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영화 ‘아가씨’는 공간과 미술이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하며 배우들과 ‘밀당’을 즐기는 영화다. 그중 친일파 코우즈키(조진웅)의 서재가 인물들과 일으키는 에너지는 단연 압권. 성에 대한 변태적 욕망과 사대주의적 허영이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폭발음을 낸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손끝에서 탄생한 ‘아가씨’의 미학적 성취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벌칸상(The Vulcan Award of the Technical Artist) 수상으로 응답받았다. 벌칸상은 미술, 음향, 촬영 등 칸영화제 초청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의 아티스트를 선정해 주는 상. 한국인 최초의 수상이다. 팀이 아닌 미술감독 개인에게 이 상을 주어진 것도 처음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영화 미술의 세계를 열어 준 것은 송일곤 감독의 ‘꽃섬’(01). 이후 그녀는 ‘피도 눈물도 없이’(02)를 통해 상업영화에 본격적으로 안착했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는 2003년은 류성희 미술감독에게도 기념비적인 해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모두 이름을 올리며, 뜨거운 환호의 한복판을 통과했다. 이후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05)과 봉준호 감독의 ‘괴물’(06) 등 창조적 기운이 넘쳤던 작품들 엔딩 크레딧에서 류성희라는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러니까, 류성희 미술감독은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일군 감독들의 오랜 파트너이자, 조력자이자, 든든한 친구다.
Q. 벌칸상 수상, 축하한다.
류성희: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지인들이 기사를 보고 전화해줘서 알았다.(웃음) 벌칸상이 폐막식 이후 발표되는 상이라, 배급사 쪽에서도 뒤늦게 알았던 것 같다. 소식을 듣고 “말도 안 돼. 인정할 수 없어!” 그랬다.(웃음) 어릴 때부터 동경해 왔던 상이다. 장 뤽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1062) ‘경멸’(1963)을 찍었던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 ‘화양연화’(2000)의 미술감독 장숙평 등 유명 테크니션들이 받았던 상이다. 그런 분들을 보며 스태프가 되고자 꿈을 꿨던 나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Q. 이번 수상은, 많은 한국 스태프들에게 좋은 자극이었을 것 같다.
류성희: 안 그래도, 왕래가 많지 않았던 스태프들에게도 축하전화를 많이 받았다. 의미 있는 게, 다들 한국영화계의 경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저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받을 수 있는 건가요?”하면서 자기 일처럼 좋아해줬다. 이번 수상은 내가 대표로 받았을 뿐, 의상-촬영-분장-조명이 모두 함께 받은 상이라고 생각한다.
Q. ‘아가씨’ 미술에 대한 외신 평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점이 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나.
류성희: 박찬욱 감독님은 “지금까지의 경력에 대한 인정이 아닐까”라고 말씀하셨다. 박찬욱 감독님의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외에도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 ‘마더’, 김지운 감독님의 ‘달콤한 인생’ 등 칸에 진출한 여러 작품에 참여해왔다. 그래서 박 감독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Q. ‘아가씨’는 실내 분량이 상당히 많다. 공간자체가 또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하기에, 미술감독에겐 도전정신을 일으키는 작품이지 않았을까 싶다.
류성희: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조금 무서웠다. ‘와, 이건 정말 신중해야겠다’ 싶었다. ‘국제시장’ ‘변호인’에서 시대극을 경험했고, 전작인 ‘암살’에서도 30년대를 다루긴 했다. 하지만 ‘아가씨’의 경우 시대고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친일파의 공간, 혹은 친일의 분위기를 공간에 내면화해야 했기에 고민이 많았다. 겁이 나는 동시에 미학적으로는 재미있을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서재다. 다분히 변태적 욕망이 들끓는 남성들의 은밀한 공간. 여성 미술감독으로서 그 공간을 해석하는데, 다른 지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류성희: 맞다. 신중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 공간을 시대적으로 어떻게 구현할까를 두고 박 감독님과 고민을 많이 했다. 코우즈키의 도착적인 성(性)적 욕망이 들어선 공간이기에 단순히 고풍스러운 것으로는 부족했다. 고민 끝에 ‘서재 내부에 일본식 정원’을 들이는 느낌을 떠올렸다.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이기에 오히려 품위 있게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히데코(김민희 분)의 의상과 분장, 춘화의 그림 빼고는 색깔도 일부러 배제했다. 일본 미술은 장식성이 특징이기에 한번 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가게 된다. 탐미의 극단을 표현하는 춘화가 등장하니, 나머지 부분은 의식적으로 컨트롤했다.
