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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터널’ 김성훈 감독 “알파고라면 모를까,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감독 김성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감독 김성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영화 ‘터널’에는 재난 영화에서 쉽게 볼법한 세 가지가 없다. 감정 과잉이 없고, 영웅이 없고, 일방적인 악인이 없다. 보편의 감정이 있고,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보통 사람이 있고, 시스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방만해진 사람이 있을 뿐이다. ‘터널’의 풍광이 시각을 넘어서 통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영화가 포착해 낸 우리 삶의 진짜 단면들 때문일 것이다. 전작 ‘끝까지 간다’에서 순도 100% 짜릿한 장르영화를 구현하며 개성을 드러낸 김성훈 감독은, ‘터널’에서 다시 한 번 그만의 인장을 새겨 넣었다. ‘터널’을 통과하며 김성훈 감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Q. ‘끝까지 간다’를 찍을 때 “촬영하면서 반성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했더라. ‘터널’은 어땠나.
김성훈:
똑같았다.(웃음) 내가 반신욕을 좋아하는데, 물에 들어앉아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자책하는 스타일이다. ‘그 컷은 왜 그렇게 찍었지?’ ‘내가 100% 만족한 건가?’ ‘나로 인해 스태프가 상처 받은 일은 없었나?’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웃음)

Q. 섬세한 스타일 같다. 장면에 대해 끝까지 고민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웃음)
김성훈:
하하. (자문하며)내가 끝까지 가는 스타일인가. 일단 테이크를 많이 가는 편은 아니다.(웃음) 많이 가면 내가 힘들어진다. 불안해지고. ‘터널’에서도 가장 많이 간 테이크가 열한 번이었다. 배두나 씨가 방송국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우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굉장히 쉽게 찍을 줄 알았다가 돌발변수로 인해 애를 먹은 경우다. 촬영장소가 YTN 건물이었다. 일요일에 사람이 없다고 해서 섭외 했는데, 그날 마침 모 대표님이 탈당을 하셔셔…

Q. 일요일이었으니…누군지 알 것 같다. 일요일의 남자.(웃음)
김성훈:
하하. 그 대표님이 탈당을 해서 방송국이 난리가 난 거다.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패널 섭외 전화가 이어지고. 그날 웬만한 정치인들 이름은 다 들은 것 같다.(웃음)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두나 씨가 감정 씬을 연기해야 했다. 슬픈 상황에서 울음을 참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감정 연기라, 배우에게 쉽지 않은 씬이었다. 다행히 두나 씨가 너무 잘 해 줘서 원하는 장면을 얻을 수 있었는데, 상황 상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

Q. 모든 영화들이 그렇지만 ‘터널’은 특히나 아이디어와의 싸움이었을 것 같다. 터널 밖에서 정수(하정우)를 구하는 방법과, 터널 안에서 정수가 살아나가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흥미로워야 관객을 끝까지 붙들 수 있을 테니까.
김성훈:
맞다. 어떠한 방식이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자칫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기 쉬운 영화였다. 유머를 불러일으킨다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을 전달하기가 보다 쉬울 것이라고 여겼다. 사실 소재원 작가의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 조금 망설였다. 이렇게 우울하고 아픈 이야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내부 이야기를 재미있게 각색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강아지’와 ‘환풍기’ 그리고 ‘또 한명의 여인’이다. 내부를 톰 행크스 주연의 ‘게스트 어웨이’처럼 꾸밀 수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감독 김성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감독 김성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환풍기는 전작 ‘끝까지 간다’에서도 중요하게 쓰인바 있다.
김성훈:
그 사실을 영화 찍다가 알았다. 어느 날, 세트가 ‘끝까지 간다’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촬영감독이 불쑥 “감독님 모르셨어요? 스태프들 다 알고 있는데. 감독님 ‘관’에 패티쉬가 있으신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웃음) 내가 좁은 공간에 애착을 느끼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Q. 어떤 무의식의 발현일까.(웃음)
김성훈:
아마 내가 미니멀하고 디테일한 걸 선호하기 때문일 거다. 좁은 공간에 있다 보면 작은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되지 않나. 그러면 아기자기한 것들이 더 잘 살아나고. 그런 측면에서의 관심이 아닐까 싶다.

