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비즈엔터

[Film:人]‘부산행’ 박재인 안무가, 좀비라는 미끼를 물었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김재윤 실장(ULTRA studio))
(사진=김재윤 실장(ULTRA studio))

천만관객을 싣고 달린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을 빛낸 또 하나의 주역들은 좀비들이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좀비들이 우리 영화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풍경은 실경 기이하면서도 황홀한 체험이었다. 여기에는 분장으로 인해 얼굴은 드러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 이상을 해 낸 좀비 연기자들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연상호 감독을 비롯, 공유-정유미 등 출연배우들이 좀비 연기자들에게 고마움을 연신 밝히는 것도 이런 연유일 게다. 수백 명에 달하는 좀비 출연자들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는 박재인 안무가다. ‘사물의 비밀’(2001) 속 동작을 지도하며 영화와 인연을 맺은 박재인 안무가는 ‘댄싱퀸’(2012)을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에 합류한 후, ‘곡성’과 ‘부산행’으로 ‘바디 무브먼트 컴포저(Body Movement Composer)’로 자리매김했다. 새로운 직업군의 탄생이다.

‘부산행’의 첫 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찾은 박재인 안무가의 스튜디오.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과 근사한 근육을 드러내며 나타난 박재인 안무가는 시종 쾌활한 에너지를 뽐내며 사진촬영과 인터뷰에 응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육체가 박재인이라는 사람을 증명하는 듯했다.

Q. 근육이 근사하다. 사진 촬영 내내 근육에 눈이 가더라.(웃음)
박재인: ‘부산행’ 촬영 때, 지금처럼 민소매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연상호 감독님이 그랬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주인공 엄마 같다고.(웃음)

Q. 린다 해밀턴이 연기한 사라 코너!(웃음) 몸도 굉장히 탄탄한데, 관리의 힘이겠지?
박재인: 습관이 돼서,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대신 한 끼를 맛있게 먹자는 주의다. 몸은 최근 폴(Pole)댄스를 하면서 더 좋아졌다.

Q. 가수들 안무에 많이 참여해 왔다. 가수를 통해 본인이 만든 안무를 보는 것과 배우를 통해 보는 것은 많이 다를 것 같다.
박재인: 다르다. 표현의 영역은 배우들이 더 넓은 것 같다. 가수들은 정해진 곡 안에서 약속된 안무를 딱 보여줘야 하는 반면, 배우들은 조금 더 자유롭다. ‘부산행’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좀비의 경우, 상상력이 동원되기에 만들어가는 재미가 더 크다.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

Q. 어떤 배우가 동작을 잘 흡수하나. 당신과 호흡이 잘 맞는 배우가 있을 텐데.
박재인: 우선, 황정민 씨. ‘댄싱퀸’ ‘국제시장’ 등 오래 봐 와서 그런지 편하다. ‘곡성’의 곽도원 씨와도 잘 맞는다. 분위기를 굉장히 잘 이끌어내는 배우다. 제일 편했던 건 ‘곡성’의 환희. 스폰지 같은 친구라 뭘 가르쳐도 흡수한다. ‘부산행’은 한 명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첫 번째 좀비였던 (심)은경 씨가 너무 잘 해 줬다. 구두 한 짝을 신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두 번째 좀비 우도임과, 몸을 유연하게 움직여 준 또 한명의 좀비 한성수 등 다들 기대 이상이었다.

Q. 영화 현장엔 언제부터 참여하게 된 건가.
박재인: 시작은 장서희 정석원 주연의 ‘사물의 비밀’ 이었다. 극중 춤추는 장면과 정서희 씨가 상상에서 섹스 하는 장면을 잡아줬다. 영화 현장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류승룡 주연의 ‘손님’(2015)도 짧게 참여했다. 그리고 ‘댄싱퀸’!. ‘댄싱퀸’은 (엄)정화와의 친분으로 하게 됐는데, 그 인연으로 윤제균 감독님을 알게 돼서 ‘국제시장’도 할 수 있었다. 이후 ‘곡성’인데, 사실 나홍진 감독님이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어느 날 스튜디오에 찾아와서 작업을 함께 하자고 하시더라. ‘추격자’ ‘황해’를 몇 십번 봤던 팬으로서 너무 좋았다.

Q. ‘부산행’을 기점으로 ‘바디 무브먼트 컴포저’라고 불리고 있는데, 생소한 단어다.
박재인: 외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좀비의 움직임이나 베드신 장면, 혹은 ‘혹성탈출’처럼 모션캡처를 착용해서 하는 동작을 디자인 해주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기에 ‘곡성’에서는 안무지도라고 그냥 표기됐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이 깔리지 않는 움직임도 만들어내기에 ‘바디 무브먼트 컴포저’라는 용어가 더 맞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부산행’에서 그렇게 표기를 해줬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직업군이 하나 등장한 것 같아서 기쁘다. 이 직업의 저변이 확대됐음 하는 생각이 있다.

