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한동안 줄곧 악인의 길만 걸었다. ‘펀치’에서 악의 탈을 썼고,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에서는 의뭉스럽고도 의심스러운 냄새를 폴폴 풍기는 인물로 분했다. 배역에 따라 그의 눈웃음은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꿍꿍이를 숨기는 듯한 모습으로 탈바꿈됐다. 배우 온주완의 이야기다.
선과 악, 두 가지 면모가 공존하는 온주완이지만 특히나 ‘악’을 표현할 때 그의 진가는 더욱 발휘됐다. 뿐만 아니라 그의 ‘구력’에 대한 찬사도 뒤따랐다. 그랬기에 ‘미녀 공심이’에서 부드러운 신사, ‘완벽남’ 석준수로 변신한 온주완에게 일순 궁금증이 들었다. 어두운 만큼 분위기가 무거웠던 전작들에 비해 ‘미녀 공심이’는 다소 가볍게 느껴지진 않았을까. 묵직함을 짊어지고 가던 배우 온주완에게 ‘미녀 공심이’는 어떤 작품으로 남았을까.
Q. ‘미녀 공심이’가 끝났다. 종영 소감이 궁금하다.
온주완: 아쉽다고 하기 보다는 편안하다. 작품도 가벼웠고 캐릭터도 밝았다. 극 중 인물들이 계속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생각 없이 웃다가 끝나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Q. 보통은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많은데 의외다.
온주완: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영화 ‘더 파이브’(2013) 때에는 편안함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드라마 ‘펀치’(2014)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느낀 편안함은 캐릭터가 가벼워서 느끼는 한 가지의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에서 준표를 찾으며 불거진 갈등 때에는 조금 심각한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미녀 공심이’의 석준수는 잘 웃고 긍정적인 캐릭터니까. 그래서 이렇게 편안한 감정이 든다고 생각한다.
Q. 편안함을 느꼈던 ‘미녀 공심이’, 잘 될 거라고 예상 했었나.
온주완: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은 못… 아니, ‘안’ 했다. 초반에 작품을 선택할 때 흥행을 기대했다가 성적이 기대치보다 낮게 나오면 풀이 죽게 되더라.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로맨틱 코미디니까. ‘이걸로 대박을 내보자’라는 생각보다는 가볍게 해본 작품이다. 하지만 첫 방송 이후에는 ‘이거, 잘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지난 6월 진행된 ‘미녀 공심이’ 기자간담회에서 시청률 욕심을 드러낸 적이 있다. 당시 목표로 잡은 게 15%였는데, 공교롭게도 마지막회가 딱 15.1%를 찍었더라.
온주완: 경쟁작이었던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를 잡지는 못했지만, 2049 시청률 부문에서는 앞섰다고 들었다. 거기에 일단 의의를 둘까 한다(웃음). 시청률의 경우, 백수찬 감독의 목표도 15%였다. 14회부터는 감독님과 서로 ‘넘을 수 있다’며 응원을 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마지막 회에서 15%를 넘기고 끝나서 기분도 좋지만, 간담회 때 큰소리를 쳤던 걸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웃음).
Q.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온주완: (남궁)민 형과의 촬영에서는 스태프들이 걱정을 아예 안하더라. “선수 두 명이니 빨리 찍고 가자”며 믿고 가는 편이었다. ‘구력’(연기 경력)도 오래된 만큼 장면에 대한 고민보다는 서로 믿고 가는 부분이 컸다. 스킨십 장면들은 모두 애드리브인데, 둘이 스킨십을 하면 분위기가 더 좋아 보이는 것 같아서 ‘브로맨스’ 분위기를 끌고 간 것도 있다. 민아의 경우, 처음에 (남궁)민 형이 민아 칭찬을 정말 많이 했었다. 연기가 정형화되지도 않고 단발도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해주더라.
Q. 남궁민 씨 말처럼 민아의 가발은 큰 화제가 됐다. 이미지와도 정말 잘 어울렸다는 호평이 많았다.
온주완: 드라마가 초반부에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던 것에는 민아 씨가 가발을 착용한 것과 더불어 시청자 우려와 달리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줘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모습 덕분에 시청자 분들이 호감을 느껴서 봐주신 게 아닐까 싶더라.
Q. 민아의 가발에서도 볼 수 있듯, ‘미녀 공심이’는 정말 유쾌한 드라마였다. NG도 많이 났다던데.
온주완: 김병옥 선배님이 악인으로 나오지 않나. 원래는 정말 순하시고 유머러스하시다. 그런데 별 대사 아닌데도 그냥 선배가 하시면, 선배의 눈만 보면, 선배와 붙기만 하면 너무 재밌고 웃기더라(웃음). 너무 웃어서 ‘다음 컷부터 찍고 바람을 쐬고 오라’며 김병옥 선배와 촬영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Q. 즐거운 드라마인 만큼 결말이 ‘속 빈 강정’일까봐 우려한 시청자들도 있었다. 본인은 결말에 대해 만족하나.
온주완: 석준수라는 캐릭터는 ‘꽉 찬’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만약 준수가 집에서도 인정 못 박도 엄마를 감싸며 공심이에게 선택을 못 받아 악역이 됐다면 정말 뻔했을 거다. ‘온주완이면 착하다가도 나중에 흑화할 거다’는 생각을 가진 시청자 분들도 계셨을 거고. 그래서 중간에 악역이 될 것처럼 보였던 장면에서 시청자들을 속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흑화된 척 하다가 반전된 모습을 보였더니 시청자 분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속으로 ‘내가 좀 잘 속였구나. 재밌다’고 생각했다(웃음).
