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윤준필 기자]
"늘 새로워. 짜릿해. 잘 생긴 게 최고야!"
배우 정우성이 만들어 낸 밈(인터넷 유행) 중 하나다. TV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외모를 향한 칭찬을 특유의 넉살로 받아친 말이다. 그런데 정우성은 잘생긴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배우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정우성은 자신의 외모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30대가 지나면서 많이 희석됐다고 털어놨다. 연기에 관한 그의 철학은 뚜렷했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그의 애정은 뜨거웠다.
특히 '청담부부' 파트너이자, 배우 겸 감독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정재를 향한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영화 연출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정재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된 이후 도전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강조했다.
Q. 영화를 향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정우성 : 매우 만족한다. 특히 동료 배우들이 영화 재미있게 봤다, 좋은 자극을 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것이 기쁘다. 영화 본편에 대한 칭찬도 좋지만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관해 좋은 이야기들이 많아 기분이 좋다.
Q. 이정재의 러브콜을 네 번이나 거절했다고 하던데?
정우성 : 일 년에 한 번씩 거절했다. (웃음) 시나리오의 완성도 때문에 거절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제작을 해보고 싶다는 말에 동료로서 응원했다. 초고를 가져와 시나리오로 잘 발전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좋은 감독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 이정재 감독이 시나리오를 계속해서 수정했다. 나중에는 '내가 시나리오를 이렇게 오랫동안 만졌으니 연출도 내가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더라. 그때 나도 '보호자' 연출과 출연을 동시에 하고 있었을 때였다.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알기 때문에 웃었다.
Q. 그때 당시 어떻게 대답했는가?
정우성 : 영화에 투자할 때, 배우로 출연할 때 투입해야 하는 에너지가 다르다. 특히 출연까지 한다면 더더욱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하실 수 있죠'라고만 얘기했다.
내 의견과 별개로 이정재 감독 본인이 본인에게 확신이 서는지 그걸 물어보는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라는 든든한 프로듀서가 공동 제작으로 참여하면서 이정재 감독이 확신이 선 것 같았다.
Q. 23년 만에 같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정우성 :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정재 감독에게 영화 감독 한 가지 도전도 버겁고, 대중의 평가도 굉장히 날카로울 것이라면서 여기에 우리가 같이 출연한다면 날 선 평가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바구니에 달걀 2개를 같이 넣었다가 깨지는 것보단 가벼운 마음으로 감독에 도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결정했다. 이정재 감독이 박평호와 김정도 중 캐릭터를 선택하라고 했다던데?
정우성 : '헌트'의 초고는 '박평호' 원톱 주연의 이야기였다. 이정재 감독이 김정도라는 인물을 투입해 투톱 영화로 발전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박평호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도는 배우 이정재가 더 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정도를 선택한 것이다.
김정도나 박평호나 '헌트'에선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다. 상대와 마주 섰을 때 더 존재감이 생기고, 그때의 기운이 영화의 톤 앤 매너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연기한 사람이 누구인가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액션이 상당히 많은 영화였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
정우성 : 작년과 올해의 내가 다르므로 몹시 힘들었다. (웃음) 무기를 사용하는 액션은 체력 소모가 크지 않은데 주먹 액션이 굉장히 힘들었다. 육체적인 피로보단 정서적인 피로감이 더 컸다. '헌트'라는 영화가 이정재 감독이나 내게 큰 도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액션신 하나에서 오는 피로감보단 작업 전반에서 오는 부담감의 무게가 무거웠다. 그 무게를 끝까지 느끼면서 촬영에 임하려고 노력했다.
Q. 감독 이정재에게 특별히 했던 조언이 있었나?
정우성 : 경험과 연륜은 각자의 것이고 이정재를 오랫동안 지켜봤고,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말할 건 없었다. 나 역시 '보호자'로 연출과 동시에 출연을 하는 중이었고, 그런 작업의 고단함을 알기 때문에 조언보다는 지치지 않기를 묵묵히 응원했다. 영화 감독에게는 감독은 필연적으로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온다. 그 모든 걸 이겨내고 '헌트'라는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고 또 짠했다.
Q. 완성된 '헌트'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정우성 : 앞서 한 바구니 안에 이정재와 정우성이란 달걀을 동시에 넣는 것과 같다고 얘기했는데, 이게 깨질지 안 깨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만큼은 이 영화 안에 다 담겨있다는 걸 확인했다. 뿌듯했다.
Q. 본인이 연출한 영화 '보호자'가 '헌트'보다 조금 더 일찍 준비했지만, 세상에는 '헌트'가 먼저 나오게 됐다.
정우성 : '헌트'라는 영화는 제작부터 개봉까지 순조로운 편이었다. 모든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헌트'라는 작품의 운명인 것이다. 그 운명을 좋다 나쁘다 얘기할 수는 없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촬영이 일찍 끝났지만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지연되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다행히 9월에 열리는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헌트'와 '보호자'를 초청해줘서 내가 놀고 있지 않았다는 걸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다행이다. (웃음)
Q. 이정재와의 세 번째 영화를 기대해도 될까?
정우성 : 물론이다. '헌트' 같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또 같이할 것이다. 다만 시차를 줄여야 한다. 이번처럼 23년을 기다리면 다음에는 지팡이 액션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하.
Q. 정우성은 '잘 생긴 배우'의 대명사다. 대중들이 자신의 연기보단 외모를 먼저 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지 않은지?
정우성 : 내가 30대를 지나면서부터 대중의 시선은 희석됐다고 생각한다. 외모는 20대 정우성의 첫 번째 이미지였다. 이미지라는 게 무서운 것이 각인된다는 것인데, 어느 순간 그 각인된 이미지를 내가 지키려고 하고 그 이미지 안에 머물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론 이미지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와 맞지 않는 역할을 자꾸 한다는 질책도 있었다. 그 모든 과정들이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희석됐다고 생각한다.
Q. 정우성과 이정재처럼 감독을 꿈꾸는 배우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우성 : 내게 영화는 행운이고 축복이다. 일을 함으로써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그 일을 즐길 수 있는 것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연출에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다만 얼마나 준비가 됐는지 중요하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사적인 마음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공적인 행위로 이어질 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