Q. 무용 쪽에서 많이들 넘어오지 않을까 싶은데, 경쟁자들이 많아지는 셈이다.
박재인: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러 안무가들이 잡아주면 더 다양한 동작이 나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독점을 하면 처음엔 좋겠지. 하지만 나중엔 나쁜 소리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 안무가 저 안무 같고, 저 안무가 이 안무 같다”는 소리들이.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독이다. 영화판이 내 판이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판이 되길 바란다.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

Q. ‘부산행’ 안무는 이 공간에서 탄생한 건가.
박재인: 맞다. 연상호 감독님이 정예멤버 좀비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일단 40-50명 정도의 배우를 뽑았다. 추가로 약 50명 정도를 더해 100여 명의 좀비 군단이 모였다. 극중 군인, 야구부 등산객 등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하기에 배우들의 움직임을 보고 그에 맞는 유형의 좀비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이 배우는 움직임이 빠르네? 그럼 군인 좀비!” “민첩하네? 야구부 좀비!” 식으로 나눈 거다. 군인 좀비의 경우 ‘대호’를 경험한 배우들이 많았다. 이미 산을 타면서 체력들이 단련돼서, 뭘 요구해도 잘 하더라. 운 좋게도 우리 스튜디오가 딱 열차 한 칸 크기다. 스튜디오 안에 마킹테이프를 붙여 기차 한 칸을 재현한 후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카메라로 찍어서 피드백을 해가며 움직임을 잡아갔다. 나와 함께 일한 트레이너가 좀비로 출연하기도 했다. 비보이 경험이 있는 친구라 몸 움직임이 상당했다.

Q. 좀비들 움직임을 어떻게 잡아갔나.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Z’ 좀비가 연상되기도 했다.
박재인: ‘월드워Z’, 물론 봤다. ‘월드워Z’ 초반에 좀비가 된 후 차에 부딪히는 사람이 아마 안무가일 거다. 그 안무가가 모션캡처 해 둔 게 있다. 점프라는 좀비, 뒹구는 좀비 등 관련 자료를 많이 봤다. 연상호 감독님이 언급했던 건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소녀였다. 무술감독과는 좀비는 넘어질 때, 절대 바닥에 손을 짚으면 안 된다는 룰을 정했다. 넘어질 때 어깨가 먼저 바닥에 닿는 식의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했다. 아무리 좀비의 움직임을 잘 짜도 촬영이 멋있게 잡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촬영감독님(이형덕)이 포인트를 잘 잡아주셨다. 그걸 멋지게 덧입혀 준 건 또 CG 감독님. 영화를 보니, 기막히게 CG를 넣었더라. 특수분장팀의 실력이야 말 할 거도 없고. ‘부산행’에서는 정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Q. 좀비 중에 스턴트들이 많은 걸로 안다. 액션이 많기에 좀비의 움직임만큼이나, 무술 동작이 중요했을 거다. 스턴트 팀과 의견은 어떻게 조율해 나갔나.
박재인: 배우들과 액션 합을 맞추는 장면, 다치거나 점프를 하는 좀비는 대부분 스턴트맨 들이었다. ‘부산행’ 무술감독이 ‘신세계’ 엘리베이터 “드루와~ 드루와~” 액션을 만든 허명행 감독이었다. 허 감독님도 그렇고 스턴트 하는 분들과 워낙 친해져서 의견이 잘 맞았다.

Q. 댄서는 단순히 춤만 잘 춘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아이디어가 관건인 것 같다.
박재인: 맞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이제 너무 많다. 현대 무용 댄서가 힙합을 하는 등 경계도 많이 허물어지고 있고. 그랬을 때, 아이템이 얼마나 신선하냐의 문제인 것 같다.

Q. ‘부산행’ 촬영이 진행된 촬영장 세트에 다른 영화 팀이 있었다고.
박재인: 아, ‘판도라’(김명민, 김남길 주연의 재난영화) 우리가 좀비 분장을 한 배우들로 넘쳤다면, 그 쪽은 방진복을 입은 배우들이 많았다. 한여름에 그 더운 방진복을 입고 있다니…(웃음) 차라리 좀비 분장이 낫다, 싶었다. 좀비는 그래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데, 방진복을 입으면 화장실 가는 것부터가 어렵지 않나.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