Q.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녀 공심이’ 대본 분석도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온주완: 확실히 ‘펀치’나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찍을 때와는 다르게 편안함이 컸다. ‘펀치’나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시선부터 동작, 걸음걸이 등을 모두 계산해가며 연구했다. 하지만 ‘미녀 공심이’의 석준수 역은 정말 힘을 다 빼고 했다. 장난스러운 말투를 편하게, 계산적이지 않게 하려고 했다.
Q. 초반부에는 촬영 스케줄이 바쁘게 돌아갔던 것 같다. 특히 뮤지컬 ‘뉴시즈’를 병행한 만큼 더 힘들었겠다 싶다.
온주완: 보통 드라마가 4, 5회 정도를 찍고 방송이 시작되는데 ‘미녀 공심이’는 2회부터 방송분에 따라잡혀서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모니터할 시간도 없었고, 11회까지는 ‘뉴시즈’와 병행하다보니 촬영 끝나면 공연, 공연 끝나면 촬영하는 식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Q. 말만 들어도 무리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온주완: 그런 말씀도 많지만 ‘뉴시즈’에서 받은 에너지로 드라마에서 버텼다. 물론 공연을 하게 되면 목 아프게 노래하고 3시간을 라이브로, 준비시간까지 치면 5~6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하지만 ‘뉴시즈’만의 젊은 에너지가 있다. 젊음의 에너지를 ‘뉴시즈’에서 받고, 그 에너지로 연기를 하면서 이 두 가지의 병행이 힘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좋았다.
Q. 뮤지컬을 더 할 생각이 있나.
온주완: 있다. 무대에서의 연기도 재밌고, 드라마나 영화는 내가 잘 못하게 되면 다시 찍지만 뮤지컬은 중단을 못 하지 않나. 그만의 라이브 매력이 있다. 아드레날린이 굉장한 무대다.
Q. 뭔가 신인 때의 설렘이 느껴지는 기분이다(웃음).
온주완: 맞다. ‘뉴시즈’를 하면서 조금은 기울었던 배우로서의 마음가짐들이 곧추세워진 것 같다. 정말 행복했고, 영화 ‘발레교습소’(2004)를 찍을 때의 느낌을 서른넷의 온주완이라는 배우에게 심어준 작품이었던 것 같다.
Q. 첫 뮤지컬인 만큼 보러 온 지인들도 많을 것 같다. 여자친구인 배우 조보아 씨도 혹시…
온주완: (조)보아는 몇 번이고 보러왔다. 이전에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함께 했던 문근영 씨도 왔고, 이번에 모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견미리 선생님도 오시고 그랬다.
Q. 무대에 선 당신을 보는 조보아 씨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 같다.
온주완: (조)보아는 내가 무대 연기를 해온 사람이 아니다보니 자랑스러워하더라. 내가 잘 해내고, 잘 마무리 지은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Q. ‘무대 연기’가 아닌 ‘연기’로서는 SBS 작품만 연이어 해왔다. ‘펀치’-‘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에 이어 예능 ‘주먹쥐고 소림사’, 드라마 ‘미녀 공심이’까지 이어지다보니 ‘SBS의 아들’, ‘SBS 공무원’이라는 말도 우스갯소리로 나오고 있더라.
온주완: 그러려고 계획했던 건 아닌데(웃음),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배우가 현장에서 안하무인적인 태도로 소문이 안 좋게 나면 별로라는 평이 나오지 않겠나. 그러면 러브콜을 보내려다가도 다른 배우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러브콜을 계속 보내주시는 걸 보니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내가 현장에서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암묵적인 평가 아닌가. 계속 온주완이라는 배우를 쓰게끔 인간관계와 프로적인 연기 부분을 잘 해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Q. ‘펀치’,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과 ‘미녀 공심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드라마를 어두운 드라마와 밝은 드라마로 이등분했을 때 본인에겐 어떤 게 더 맞는가.
온주완: 내가 디테일하게 연기를 계획하고 그러는 부분은, 악인이 됐을 때 사실 더 그런 요소를 살릴만한 소스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또 편안하게 하고 시청자들에 사랑받기 위해서는 ‘미녀 공심이’ 석준수같은 배역이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나는 양면적인, 두 가지 색을 극단적으로 갖고 있는 얼굴이라 써주시는 것 같다. 두 쪽 다 욕심이 있다.
Q. ‘선과 악’이 모두 있는, 온주완이라는 배우의 인생작은 뭘까.
온주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겠지만, 전기충격처럼 내게 자극을 준 작품은 있다. 배우의 삶에서 나태해질 때 정신차리게 해준 작품은 ‘더 파이브’였다. 내게 러브콜이 오지도 않았었고, 사무실에 있던 대본책을 우연히 보고 너무 좋아서 “개런티 못 받아도 되니 제가 할게요”라며 감독님을 무작정 찾아갔었다(웃음). 이 외에는, 시간이 흘러 ‘뉴시즈’라는 뮤지컬을 하게되며 배우로서 에너지를 재충전했다. ‘미녀 공심이’도 그런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잘 됐던 것 같다.
Q. 벌써 데뷔 13년차 배우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온주완: 배우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이 내게 “왜 사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20대 중반이 돼서야 그 답을 얻었다. 지금이 행복하지 못하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 것 같더라. 사람으로서는 ‘오늘이 행복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우로서는 긍정의 힘과 진격의 힘을 갖고 싶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변화와 시련이 오더라도 덜 아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