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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승우 “무대가 끝나면 찾아오는 공허함, 고이 놔둔다”

[비즈엔터 이주희 기자]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특유의 단단함으로 관객에게 늘 묵직한 한 방을 남기는 배우 조승우, 그의 가장 최근 이력을 보면 대한민국 배우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족적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년 전 ‘내부자들’(2015)로 그해 각종 영화제의 작품상을 휩쓸었고, 이어 드라마 ‘비밀의 숲’(2017)으로는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오랜만에 사극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조승우가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을 선택한 이유는 ‘클래식한 매력’ 때문이다. 조승우는 ‘명당’의 장점을 “퓨전 요소 없이 정통적인 묵직함”,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인한 박진감”을 꼽았다. 그는 “세도가 권한이 세지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들의 악행이 도를 넘어서는데 그 모습들이 빠르게 전개된다. 영화의 중간까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그 뒤로 클라이맥스까지 가는 모습이 정교하게 잘 다듬어진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맡은 박재상은 허구 인물이지만 박재상을 중심으로 대립하는 김병기(김성균 분)와 흥선(지성 분), 그 외에 헌종(이원근 분) 등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잘 산 것 같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조승우가 연기한 천재 지관 박재상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욕망이 터져나가는 가운데, 박재상은 너그러운 얼굴로 화합을 추구한다. 보통 주인공들이 극의 변화를 일으키고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과 달리, ‘명당’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캐스팅으로 각자 맡은 분야를 확실하게 책임진다. 때문에 조승우는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도드라지게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라 정적인 인물로서 묵직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이 극에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한 신 한 신 힘을 주는데 노력하지만, 조승우는 박재상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힘을 안 주고 힘을 빼”려고 했다. 그는 “흥선 등이 휘몰아치는 폭풍 같다면 나는 잔잔하다. 호수 같다기보다 폭풍 정 중앙에 있는 것”이라고 캐릭터를 분석했다. 답답함은 없었냐는 질문에는 “박재상 캐릭터가 언뜻 보이기엔 정적이고 임팩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감독님이 극에는 여러 역할이 있고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하셨다. 감독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을 하고 난 다음에 나도 과하지 않는 선에서 표현하고자 했다”라며 박재상 역할을 맡은 이유를 털어놨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 아래 인터뷰에는 영화 ‘명당’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의 욕심껏 캐릭터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신을 만들 수도 있었으나, 조승우는 작품을 위해 욕심은 내지 않았다. 많은 배우들이 액션신을 선보이는 와중에 조승우는 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불타는 절에서의 액션신에서조차 칼을 쥐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적극적(?)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신경 써서 하나의 장면으로 담아낸 모습은 굉장히 현실적이라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조승우 역시 이 신을 언급한 후 “수정본에서 여러 가지 버전의 대본이 있었는데 박재상이 갑자기 검을 잘 쓰는 설정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내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거기서 내가 ‘그만!’ 하면서 칼을 집어 들면 웃기지 않겠나”라고 상상하며 웃었다.

강렬함을 선보이진 않지만 조승우는 극중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로 주인공의 무게를 더한다. ‘명당’은 여러 개의 에필로그를 통해 메시지(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를 강하게 넣었으며, 이 신에서는 조승우의 노인 분장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조승우는 “애초부터 시나리오에 있던 장면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장면 중에 하나”라며 “노인 분장에 대한 딜레마는 있었다. 선생님들을 캐스팅해서 더 멋있는 연기 보여주는 게 어떨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처음도 박재상이 ‘명당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고, 마지막도 ‘자네들 그 뜻대로 세상을 만들어보시게’라고 말 하는 게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좋았다. 워낙 작품을 고를 때도 메시지가 있는 작품만 하고 싶어 해서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나의 정적인 캐릭터의 보상으로도 느껴졌다”라며 뿌듯해했다.

‘명당’을 연출한 박희곤 감독은 과거 조승우와 ‘퍼펙트게임’(2011)으로 호흡을 맞춘 바. ‘명당’을 통해 오랜만에 재회를 하게 됐다. 조승우는 당시에 비해 최근 감독님이 “현장의 리더로서 능숙함, 사람 기분 좋아지게 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극찬했다. 조승우는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로 박희곤 감독을 꼽으면서 “촬영 때 세팅하느라 시간이 지연되었는데,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시더라. 보니까 부서진 라면을 가져와 모두에게 한 입씩 먹여주려고 돌아다니는 거다. 따뜻하고 귀여우신 분이다”라며 촬영 비하인드를 털어놓으며 웃었다.

명당’ 메이킹 인터뷰를 촬영하면서 박희곤 감독이 “감독에게 ‘명당’은?”이란 질문을 받고 펑펑 울기도 했다고. 조승우는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영화감독이라는 무게감과 중압감이 엄청나지 않나. 그게 진심처럼 느껴져서 이 영화가 정말 의미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라며 영화와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그렇다면 조승우 역시 박희곤 감독처럼 작품을 끝내고 운 적이 있을까.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고, 누구보다 화려한 캐릭터를 남겼지만 조승우 역시 공허함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조승우는 “주로 뮤지컬 끝내고 운다”며 “무대가 끝나면 공허함이 되게 많이 찾아온다. 마지막 공연 끝나고 메이크업 지울 때가 가장 그렇다. 슬픈 게 아니라 공허하다. 영화는 그래도 촬영 마친 후에도 몇 개월 동안 후반 작업도 하고 개봉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나마 괜찮은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공허함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조승우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면 그냥 한 켠에 고이 놔둔다. 무대는 또 다시 할 수 있으니까 남겨둘 수 있다. 대신 영화나 드라마 캐릭터는 빨리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다. ’저리가!‘ 한다.(웃음) 쉬는 편이 아니라 여러 캐릭터를 만날 기회가 있는데, 어차피 새 캐릭터를 만나려면 전 캐릭터를 지워야 한다. 외국 배우들은 한 작품이 끝나면 정신과도 간다는데 나는 그래도 괜찮은 거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조승우의 말처럼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캐릭터에 몰입해야 한다. 최근 JTBC 드라마 ‘라이프’를 마무리지음과 동시에 오는 11월부터 공연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연습에 들어가기로 한 것. 조승우는 “추석 지나고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하게 되는데, 티켓은 이미 오픈을 했지 않나. 기대는 많고 항상 부담스럽고 무섭다. 뮤지컬 안 한지 2년이 넘었는데, 군대 다녀온 거나 마찬가지다. 무대에서 잘 할 수 있게 빨리 능력치를 갖춰놔야 할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10년 이상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이주희 기자 jhymay@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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