Q. 넣고 싶었는데 빠진 아이디어도 있나.
김성훈:
있다. 관객 중에는 아마 ‘정수가 붕괴 후 차 시동은 어떻게 켰지?’ ‘차 배터리는 어떻게 유지했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다. 이를 설명해주는 디테일한 장면들이 있었다. 그건 정수의 직업과도 연관이 있다. 정수를 자동차 판매원으로 설정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정수가 자신의 차 안에서 손전등과 손톱깎이를 발견하는데, 그게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 필요했다. 사실 친형님이 자동차 회사에 다니신다. 형님 차에서 증정용 회사 사은품을 여러 번 봤는데, 그게 손전등과 손톱깎이였다. 소품이 하나 등장하더라도 개연성이 있었으면 했던 거다. 또 하나는 차를 팔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인물이 차 안에 갇힌다는 게 나름 아이러니하면서 재미있었다. 그런 점들을 고려해서 주인공의 직업을 설정했다.

Q. 시동 거는 장면 등을 편집에서 살렸다면, 정수의 직업적인 면모가 더 살긴 했겠다.
김성훈:
그랬을 거다. 나름 유머도 있는 장면이었는데, 적응기가 너무 길어지고 도돌이표 같은 느낌도 들어서 아쉽지만 뺐다.

Q. ‘터널’을 관통하는 중요 키워드 중 하나는 ‘아이러니’같다. 생수병, 주유 기름, 환풍기, 달걀 등 모든 것들이 양면적으로 작용한다. 놀라운 부분이다.
김성훈:
습관인데, 어떠한 것이든 양면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가령, 정수는 기름을 3만원어치 넣어달라고 했는데, 주유소 할아버지가 실수로 가득 채우고 만다. 그 기름 덕분에 정수는 터널에서 오랜 시간 버티지만, 반대로 할아버지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터널이 무너지기 전에 통과할 수도 있었을 거다. 이런 식의 명함을 영화 내내 교차시켰다. 터널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 간 대경(오달수)과 그의 부하직원이 차 클랙션을 ‘빵빵빵’ 울린 것이 터널 2차 붕괴의 요인이 됐을 수도 있으나, 그로 인해 환풍기 축이 틀어져서 정수는 자신이 3번 환풍기 밑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이게 또 나중에는 다른 사건을 불러오고.

Q. 희망과 절망이 매 순간 교차하는 셈이다.
김성훈:
그런 게 나는 재미있다. 음지가 있으면 그 뒤에 양지가 오는. ‘끝까지 간다’를 할 때 가장 좋아했던 단어가 ‘위기(危機)’였다. 위기가 위태로울 ‘위(危)’에 기회 ‘기(機)’더라. 우리는 위기를 부정적으로만 알고 있는데, 위태로움에서 기회는 온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긍정적인 접근이고. 거꾸로 하면 괴롭지. 기회가 있을 때 위태로움도 온다는 거니까. 누가 그 말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인생의 아이러니가 함축된 말 같다. 조상들이 참 대단하다 싶다.

Q. 물이 반 컵 담긴 것을 보고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 ‘물이 반이나 남았네’ 라는 것과 같은 이치 같기도 하다.
김성훈:
나는 왔다갔다하는 것 같은데, ‘반이나 남았네’ 보다 ‘반 밖에 안 남았네’ 쪽이긴 한 것 같다.(웃음).