Q. 레퍼런스 삼은 영화가 있나.
류성희: ‘오만과 편견’ ‘엠마’ 등 제인 오스틴 류의 영국영화를 많이 봤다. 그로테스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공간이기에, 화면은 오히려 품위 있었으면 했다.
Q. 박찬욱 감독과는 ‘올드보이’ 때 만나, ‘친절한 금자씨’ ‘스토커’만 제외하고 쭉 함께해오고 있다. 박 감독님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건 좀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거라고 들었다.(웃음)
류성희: (웃음) 박 감독님이 도전을 좋아하신다. 익숙하거나 전형적인 것은 멀리 하고. 미술 하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감사하지. 모두가 그럴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이 그렇지 않거든. 특히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에서 도전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일본은 판타지ㆍSF 장르가 왕성하게 제작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리얼리즘 전통이 강하다. 그랬을 때 박찬욱 감독님 영화는 희귀한 면이 있다. 표현에 있어 용인되는 것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박찬욱 영화는 이상하다’는 이미지도 있지만, 반대로 그래서 한국영화에서 더 중요한 지점이 있다고 본다.
Q.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했던 건, ‘박쥐’가 대표적이었다.
류성희: 맞다. 우리나라에서 뱀파이어장르라니. 낯선 것들이 충돌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즐기신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를 때가 많다. 미술도 재미있게 나오고.
Q. ‘피도 눈물도 없이’의 투견장, ‘올드보이’의 감금방과 펜트하우스, ‘달콤한 인생’의 스카이라운지, ‘살인의 추억’의 지하취조실 등 류성희 미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이제 ‘아가씨’의 공간이 추가된 셈인데, 작업에 있어 특히나 어려웠던 공간은 어디인가.
류성희: 매번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 언급한 영화들은 표현주의적 느낌이 강해서 인상이 더 진하게 남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국제시장’은 ‘국제시장’대로 어려웠고, ‘암살’과 ‘변호인’도 진짜 어려웠다. 그리고 ‘고지전’. 하… 산이 정말.(웃음) 할리우드의 경우 소품 창고가 연대별로 있다. 커튼, 조명 등 각 연대별로 소품이 보관돼 있어서 꺼내 쓰면 되는데 우리는 매 작품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서 시대극 퀄리티를 낸다는 게, 예상보다 힘든 지점이 크다. 통조림 하나도 미술팀이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한다. 손이 안 가는 게 없다.
Q. 디테일,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겠다.
류성희: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웃음) 못 견디고 나가는 사람도 많다.
Q. 굵직한 작품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미술감독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이 있다면.
류성희: ‘피도 눈물도 없이’를 시작으로 계속 달리다가 ‘박쥐’까지 하고 한 타임 쉬었다. 표현주의적인 작품도 좋지만, 다른 감독님들과도 해보고 싶었다. 로케이션이 두드러지는 영화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박쥐’ 후 1년 가까이 쉬었다. 쉬고 난 후 들어간 게 김태용 감독님의 ‘만추’다. 시애틀에서 촬영된 ‘만추’는 로케이션 매니저 역할까지 했던 작품이다. 또 다른 영화미술의 방식이어서 굉장히 좋았다. ‘만추’를 하면서 힐링이 많이 됐다. 그 다음 영화가 장훈 감독의 ‘고지전’. ‘고지전’ 역시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고생한 영화다. 그때는 그런 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고지전’을 시작으로 ‘변호인’ ‘국제시장’ ‘암살’ 등 계속 시대극을 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자면, 전환점은 ‘만추’ 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Q. 일을 시작하고 예상했던 것과 달랐던 것도 많았을 텐데.
