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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정진우 영화감독 별세…향년 88세

대종상 9관왕·베네치아 초청…한국 영화계 큰 별

▲故 정진우 감독(사진=부산국제영화제)
▲故 정진우 감독(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정진우 영화감독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8일 영화계와 유족에 따르면 정진우 감독은 이날 오후 8시께 서울 강남구 소재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故 정진우 감독은 약 두 달 전 사고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코로나19 감염 여파로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임종 직전에는 평생의 벗인 임권택 감독과 동아수출공사 이우석 회장 등이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1938년생인 고인은 24세였던 1962년 영화 '외아들'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배신'(1963) 등을 연출하며 1960~80년대 한국 영화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1980년 작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는 제1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9개 부문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화제작으로 등극했다. 이어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로 대종상 6관왕을 차지했고, '자녀목'(1984)을 통해 대종상 감독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에 알린 선구자이기도 했다. 1972년 '섬개구리만세'로 베를린영화제 본선 경쟁 부문에 진출했으며, '자녀목'은 제4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 특별 초청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세계 10대 감독에 선정됐고, 1993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생전 고인이 연출한 작품은 총 54편에 달하며, 직접 설립한 우진필름을 통해 135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마지막 연출작은 1995년 개봉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고인은 창작 활동 외에도 영화계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1967년 한국영화감독협회 창립을 주도했고, 1984년에는 영화인들의 권익을 위한 영화복지재단을 설립했다. 또한 1989년 서울 강남에 복합상영관 씨네하우스를 세워 상영 환경 개선에도 앞장섰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맹선미 기자 msm@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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