Q. ‘끝까지 간다’는 전작의 실패로 인한 부담을 안고 찍은 작품이다. 반대로 ‘터널’은 ‘끝까지 간다’라는 전작의 성공을 안고 달리기에 ‘기대’라는 부담이 수반됐을 것 같고. 어떤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영화를 찍는 건.
김성훈:
일단 잘 되고 나니까 개런티가 높아져서 좋다.(웃음) 음… 그런 것 같다. 실패한 감독이 다음 작품을 하려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필요한 거다. 그 과정은 작품이 성공하면 수월해지지. 그런데 이때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성공 후 실패하기 쉬운 이유는, 설득력을 가졌다라는 생각에 자만하기 쉽고 목소리만 커지기 쉽기 때문이다. 주변 파트너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를 객관적으로 봐 줄 사람이 옆에 있는 건 행운이다. 결국 같은 실패를 겪지 않으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좋은 조건들을 효율적으로 활용 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 같다.

Q. 터널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터널 섭외는 어땠나.
제작자 장원석 대표: (인터뷰 듣고 있다가, 불쑥) 지옥이었다, 지옥!
김성훈: 하하. 95%정도 짓다 만 터널이 창원 쪽에 있었다. 주변 공사가 중단 된 터널이었고, 끊긴 도로고 해서, 따로 세팅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에게 딱 좋은 곳이어서 섭외를 했는데 갑자기 민간 자본이 편성되면서 공사가 재개되는 바람에 촬영이 무산됐다. ‘이건 뭐지?’ 했다.(웃음) 다시 전국에 있는 터널을 스케치 했는데, 두 번째 섭외한 터널도 갑작스럽게 다른 공사를 위해서 써야 한다고 해서 무산됐다. ‘이건 또 뭐지?’ 좌절하고 있다가 영월 쪽에 터널을 섭외했다. ‘다 됐다’ 하고 있는데 고사 당일 날, 장소 협찬이 안 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촬영 1-2 주를 앞두고 무산됐으니 ‘멘붕’이었다. 크랭크인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30년간 방치 중인 옥천 터널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문제는 거기가 어마어마한 폐허였다는 거다. 아스팔트가 사라질 정도로 낡은 곳이었거든.

Q. 촬영을 위해 아스팔트를 다시 깔았다는 의미인가.
김성훈:
맞다. 도로교통법 규정상 아스팔트 두께가 20-30㎝ 돼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까지는 못하고 6㎝ 두께로 300m를 깔았다. 도로 깔고, 가드레일 설치하고, 도로 표지판도 새로 달고. 거기가 또 잡초와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어서 토목공사도 해야 했다. 잘라낸 나무를 옮기는 것도 일이었고. 미술팀 일손이 부족해서 다른 팀 미술팀도 부르다 보니, 예산이 10억 정도 오버됐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옥천 터널이 아닌 실제 다니는 다른 터널에서 찍었다면 영화를 기간 내에 찍을 수 있었을까 싶다. 촬영 도중 민원이라도 오면 손 쓸 수 없으니까.

Q. 역시 부정적인 상황에서, 또 긍정을 보는!
김성훈:
하하. 오히려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Q. ‘터널’은 하정우라는 배우가 지닌 이미지와 연기에 힘입은 부분도 많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김성훈:
‘캐스팅이 절반’이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배우와 방향성이 일치한다면, 굳이 내가 연기 디렉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보다 잘 하는 사람에게 내가 굳이. 정우 씨 연기야 워낙 좋았지만 특히 좋았던 게, 의도하지 않은 소리들까지도 놓치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해 냈다는 거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

Q. 연기 잘하는 배우에겐 굳이 디렉팅이 필요할까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의견이 안 맞는 경우가 생길 텐데.
김성훈:
하나의 사물이 있으면, 60억 명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한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러한 다름 때문에 정반합이 생기는 것 같다. 덕분에 내가 발전하는 것 같고.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과정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나와 다른 말을 듣는다는 게, 행복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인 것 같다. 신이 귀를 옆으로 두개 만든 건. ‘옆 사람 말을 잘 들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눈이 앞에 있는 건, ‘듣고 앞으로 가라’는 의미 같고. 그런데 앞만 보고 가면 불통이지 않나. 그래서 목을 만드신 것 같다. ‘가끔씩 뒤돌아보고 가라’고.

