말씀하셨고요. 미니시리즈와 주말드라마는 제작비 차이가 꽤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돈꽃’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거대한 스케일이 펼쳐질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람 사이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니까요. SBS ‘마이더스’(2011)를 할 당시 캐릭터가 사건에 이끌려간다는 인상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는데, ‘돈꽃’은 캐릭터가 사건을 끌고 간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필력도 좋았고, 이미숙 선배님이나 이순재 선생님과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영광이었습니다.

Q.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예상한 결과인가요.
장혁:
전혀 몰랐어요. 감독님과 KBS2 ‘운명처럼 널 사랑해’ B팀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으로 입봉을 하게 됐습니다. 감독님에겐 입봉작이고 저에게도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 기회이니 ‘(망하더라도) 즐겁게 망하자’고 얘기했습니다. 과정을 재밌게 하자는 거였죠.

Q. ‘즐겁게 망하자’는 건 결과에 초탈했다는 의미일까요?
장혁:
결과는 잘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본질을 흐리지 말자는 거죠. 결과에 겁먹지 말자는 의미였습니다.

Q. ‘돈꽃’을 통해 당신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장혁:
‘굳이 주말극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 속에서 들어온 작품입니다. 제가 ‘돈꽃’을 잘 해냈다면 제게는 ‘주말극도 살린 배우’라는 브랜드가 생길 테죠. 또한 주말극의 장르를 확대한 작품에 참여한 배우가 되는 거고요. 대중매체 안에서 활동하는 상업 배우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Q. 작품의 흥행 요인 중 하나가 이미숙과의 ‘케미스트리’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에 많은 시청자가 빨려 들어갔죠.
장혁:
제가 읽은 해석과 이미숙 선배님의 해석이 일치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복수의 대상으로 바라보기엔 부족함이 있다고 느낀 거죠. 20년에 가까운 시간차가 있었고 청아그룹 안에서 겪은 경험과 관계가 있을 테니까요. 중심이 되는 색깔에 알파를 더하다 보니 말씀하신 케미스트리가 나온 것 같습니다. 장승조 씨와 관계도 가면 갈수록 밀도감 있게 스파크가 나야 했어요. ‘대본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대로만 하면 똑딱이 밖에 안 되는데 똑딱이는 재미없다. 엇박이든 뭐든 가져와서 불똥을 튀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강필주가 단순히 복수심이나 증오에 점철된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애증에 가까웠어요.
장혁:
‘복수를 하고 나면?’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필주의 내일은 항상 복수였는데, 복수가 끝나면 뭘 하고 살지? 그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을 무너뜨려야 했지만, 복수에만 몰두하기에는 내 상실감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겁니다. 그 안에서 오는 갈등이 또 다른 관계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Q. 마지막 회에서 강필주가 장국환(이순재 분)의 또 다른 혼외자 장유천의 칼에 맞는 장면이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장혁:
개인적으로 영화 ‘게임의 법칙’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행복한 순간에 느닷없이 사고가 발생하는. 만약 칼을 맞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강필주는 자신의 목표를 이룬 뒤 떠나겠다고 했지만, 한 달 뒤에 다시 나타났을 것 같더군요. 장은천으로 살겠다고 한 강필주가 깔끔하게 새 인물이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을 수도 있을 테고요. ‘인물이 어떻게 끝났다’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건의 여지가 남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선악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어도 연민이 가는 캐릭터임은 분명합니다.
장혁:
그렇죠. 솔직한 삶은 아니니까.

Q. 당신은 어떤가요. 배우라는 직업이 솔직함을 숨기게 만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장혁:
솔직보다 충실하게 살자고 생각해요. 성실하게 살자고요. 이미숙 선배님이나 이순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연기는 3이고 자세는 7’이라더군요.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그건 3일뿐이고, 자세 7을 유지해야 나머지 3을 만들 수 있다고요. 공감합니다. 성실한 자세를 갖춰야 두 분 선배님처럼 40년, 60년 동안 연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Q. 강필주가 복수에 인생을 건 것처럼 당신에게도 반드시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 있었겠죠.
장혁:
지금도 있어요. 저는 배우로서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싶습니다. 제 안의 뜨거움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1996년 SBS ‘모델’ 대본 리딩을 하러 가던 새벽 공기가 저는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바로 어제처럼 생생해요. 이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똑같을 겁니다. 이제 현장에 가면 긴장감과 편안함이 공존해요. 누구와 어떤 상황에 마주할지 모른다는 긴장감, 세월 속에서 습득한 대처 능력이 주는 편안함. 두 가지가 계속 함께 가요.

Q. 뜨거움이 혹시 식었던 적은 없었나요.
장혁:
전혀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몰라서 뜨거웠던 적은 있어도 알아서 식은 적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흔들면서) 누군가는 이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남들 눈엔 막연하게 보이는데 이 안에는 뜨거움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점점 알아가겠죠. 내가 어떻게 해야 설득력을 갖는지. 그러면서 생기는 뜨거움이 또 있을 겁니다.

Q. 모든 배우들이 당신처럼 뜨거움을 계속 가져가진 않을 겁니다.
장혁:
한편으로는 겁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첫 작품이 끝난 뒤와 군대에 다녀온 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는 몇 년의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저는 의뢰를 받아서 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배우를 하기 위해 이쪽에 온 건 아니었거든요. 고3때까지 운동을 하다가 막연히 연극영화과에 가겠다며 처음 연기를 배우러 촬영장에 간 것이었습니다. 그 땐 배우가 뭔지도 모르고 (다시 커피를 돌리며) 이렇게 한 건데 그게 안 맞더군요. ‘아. 이게 맞춰야 하는 거구나. 원하는 게 있으면 설득해 관철시켜야 하는 거고 그들이 원하는 걸 내가 수용해야 하는 거구나.’ 그렇게 현장을 알아갔던 것 같아요.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배우 장혁(사진=싸이더스HQ)

Q. 그 때의 열아홉 소년이 지금의 장혁이 됐군요.
장혁: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거기서 멈추지 말아야 해요. 이걸 행복이라고는 말 못하겠고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안에는 짜증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춥고 허기지고 힘들고 어려운데 그걸 극복해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이죠. 중요한 건 그런 날을 피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뜨거움이 식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행복과 즐거움을 구분해서 말씀하시는 게 인상적입니다.
장혁:
행복은 긍정적이잖아요. 즐거움은 중간에 있는 느낌입니다. 즐거움은 ‘즐기는’ 거죠. 고통스러움 안에서도 내가 즐길 수는 있어요. 반면 행복은 결과론적인 것이고요. 저는 과정을 좋아해요. 행복한 결말 보다는 즐거운 과정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결과가 좋든 안 좋든 뭔가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활력 있잖아요.

Q. 당신에게는 ‘과정’ ‘극복’ ‘의지’ 같은 단어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런 당신에게도 두려운 게 있나요.
장혁:
매 순간 두렵죠. ‘이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노출이 되는 만큼 더욱 두렵습니다. 노출이 덜 됐을 땐 신선하게 봐주세요. 하지만 제가 가진 경우의 수를 다 보여준 뒤에는, 제가 가지지 않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고 개발해나가야 하죠. 욕먹는 연기를 피하거나 칭찬받는 연기만 해서는 안 돼요. 무조건 걸어가야 합니다. 뜨거움을 원동력 삼아서요.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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