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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만난 사람] ‘아가씨’ 김태리, 신데렐라에서 배우로

[비즈엔터 칸(프랑스)=정시우 기자]

▲'아가씨'에서 하녀 숙희를 연기한 김태리(사진=CJ엔테테인먼트 제공)
▲'아가씨'에서 하녀 숙희를 연기한 김태리(사진=CJ엔테테인먼트 제공)

사람들은 김태리를 신데렐라라 칭한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의 선택을 받은 신인배우. 게다가 박찬욱 감독과 함께 칸국제영화제까지 입성했다. 많은 여우들이 꿈꾸는 자리를 첫 데뷔작에서 이뤘으니, ‘주목할 만한 데뷔’란 이럴 때 쓰는 말일게다.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탑승할 신예 여배우가 누가 될지, 충무로의 눈과 귀가 쏠렸다. 이러한 관심에 기름을 부은 것은 ‘아가씨’ 측이 내 건 ‘신인 여배우 공고’ 내용이었다. ‘노출 연기가 불가능한 분들은 지원할 수 없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노출 최고수위이며 이에 대한 협의 불가능’이라는 공지로 영화의 높은 수위를 짐작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예들이 ‘아가씨’에 도전했다. 항간에는 전국 8도의 신인 여배우들이 모두 ‘아가씨’ 오디션 장으로 달려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수위 높은 노출을 감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예들이 ‘아가씨’에 탑승하려 한 이유는 아마도 박찬욱이라는 감독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사실, 여배우들이 노출을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은 ‘명분’이다. ‘올드보이’ 강혜정을 발굴하고 ‘박쥐’ 김옥빈에게 배우라는 날개를 달아 준 박찬욱 감독이라면 배우들에게 명분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배우로서 자신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베일을 벗은 ‘아가씨’ 속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상영 내내 증명한다. ‘아가씨’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캐릭터는 귀족 상속녀 히데코(김민희 분)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과 공모하는 소매치기 출신 하녀 숙희. 욕망과 순수, 진실과 거짓, 사랑과 집착 등 복잡다단한 감정을 오가는 숙희라는 인물을 이 신인 여배우는 능숙하게 소화해낸다. 베테랑 선배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이물감 없이 섞이는 에너지도 상당하다. 김태리라는 배우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진=CJ엔테테인먼트 제공)
(사진=CJ엔테테인먼트 제공)

Q. 첫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건 어떤 기분일까.
김태리: (웃음) 솔직히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배우로서 더 많은 작품을 경험하고 다시 이 무대에 선다면 정말 기쁘고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레드카펫을 걸었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얼떨떨했다. 아마 긴장이 표정에서 다 드러났을 거다.

Q. 전혀. 오히려 선배인 김민희 보다 더 긴장하지 않던데.
김태리: (손사래치며) 아니다. 나에겐 너무 미지의 세계라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웃음)

Q. 프랑스어 제목은 한국에서처럼 ‘아가씨’(Mademoiselle)지만, 미국 제목은 ‘하녀’(The Handmaiden)다. 한국 배우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해외 관객들의 경우, 당신을 가장 주목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당신의 연기를 호평하는 외신 반응도 있었다.
김태리: 나도 영어제목을 보고 놀랐다. 왜 ‘핸드메이드’일까 했는데, 완성본을 보고 이해했다. 누구 한명의 이야기 흐름을 따라간다기보다, 많은 인물의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져서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 욕심? 어우~ 상상조차 안 하고 있다.(웃음)

Q. ‘아가씨’ 완성본을 칸에서 처음 본 걸로 안다. 촬영하면서 상상했던 것과 비교해서 어떻게 나온 것 같나.
김태리:내 연기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기는 힘든 것 같다. 어찌나 마음 졸이며 봤는지.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영상미가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벌판 씬을 기대됐는데, 영화로 보니까 감동이 100배로 다가왔다. 경기도 화성에서 찍은 씬인데, 석양이 지는 시간에 촬영을 해서 너무 예뻤던 기억이 난다.

Q. 시나리오를 보고, 하녀 숙희가 어떤 인물이라고 느꼈나.
김태리: 촬영이 다가올수록 많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캐릭터를 100프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 걱정이 많았다. 그때 하정우 선배님이 “인물을 100% 완성해서 영화를 찍는 건 말이 안 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 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모든 걸 알고 연기할 수 있겠냐”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실제로 찍을 때는 몰랐는데 찍고 나서 ‘아, 숙희가 이런 감정이었구나’를 느낀 적이 많았다.

Q. 하녀 캐스팅에 굉장히 공을 들인 영화다. 박찬욱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건 없었나.
김태리: 극중 숙희는 소매치기라는 입장과 하녀라는 입장에 놓여있다. 둘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는 게 나로서는 시급했다. ‘이 장면은 지금 어느 입장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숙희는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부분을 생각하는데 중점을 뒀다. 감독님은 오히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감독님이 평소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안 하셨는데, 놀랍게도 내가 막혀 있을 때 그 부분을 정확하게 콕 집어서 해답을 주셨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Q. 동성애 정사 수위가 생각보다 강하다. 하지만 단순히 자극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가씨와 하녀의 감정을 묶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껴졌다.
김태리: 말씀하신대로 그 장면이 중요했던 것은, 드라마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만지면서 폭발하는 감정들이 있지 않나. 많은 분들이 살면서 느끼셨을 것 같은데, 그 안에서 파생되는 설득력이랄까, 흡입력이 상당하다고 느꼈다. 수위에 대해서는 글쎄.(웃음) 그건 내가 생각할 부분이 아닌 것 같다. 관객 분들이 판단할 몫이다.

Q. 한국 대중문화에서 금기시되는 ‘동성애’ 코드를 전면에서 다루고 있다.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다.
김태리: 어떤 장면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것은 충분히 함의를 갖고 출발했다. (김)민희 언니-감독님과 소통을 많이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장면을 표현할 때 숙희가 갖고 있는 세밀한 감정이었다. 동성애 코드는 우리 영화 안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고, 그게 없으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Q. ‘아가씨’에서 하녀는 상대를 속여야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상대의 매력에 빠져 감정의 딜레마를 겪는다. 당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나. 목표했던 의도와 다르게 풀린 경험.
김태리: 늘 그런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숙희도 하녀로서 그랬을 것 같은데 처음 겪는 일들 앞에서는 나를 그 상황에 맞추고 적응시키는, 착오의 시간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적응력이 뛰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순발력이 부족한 편이거든. 경험의 차이도 있을 거다.

Q.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김태리: 대학교 때 동아리를 통해 처음 연극을 접했다. 재미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아, 배우라는 길을 걸어야 겠다’는 확신을 했다. 이후 지금까지 달려왔다.

Q. 1990년 생이다. 스물일곱에 상업영화에 데뷔하는 셈인데,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나.
김태리: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의 장단점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시작하는 것보다 ‘매리트’가 있다고 본다. 10대 때보다는 내 나름의 생각과 소신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것이 선배님들이나, 감독님과 만나는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Q. 1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가씨’에 캐스팅됐다.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 반응이 상당했다.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나.
김태리: 그때는 영화를 찍기 전이었고 영화를 지금처럼 겪은 게 아니라서, 모든 것들이 벅찼다. 마냥 기쁘다기보다는 주어진 숙제들을 해결하는 게 내겐 시급했다. 촬영이 끝난 지금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다만 ‘아가씨’에 캐스팅 된 것도 칸에 온 것도, 지나고 나면 이 순간들이 더 벅차게 느껴질 것이라는 확신은 든다. 많은 관심을 주시는 만큼 노력하려고 한다. 예쁘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칸(프랑스)=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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