Q. 오! 그렇다면, 입은 왜 하나일까.
김성훈:
‘귀담아 듣고, 가급적 말은 신중하게 하라’가 아닐까. 입이 두 개였으며 엄청 시끄러웠을 거다.

Q. 일찍부터 ‘터널’과 관련해 세월호가 언급됐다. 제작보고회 때 연관성에 대해 상당히 조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성훈:
제작보고회 때 “세월호를 의도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당시 의도가 아니었다고 대답했는데, 인정한다. 질문에서 도망간 게 사실이다. 회피의 발언이었다. 세월호라는 어마어마한 대참사가 있었는데, 그 기억을 다 빼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발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생명과 재난을 이야기 하는 영화인데 ‘나는 세월호를 절대 신경 쓰지 않을 거야’가 과연 가능할까. 알파고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세월호의 자장 안에서 슬픔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영향을 받았다/안 받았다’라고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뭐가 영향이고, 뭐가 아닌가. 확실한 건 나는 그 시대, 그 기운, 그 공기에서 시나리오를 썼고 보는 분들 역시 똑같은 시기를 겪었기에, (세월호를 연관해서 읽는 것에 대해) 내가 뭐라 말할 부분은 아닌 거다. 다만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세월호가 언급되는 건 조심스러웠다. 일단 보고 나서 이야기 하고 싶은 입장이었기에, 가급적 회피하고 싶었다. 내 발언이 ‘워딩’으로 축약해서 나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 김성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감독 김성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세월호는 국민적인 트라우마로 남은 재난이다. ‘터널’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를 다룬 그 어떤 재난영화가 나와도 우리는 아마 세월호를 소환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부산행’때도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았나.
김성훈:
맞다. 만드는 사람으로서 생각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세월호 사건 이전에 ‘터널’이 나왔다면, 많은 이들이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사고를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우리 사회 저변에 어떤 슬픔들이 깔려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이야기는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다음에.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이기에 지금 소재로적으로 이용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는 쪽이다.

Q. 영화를 만들면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
김성훈:
있었다. 나에게도 위로를 보내고 싶었고. 어떠한 이념을 떠나서, 인간을 힘들게 했던 것들로부터 말이다. ‘인간이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IS의 테러만 봐도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에 저지르는 행위이지 않을까 싶다.

Q. 조금 멀리가면,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김성훈:
공감한다. 인류가 이러려고 진화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이들이 ‘사람보다 더 뛰어난 가치가 어디에 있냐’고 이야기 하지만, 정작 실천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악당이거나 나빠서만은 아닐 거다. 그래야 본인이 편해지는 게 있으니까, 그래야 본인이 안 아프니까. 그런 세상에 우린 살아가고 있다.

Q. 어쨌든, ‘터널’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 받을 거란 생각을 한다.
김성훈:
그랬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통해 어떠한 사람이 위로 받는다면, 감독으로서 그보다 더 한 기쁨이 어디 있을까 싶다. 가령 멜로물을 만들었는데 헤어진 남녀가 위로를 받았다? 그 또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Q. ‘터널’을 준비하면서 이만희 감독의 1969년 작 ‘생명’의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다.
김성훈:
16일간 무너진 갱도에 갇힌 광부의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데,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한다. 보면서 깜짝 놀랐다. 시대를 읽는 눈이 대단하다. 기술적 한계가 있음에도 전혀 촌스럽지도 않다. ‘생명’을 보면서 느낀 울림이 꽤 오래 갔다.

Q. 안 그래도 궁금해서 ‘생명’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현시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이렇게 평했더라. “이런 작품 수준이 지금 나올 수 있을까. 진심으로 머릴 숙인다”고. 그래서 드리는 질문. 먼 훗날 사람들이 2016년에 만들어진 ‘터널’을 봤을 때 어떤 마음이었으면 좋겠나.
김성훈:
당대 사람을 설득하기도 힘든데 후대까지 설득시키고 싶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다.(웃음) 그럼에도 울림을 줄 수 있다면…오, 대단한 일이지.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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