Q. 나홍진 감독은 충무로에서 꼼꼼하기로 유명한 분이다. 연상호 감독님의 경우 본인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효율적으로 표현하는데 능한 감독이고.
박재인: 맞다. 나홍진 감독님의 경우 장면 하나당 레퍼런스를 열 개 정도 요구하신다. 준비해 두면 감독님이 와서 보고는, 좋은 동작은 “오케이” 하고 가신다. 분명 “오케이” 한 장면이 있는데, 현장에서 또 원초적인 기운을 주는 장면을 열 개 정도 더 찍으신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찍은 게 편집 때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여러 장면을 찍은 후 편집에서 고르시는 거다. 반면 연상호 감독님은 말씀하신대로 본인이 원하는 걸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연출가다. 원하는 장면이 나오면 딱 촬영을 끝낸다. 빨리 찍으시는 스타일이라, 처음에는 배우들도 그렇고 모두 반신반의 했다. ‘더 찍어도 되는데…’ 이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현장편집 보면 모두 “오~” 감탄하면서 감독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Q. 스타일이 극과 극인 연출자와 연달아 작업한 셈이다.
박재인: ‘부산행’에서는 (노숙자로 출연한 배우) 최귀화 씨와 내가 가장 혼돈스러웠을 거다. 규화 씨가 ‘곡성’에도 출연하지 않았나. 촬영이 긴 현장이 있다가 빨리 끝나는 현장에 오니까 초반에는 서로 “우리 진짜 가도 되는 거야” 그랬다.(웃음) 어쨌든, 사랑받은 영화들에 참여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너무 영광이다.

Q. 춤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박재인: 시작은 리듬체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성악을 배웠는데, 성악은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 대학 때 리듬체조로 전공을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춤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리듬체조가 생활 체조처럼 돼 있었다. 내가 들어가면서 시합이 됐는데, 어쩌다보니 리듬체조 선수 1호가 된 셈이다.

Q. 국가대표?
박재인: 국가대표는 아니고.(웃음) 내가 3학년 때인가? 그때 전국대회 1회에 참여했을 거다. 내가 졸업할 즈음에 리듬체조 규격매트가 나왔다. 1984년 LA 프레올림픽을 기점으로 리듬 체조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고.

Q.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손연재를 눈여겨보겠다.(웃음)
박재인: 하하. 선수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졸업 후 MBC 방송국 안무팀으로 갔다. 그때는 가수들의 전속 안무팀이 없을 때였다. 각 방송국 댄서들이 가수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그때 클론, 김건모 등과 인연을 맺었다. 그렇게 7년을 하다가 재즈를 배우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클론으로부터 뮤직비디오를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으면서 다시 돌아왔고 엄정화 박미경 신승훈 등의 안무를 맡았다.

Q. ‘바디 무브먼트 컴포저’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계기가 있다면.
박재인: 터닝 포인트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컸던 건, 나를 위해 살자고 마음을 먹은 거다. 가수안무가 재미는 있지만 결국 남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다. 내 팀을 꾸려서 활동도 해 봤는데 그때는 또 후배들 신경을 써야 하는 등, 할 게 많더라. 그러다가 영화를 만났다. 영화는 정말 내 몫을 잘 하면 되는 곳이더라. 이젠 나를 위해 살려고 한다. 누군가를 구속하면서 내 밑에 두고 싶은 생각도 없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Q. 영화인으로서의 출발이기도 하다.
박재인: 아직 ‘영화인’은 아니고, ‘영화’의 ‘o’까지는 온 것 같다. 아직도 영화에서 쓰는 용어를 다 모른다. 이야기를 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오면 눈치로 파악하고는, 바로 찾아보곤 한다.(웃음)

Q. 최근 가인의 ‘피어나’ 안무에 참여했다. 지금도 가수 안무를 준비 중이라고.
박재인: 가수 안무도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런데 기획사 입장에서는 나를 쓰기가 좀 부담스러울 거다. 내가 나름 댄서 바닥에서 경력으로는 전설이거든.(웃음) 웬만한 엔터테인먼트 사장들보다 나이가 많다. 아무래도 편한 안무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클 테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웃음)

Q. 영화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그림이 있다면?
박재인: 공포영화. 그리고 애절한 19금 섹스 신을 디자인 해보고 싶다. ‘물 속 섹스신’에 특히 관심이 많다.(웃음) 그리고 내가 최근 세컨드잡으로 폴(Pole)댄스를 가르치고 있으니, 폴을 이용한 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가령 남성 스트립쇼를 다뤄 인기를 끌었던 ‘풀몬티’(1997) 같은 영화! 일상에 찌든 중년 남성 넷이 폴을 멋지게 타면서 스타가 되는 내용 어떤가. 이상하게 오달수 씨에게 어울릴 것 같다. 곽도원 씨도 좋을 것 같고. 두 명은 아직 생각은 못해 봤는데, 폴 댄스를 코믹하게 푼 영화가 있으면 좋겠다.(웃음)

Q. 폴을 타는 오달수와 곽도원이라니.(웃음)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박재인: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나.(웃음)

Q 육체를 쓰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두려움은 없나.
박재인: 왜, 없겠나. 30년 넘게 춤을 췄다. 이제야 춤을 알 것 같고, 이제야 선을 길게 잡는 걸 알 것 같고, 이제야 상대가 원하는 걸 알 것 같은데, 이제 관절이 아프고 어디가 파열돼 있다.(일동 웃음) 그래서 아쉽긴 한데, 여전히 이 일이 좋으니 즐기려 한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저작권자 © 비즈엔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bizenter.co.kr

실시간 관심기사

댓글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