류성희: 늘 그렇다. 영화는 경험이 중요하다. 예상대로 되는 게 많지 않으니까. ‘아가씨’의 경우 건축적으로도 멋있어야 해서 건축공부를 많이 했다. 건축하시는 분들도 7년은 배우는데, 우린 단기간에 습득해서 간 거다. 춘화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다. 별의 별 춘화가 다 있더라. 처음에는 남녀의 애정 행각이 적나라한 그림이 많아서 미술팀끼리 서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중에는 “야, 이 자세가 말이야~” 심드렁하게 이야기하고 그랬다.(웃음)
Q. 전공이 도예다. 심지어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1995년에 갑자기 미국 AFI(미국영화연구소)로 유학을 갔다.
류성희: 학창시절에 내가 조선 도자기를 완전히 빠져있었다. 자유분방한 감각으로 빚은 비정형의 세계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도예는 공간의 예술이다. 내가 욕망한 것은 움직이는 이미지와 시간성이었기에 목마름이 있었다. 마침 친구가 AFI 연출과를 가는 게 꿈이라며 팜플렛을 보여줬다. 그걸 보고, 1주일간 잠도 안자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보냈다. 그게 덜컥 합격을 한 거다.
Q. 영화는 운명이었던 걸까.
류성희: 오래전부터 ‘영화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연한 희망이었다. 그때는 미술감독이라는 직업적 개념도 제대로 없었으니까. 뒤돌아보면 나의 20대는 모든 것이 영화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건 이래서 아닌 것 같아’ ‘결국 나는 이걸 해야 해’ 하면서 영화로 자연스럽게 온 경우다. 28살에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해서 34살에 입봉(송일곤 감독의 ‘꽃섬’이 입봉작)을 했으니 늦은 편인데, 그래서 오히려 후회가 없다. 이것저것 정말 많이 했거든. 한때는 록 뮤지션을 하려고도 했다. 우리 때 홍대 가요제가 유명했는데, 듀엣으로 나가서 3등도 했었다.(웃음)
Q. 의외다. 록 스피릿이 충만하다니.(웃음) 유학 생활은 어땠나.
류성희: 너무 힘들었다. 원래는 경험자를 뽑는 학교였다. 나는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고집까지도 셌다. 거기에서 많이 꺾였지.(웃음) 그런데 AFI를 안 다녔으면 한국에서 적응을 못했을 거다. AFI가 콜라보레이션을 굉장히 중요시 했다. 그 곳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배운 셈이다. 나 혼자 오버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고.
Q.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류승완 등 이젠 한국영화의 심장이 된 감독들의 작품에 모두 참여했다. 그들의 성장에 류성희라는 이름이 공통점으로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감독 개성에 따른 대응법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 같다.
류성희: 봉준호 감독님은 당신이 원하는 그림을 구체적으로 가지고 계신다. 봉준호 스타일이라는 게 그래서 존재할 테고. 감독님이 원하는 감성을 정확히 구현해 내는 과정이기에, 탐사 연구가의 느낌으로 작업하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님은 어떤 구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가는 편이 아니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 마치 앨리스 굴을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류승완 감독님은 신난다. 미술에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스타일은 아니신데, 싫은 것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감독님이 원하는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면, 작업이 상당히 재미있다. 김지운 감독님은 특유의 세련된 감성이 있으시다. 내가 ‘달콤한 인생’을 굉장히 좋아한다. ‘올드보이’가 뜨거운 에너지로 계속 가야 하는 영화였다면, 바로 이후에 맡은 ‘달콤한 인생’은 온도를 툭 떨어뜨려서 가야 하는 영화였다. 그 대비가 흥미로웠다. 영화마다 톤 앤 매너가 있고, 감독님들마다 온도가 다른데, 그걸 포착해 내는 재미가 있다.
