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홍선화 기자]

13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억만금을 준대도 안 바꿀 옛집의 소중함을 알아본다.
◆아버지의 유산, 93년 된 적산가옥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인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풍요로운 만큼 수탈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고장이다. 한때 정읍에서도 중심가였던 고부 읍내에 외벽이 전부 삼나무 판자로 된 낯선 형태의 가옥 한 채가 있다. 오늘 찾아간 첫 번째 집은 바로 ‘적산가옥’. 적산가옥이란 ‘적의 재산’이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거주하다가 해방 후 두고 간 집을 뜻한다.
1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적산가옥이 고향집이라는 은기철 씨. 은퇴 후 낡은 적산가옥을 고쳐 아내와 함께 내려왔다는데... 이 집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1932년 일본인 금융조합장 사택으로 지어졌던 집. 해방 후 한국인 농협 상무가 살던 이 집을 1976년 당시 양조장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버셨던 아버지가 사셨단다. 초가집이 많던 그 시절, 적산가옥은 고급주택으로 통했고 동네 주민들에게 ‘부잣집 아들’ 소리를 들으며 등교를 하던 학창 시절을 기철 씨는 뿌듯한 추억으로 되새긴다.
남편 기철 씨뿐 아니라 아내 조명숙 씨에게도 이 집은 각별하다. 은씨 집안 가풍을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신혼 시절 잠시 시댁살이를 했던 명숙 씨. 막내며느리에게 한없이 따뜻했던 시부모님과의 애틋한 추억이 집안 구석구석 가득하단다. 낡은 적산가옥의 추억은 자손들에게도 대물림되고 있다. 신혼시절, 첫 딸아이가 이 집에서 생겼고 부부의 첫 손자도 이 집에서 잉태되었다.
설거지와 빨래를 하던 옛 우물부터 시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오신 장롱까지 그대로 보존한 것은 물론, 마루에 보일러를 깔기 위해 뜯어냈던 나무판자 한 장까지도 버리지 않고 귀히 여겼다. 그 마룻바닥의 판자는 과연 어떻게 활용했을까? 부모님의 숨결이 깃든 낡은 적산가옥을 소중히 여긴 부부의 마음이, 허물어지기 직전의 집을 어떻게 되살렸는지 탐구해 보자.

남도의 명산 월출산이 푸근하게 품어주는 고장, 전라남도 영암의 시골 마을에 디귿자 한옥 한 채가 있다. 남부지방에는 통풍이 잘되는 일자형 한옥이 대부분인데, 중부지방에나 있는 디귿자 한옥이 왜 이곳 전라남도 영암에 있을까?
이 마을에서도 유일한 디귿자 한옥에 남편 홍재열 씨와 아내 안은옥 씨가 산다. 폐기와 1000여 장을 손수 쌓아 만든 예술적인 담장이 인상적인 집. 부부는 목포의 아파트를 팔고 6개월 전 이 옛집에 정착했다.
은퇴하면 고향마을 시골집에서 자연인처럼 사는 것이 꿈이었다는 남편 재열 씨. 그런데 그가 어릴 적 살던 강진 고향집은 이미 누군가에게 팔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다. 대안으로 고향집과 닮은 집을 찾아서 고쳐 살리라 마음먹고 2년간 전라도 전역을 뒤졌다고. 무려 100여 채의 한옥을 보러 다닌 끝에 영암에서 고향집과 꼭 닮은 이 집을 발견, 첫눈에 반해 그날로 계약을 하게 되었단다. 상량문에 적힌 선명한 ‘임오년 정월’. 이 집은 설마 임오군란이 났던 그 해에 지어진 집일까?
아내 은옥 씨 역시 보성 시골마을 출신이라 어릴 적 살았던 옛 한옥의 정취를 잊지 못해, 집을 생활에 편리하게 고치면서도 마당으로 열린 툇마루부터 비뚤어진 한지문, 낡은 살강 문짝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지켜냈다. 단열에 좀 취약할지라도 한옥의 분위기를 오롯이 지키고 싶었다고. 심지어 전 주인이 쓰던 찬장과 사기그릇까지도 버리지 않고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는데... 그렇게까지 옛것을 고집스레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는 일자형이었다는 이 한옥이 고치는 과정에서 디귿자가 되었다는데, 옛 분위기를 지킨다면서 굳이 디귿자로 고치게 된 비밀은 또 무엇일까? 수수께끼의 영암 디귿자 한옥과 그 옛집에서 남은 생을 보낼 거라는 부부의 사연을 탐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