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이정은에게 '경주기행'은 옥실이라는 인물을 완성하는 과정인 동시에 세 딸을 연기한 배우들과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은 현장이었다.
장주 역의 공효진은 현장에서도 든든한 존재였다. 이정은은 신이 끝날 때마다 다가와 자신을 챙겨줬다며 "진짜 오른팔 같았다"고 했다. 박소담에게서는 영주와 닮은 논리적이고 세심한 면을 발견했고, 이연의 연기를 통해서는 동주가 엄마의 사랑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새롭게 깨달았다.
특히 동주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이정은에게도 강하게 남았다.
"동주가 호두과자를 먹으면서 종달새처럼 오는데 뺨을 때리는 게 미안해서 한 번에 가고 싶었어요. NG 없이 두 번 정도 때렸어요. 동주가 말은 안 했지만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연기를 하는 순간 알았어요."

세 배우와 호흡하며 이정은 역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무엇보다 딸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영화의 중심은 엄마지만 딸들의 분량이 사실 엄마보다 작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엄청난 배우들이 그걸 너무 잘 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가장 좋아요. 정말 좋은 딸들을 얻은 것 같아요."
이정은이 '경주기행'을 선택한 데에는 김미조 감독에 대한 신뢰도 컸다. 전작 '갈매기'를 통해 감독의 가능성을 먼저 확인했고, 이후 '경주기행'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확신을 얻었다.
"감독님이 미쳐 있는 것 같았어요. 남성들이 나오는 복수극에서 볼 법한 이야기를 가족 전체가 달려드는 방식으로 풀었잖아요. 조직폭력배도 아니고, 시작부터 허를 찌르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감독님 색채가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정은에게 '경주기행'은 배우로서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옥실은 자신이 가진 도덕적 기준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인물이었고, 그만큼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게 만든 캐릭터였다. 그는 영화 속 선택이 사적 제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사적 제재에 동의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에요. 그들의 아픔이 전시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크다는 거예요. 배우가 연기하면서 갈등하는 시간이 있는데, 선택할 때도 명쾌하게 움켜지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제가 가진 도덕적 기준에 지배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넘어야 하는 산이라고 느꼈어요."
그 갈등은 앞으로 더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
"과감하게 접근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에요. 앞으로 다양한 엄마들의 군상이나 이모, 고모, 선생님, 선배 같은 인물들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촬영이 끝난 지금도 옥실은 이정은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남아 있다.
"배우의 연기는 끝났지만 내가 그런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장주 같기도 하고 영주 같기도 하고 동주 같기도 한데, 피해를 입은 경주 같기도 해요.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을 완성했지만 영원히 숙제로 남은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