Q. 문득 류성희 미술이 홍상수 감독을 만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류성희: 하하. 홍 감독님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지만, 거기에서 미술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홍 감독님은 공간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서 공기를 포착해 나가는 스타일로 안다. 거기에 타인의 생각이 인위적으로 가해지면, 홍상수 영화 특유의 느낌이 안 날 것 같다.
Q. 미술디자인에는 시대고증-로케이션-디자인-실계 등 다양한 과정이 있을 텐데, 어느 과정이 가장 고통스러운가, 혹은 가장 재미있나.
류성희: 가장 재미있고도 힘든 건, 톤 앤 매너 포착이다. 내 경우에는 그 시간을 길게 잡는 편이다. 나머지들은 속력 있게 가는데, 그건 보통 1달 이상 걸린다. 영화/미술/사진 등을 리서치하면서 이 작품이 어떤 톤에서 안착하는 게 좋을지 포착해 나간다.
Q. 미술과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는 어디라고 생각하나.
류성희: 의상. 그림에 같이 담기니까. 콘셉트와 패턴이 서로 너무 다르거나, 반대로 너무 똑같은 색을 쓰면 그림이 함께 망가진다. 함께 논의해 나가는 과정이 필수다.
Q. 감독의 니즈나 예산상의 제약과 충돌하면 어떻게 풀어나가나.
류성희: 어쨌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제시는 끝없이 할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하는 건 감독이다. 박찬욱 감독님의 경우 미술에 대한 심미안이 깊기에 더 해 보이고 싶은 게 있다. 하지만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그 안에서 잘 조율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Q. 현장에 가장 먼저 나와서 가장 늦게 들어가는 게 미술팀이지 않나. 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되면서 근로시간이 지켜지고 있는 분위기인데, 미술의 경우 애매한 부분이 있을 거다. 촬영 시간 이외에도 움직이는 게 미술팀이니.
류성희: 맞다. 미술은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걸 제작파트에서 인지하고 있으니,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이전부터 있었다. 우리끼리 길드나 회사를 체계화 시키는 방법도 생각중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4대 보험도 해결 할 수 있고. 출퇴근 팀을 시간별로 운영할 수 있으니까.
Q. 이번 수상을 계기로, 굉장히 많은 미술 지망생들로부터 메일을 받지 않을까 싶다.(웃음)
류성희: 아닌 게 아니라, 내 이름을 포털에서 검색하면 ‘포드 아트팀’(류성희가 이끄는 팀)이라는 이름이 함께 뜨더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었거든. 나와 관련된 걸 함께 검색해 본다는 의미인데, 그건 좋은 것 같다. 좋은 인재들이 많이 모이면 새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질 테니까. 요즘은 영화 외에도 IPTV, 넷플릭스 등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영상 쪽 미술의 영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Q. 류성희의 리더십을 많이 보여줘야 할 때다.
류성희: 하. 나만의 리더십이라.(웃음) 부족해서 늘 고민하는 자질이다. 지금까지는 이 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끝까지 좋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전격적인 리더로서의 책임을 느낀다. 지금 내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Q. 먼 훗날 당신의 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공간과 미술이 꼭 등장했으면 좋겠나.
류성희: 내가 5-6살 때, 3번 가출을 했다더라. 날이 좋고, 꽃이 날리면 그 어린 아이가 뭔가에 홀린 듯 다른 동네까지 막 걸어갔다고.(웃음) 그리고 8살 때인가? 해가 지는 걸 보며 그렇게 울었다고 하더라. 나에게 반복되는 이미지는 그런 것 같다. 더 알고 싶고, 더 연대하고 싶고, 계속 찾게 되는 어떤 것. 그래서 만약 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런 꿈꾸는 모습들이 공간에 채워졌으면 좋겠다.
Q. 차기작이 궁금하다.
류성희: 이용주 감독의 작품을 준비 중이다. 이용주 감독도 ‘살인의 추억’ 스태프 출신이다. 좋았던 시절을 함께 했던 감독이라,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